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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희미한 기억처럼 뭔가 눈 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불명확한 느낌이다. 재미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토니의 희미한 기억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정말 소름끼쳤던 건 소설의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나 소설의 반전 결말이 아니라 다시 읽어볼 수 밖에 없다는 띠지의 문구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다시 읽어볼 마음이 들 만큼 결말에 대한 의문점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과 번역 자체가 꽤 괜찮았다는 점이다.
많은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소설에 대한 감상을 써야하는데 무척 어려울 만큼. 강한 공감과 인상을 남겼던 부분은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이 소설의 주요 테마이기도 한 기억에 대한 부분과 보통 인간들의 문학적 소재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그러했다. 크게는 확인될 수 없는 역사가의 역사에 대한 왜곡과 작게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불과 어제에 대한 기억에 까지 왜곡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다. 토니의 기억도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그리니 자신의 입장에서의 기억은 왜곡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베로니카는 명확하게 말하는 부분이 없다. 우리의 일상에 대입해 말하자면 '허세' 정도가 될까. 어제 있었던 일도 일종의 왜곡인 허세를 덧붙여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이 이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보통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보통의 인간' 토니는 지극히 자신의 삶이 문학적 소재가 되지 않는 평범하고 평탄한 삶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어느 정도의 허세와 왜곡을 덧붙여 말하며 사는 평범한 보통의 삶이라는 점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비열한 편지를 보냈을 지언정 그가 나쁘다는 느낌보다는 보통의 사람들과 닮은 삶에 대한 연민과 씁쓸한 공감이 느껴졌다.
인생에 문학 같은 결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 또한 두려워했다. 우리 부모들을 보라. 그들이 문학의 소재가 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진짜의 진실된, 중요한 것들의 사회적 배경막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 정도라면 모르겠다. -31p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이 아니다. 아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 후로.... 그후로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 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182p
아직까지 의문점 투성이다. 내 이해력이 나쁜게 아닌가 하는 생각머저 들 정도로. 작가마저도 한번 더 읽어야 한다고 하니 그게 정상이라는게 다행이지만. 책을 읽는데 이상한 징크스가 있는데 밑줄 그을 부분이 많은 책은 꼭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좋은 문구가 많은 반면 전체적은 스토리는 별로라는 이야기. 그런데 이 소설은 수시로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무척 재미있기까지 한 오랫만에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