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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달리다 - 꿈을 향해 떠난 지훈아울의 첫 번째 로드 트립 이야기
양지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호기심
언젠가 중국을 다녀온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정말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이더라"라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라...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는 기분이라서 그저 역시 중국은 크구나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많고 직선 도로라고 해도 끝없이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미국 로드트립이란 경험이 어떤건지 궁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미국이 궁금한게 아니라 실은 자동차로 하는 미국대륙횡단 이라는 여행방법에 관심이 갔다. 여행책을 고를 때도 애써 북미 여행에 관한 책은 읽지 않았다. 굳이 책으로 보지 않아도 전세계적인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인터넷이건 티브이건 넘처나는 정보가 있기 때문에 궁금함 같은건 없었다. 그저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정도일뿐.
불만투성이 지루한 여행?!
책은 저자가 처음 로드트립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로드트립을 한다는 것 보다 더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다는 걸 알고 자신이 원하는게 확고하다면 도전은 어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여러 여건상 혼자 하기 힘든 여행에 파트너를 구하고 출발하기까지 내눈엔 다 대단해 보였는데 나로서는 쉽게 하지 못했을 결심과 추진력이 부러웠다. 출발하고 첫번째 파트너를 만나서 길을 떠난 후에도 파트너가 어떤 사람일지에 대한 걱정과 여행중에 갔던 여행지에 대해 기대했던거 보다 실망하는 부분이 여러번 나오길래 아 이분도 뭔 쓸데없는 걱정이 많고 장점보다는 단점에 영향을 많이받는 불평 불만주의자인가 싶었다. 지금까지 여행책을 많이 봤지만 그런 걱정과 불만, 여행이 힘들다고만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여행을 왜 가는지를 모르겠고 그런 사람들의 글은 읽기도 싫었다. 파트너에 대한 과대망상적 걱정도 너무 과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그런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쭉 이어지지는 않아서 나도 저자의 로드트립 렌터카 한구석에서 같이 끝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미국여행? NO! 로드 트립 YES!
이 책에서 미국의 여러 관광지에 대한 여행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저자는 좋아하는 음악과 아티스트의 본고장이거나 좋아하는 영화의 촬영지를 가는 등 자신만의 여행테마가 있었고 뮤지션으로서의 공연이나 음악을 알리기 위한 여행이기도 해서 전형적인 미국의 여행기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저자가 로드 트립중에 갔던 곳들은 알만한 사람들의 다 아는 여행지이기도 하고 나도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는 곳도 있었다. 여기서는 미국 여행이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북미 대륙을 자동차로 횡단, 일주를 하는 로드 트립 그 자체에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상상도 가지 않는 끝없는 길을, 차도 잘 달리지 않는 그 길을 달리는 것은 무척 지루할것만 같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로드 트립의 매력은 그 '지루함'에 있었다.
쉴 새 없이 질문을 해대던 젊은 파트너도 오늘은 운전 거리가 부담스러워서인지 아침부터 조수석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수면에 방해가 된지 않도록 스피커의 밸런스를 왼쪽으로 한참 빼놓은 채 볼륨을 낮추고 '시리우스 엑스엘' 위성 방송의 발라드 팝 채널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추억의 옛 음악들을 들으며 긴 사색의 시간에 빠지기 시작한다. 로드 트립 중 내가 가장 즐기는 순간이다. 살면서 이만큼 한가지 생각에 깊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기회가 얼마나 있었던가. -215p
로드 트립의 본질. 좀 거창한 표현이긴 하지만 한번 이야기해 본다면. 이것은 '즐거움'이나 '흥분', 이런 단어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가보지 않는 길을 달리는 일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잇는 일들을 겪을 때도 있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지루함'에 더 가깝다. 특히나 광활한 미국 땅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 한가운데로 나 있는 외딴 도로를 아주 오랫동안 달려야 하는 미국 대륙 횡단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자동차 로드 트립을 좋아하는 이유는 과정 중 가장 긴 비중을 차지하는, 지겹도록 운전하는 일 자체를 무척이나 즐기기 때문이다. 물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새로운 길을 달리는 것도 재미있지만, 내가 보다 매력적으로 느끼는 장거리 운전의 묘미는 운전에 집중함과 동시에 주변 방해 없이 자기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 낚시보다는 조금 더 흥분되고, 등산 보다는 덜 산만한 상태랄까. -221p
언젠가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우는 어른'이라는 에세이에서 어른이 될수록 맘껏 울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혼자만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 혼자 살거나 자신의 방이 있는데 왜 없는가라고 따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많은 것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맘껏 울거나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근데 길고 긴 길을 달리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고 당장 떠나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다. 단순히 미국 로드 트립에 호기심이 일었다가 로드 트립의 진짜 매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멀미때문에 유난히 자동차를 타는것에 피곤함을 느끼는 터라 미국 로드트립을 진짜 도전할 가능성은 적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로드 트립에 대한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머리속에 작게나마 미국 로드 트립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로드트립에 대한 팁도 있고 당장 떠나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