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4년전, 그러니까 내가 아직 30대가 되기 전이었다. 그때의 감상을 보니 아주 좋아 죽겠다는 식으로 썼던데 2013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이제는 30대가 됀 내 앞에 다시 나타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여전히 재미있고 설레는 소설이었다. 2013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이 책의 주인공 진솔과 건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들의 사랑이 더 와닿았고, 사랑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게 나의 변화, 이 책은 잛지만 여운이 있는 단편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를 같이 내놓았다는 것이다. 새로 갈아 입은 책의 옷에서도 변화를 엿볼 수 있는데 개정 전은 풋풋한 느낌이라면 현재의 표지는 좀 더 원숙해진 느낌이랄까. 이 소설에서 진솔과 건의 사랑이 달콤하고 풋풋하기도 하지만 30대의 사랑인 만큼 가볍지 만은 않은 점이 두 표지 모두 소설과 잘 어우러진다.

 

이번을 포함해 세번쯤 읽었을까,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설레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으며 닭살이 돋을 만큼 간지러워도 하면서도 읽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건의 말에서 지금에 와서 더 좋아진 말들도 있었다. 주로 진솔의 심경묘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스토리라인이라 건이라는 남자의 마음을 계속 가늠해보기도 했다. 읽으면서 내가 진솔이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대입해 상상하면서 읽기도 했다. 처음 읽었을 때 가상 캐스팅을 하며 드라마나 영화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흡인력과 몰입도가 좋은 로맨스이다.

 

언젠가 이 소설에 대해 혹평을 했던 감상을 읽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유치해서 별로라는 평이었는데 취향이 다른 것에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그들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그러는 그대들의 사랑은 얼마나 고상하고 고차원적인지를. 장담하는데 꼭 그런 사람들의 실제 사랑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항상 유치뽕짝한 면이 많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나 성모마리아처럼 거룩한 존재가 아닌 이상에야 연애에서 유치란건 빼놓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유치한 면이 있다는거 나도 잘 안다. 그래서 더 좋았으니까. 로맨스 매니아로 스타일 편식없이 로맨스 소설을 읽어 왔던 나에게는 더 유치하고 별로인 소설도 많았다. 어릴 때에는 요런 달달한 로맨스가 주로 좋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조금 더 리얼하거나 성숙하고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때론 격정적 로맨스 등 로맨스라면 각설하고 달려드는 나에게 로맨스는 얼마나 유치한거 얼마나 원숙한가가 아니라 작가만의 필체가 좋고 재미가 있다는 것이 기준으로 읽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이 소설은 결코 유치함만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이 30대인데 달달함과 동시에 그에 맞는 원숙함도 있더라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우리들의 사랑에서 유치함이 빠지지는 않는 것처럼.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 연애의 고수 알렉스가 연애 젬병이 지지에게 반해 같이 유치해지는 이야기나 개콘 불편한 진실에서 재연하는 드라마속 상황들도 유치하고 오글거리지만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이유는 이런 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변화는 뒷편에 달려온 단편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가 실렸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제목은 소설속 선우와 애리가 함께 하는 공간인 전통찻집이다. 비 오는 날만 불이 켜지는 곳. 담담한 필체에 담긴 쓸쓸하지만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는 짧지만 여운이 남는 단편이었다.

 

이 소설이 더 좋았던 이유는 라디오와 관련된 장소와 주인공들의 직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좀 소홀해졌지만 예전에는 하루종일 들었던 라디오.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주로 사연을 보내었지만 예전에 조용히 들었던 라디오에 나만의 메세지를 담아 보내던 소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 이름과 사연이 DJ의 음성을 타고 들려오는 짜릿한 기분도 맛보고 작은 선물도 받아보곤 했는데 소설속에서도 엽서로 받는 올드함은 아니지만 라디오라는 다른 매체와는 다른 추억돋는 공간과 이야기가 참 좋았다. 

 

꽃잎이 흣날리고 따스한 바람이 부는 요즈음의 봄날에 설렘과 애틋함을 안겨줄 한국형 로맨스인 '사사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 계절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로맨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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