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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습니다 - 연꽃 빌라 이야기 ㅣ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2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지루한 일상이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다. <세 평의 행복 연꽃빌라>에서 모든걸 그만두고 일하지 않는 한가로움을 누리기 위해 쓰러져 가는 연꽃빌라에 이사온 교코의 이야기가 3년이 지난 후로 돌아왔다. 그동안 저축해온 저금을 헐어 한달에 10만엔이라는 빠듯한 자금으로 생활하기로 하고 시작한 연꽃빌라에사의 생활은 낡은 연꽃빌라에서 계절감을 그대로 느껴야 하고 엄마의 한심해하는 잔소리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났으니 말이다. 여전히 더 낡아만 가는 연꽃빌라에서는 한차례의 대지진을 겪고 나서는 더 불안해졌지만 여전히 한가로운 생활은 만족스럽다. 하는 거라곤 산책과 장보기, 간만에 의욕적으로 시작한 수놓기, 아니면 이웃인 구마가이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라도 말이다. 그런 교코의 일상을 산다고 생각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이 지난 이 일상은 여전히 지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지루함 없이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작가가 주는 공감과 메새지에 있는 것 같다. 기묘하게도 교코와 나의 일상은 묘하게 닮아 있다. 상황이 아닌 지루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나 자신도 이 지루한 일상이 지긋지긋 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좋았던건 교코가 느끼는 감정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묘한 위로를 주는 듯 했기 때문이더. 다양한 스토리의 소설이 있고 그 안의 이야기들은 허구일 지언정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진짜라고 생각하는데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교코가 느끼는 감정들이나 생각들에서 공감하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뭐 그런거 말이다. 일하지 않는 삶을 스스로 택했음에도 느끼는 불안감이나 여자로써의 나이듦에 대한 생각들은 나 뿐 아니라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음으로 살짝 교코가 잘됐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내 인생도 같이 잘 될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발하고 상상력 넘치는 소설도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고 점점 읽어 가는 책들이 많아지면서 흔하고 틀에 박힌 소재로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끌어내고 감동을 주는 소설들이 계속 간직하면서 읽고 싶은데 이 소설 또한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한땀한땀 수놓듯
우연히 매료되어 의욕적으로 시작한 수놓기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열심히 하려하지만 마음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잘하려는 마음만 앞서서 몸이 긴장되고 어깨가 결리고 눈은 흐릿해진다. 여유로운 시간에 비해 마음은 조급하고 안될거야 하는 쉽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수놓기에 도움을 준 사토코씨나 친구 마유는 하다가 그만둬도 좋으니 여유를 갖고 쉬엄 쉬엄 하라고 충고 해준다. 조금 무리가 간다 싶으면 산책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조금씩 태피스트리를 완성해간다. 너무 집중한 탓에 급 늙어버린 얼굴도 신경써 가면서. 교코가 하는 수놓기는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조급함과 불안함, 잘하려고 하는 완벽주의는 오히려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가고 의욕을 떨어뜨린다. 잘하거나 빨리하려는 마음은 여유로움을 빼았아 간다. 그러다보면 정작 완성하고 싶었던 인생의 목표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교코의 수처럼 제자리에 바늘이 꽂히지 않는 것처럼 실채에 대한 좌절감만 커지는 것 같다. 단순한 수놓기 작업이지만 누구나 알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잊기 쉬운 것들을 작가만의 차분한 필체에서 엿볼 수 있었다. 한땀 한땀 느리지만 여유를 갖고 정성을 들인다면 교코의 태피스트리의 꽃처럼 우리의 인생도 조금 더 아름다운 색채로 완성도 높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사건 하나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냥 이 책는 일상의 이야기이니 만큼 교코가 수놓는 것처럼 일상에서 조금씩 녹아들듯이 읽고 조금씩 그 의미를 생각해보며 읽는다면 좋을것 같다. 교코의 태피스트리는 아직 미완성이고 산책을 나갔다가 집에도 돌아오지 않은채 늘 이어지는 일상처럼 그렇게 끝나버렸지만 낡은 연꽃빌라가 언제까지고 그자리에 있길 바라며, 교코의 일하지 않는 일상이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