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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스
워푸 지음, 유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평점 :
좋은 작품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지만 소설의 장르 중 그래도 편애를 하는게 있다면 바로 미스터리와 로맨스이다. 그 중 미스터리는 단연 고정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많은 편이라서 구입을 하든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든 늘 내 독서목록에는 미스터리 소설이 빠지지 않는다.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의 소설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만 출신의 작가가 쓴 미스터리 소설을 전에 읽었을 때에도 너무나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읽은 대만 작가 워푸의 이 소설 역시 성공작이 될 것 같다. 그동안 미스터리 소설은 대부분 일본 작가의 작품을 읽어왔고 꽤 많은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묘미는 소설 자체를 읽는 흡입력이 강한 데다 사건을 통해 범인을 알아내고 트릭을 풀면서 느껴지는 흥미로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설정해놓은 소설의 플롯을 따라 주어진 단서로 범인이 누구일지 예상해보고 범인이 설정한 트릭을 풀다보면 예상했던 결말이기도 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만나기도 하는 등 미스터리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나는 꽤 즐기는 편이다. 이 소설 역시 풀어야 할 미스터리가 있다. 다만 그동안 읽었던 미스터리 소설과는 조금 색다른 느낌이었고 읽으면 읽을 수록, 다 읽은 지금은 단지 미스터리 소설로의 재미 뿐만 아니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었던 아주 꽤 괜찮은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작가 후기에 소설에 대한 설명이 무척 친절하게 나와 있어서 소설을 쓴 의도와 주려는 메세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 단지 흥미로운 미스터리로만 소설을 읽어온 나로서는 소설이 더 괜찮아졌다고 할까.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작가가 작품을 쓴 의도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세지는 크게 세 가지다. 미스터리 소설로의 재미,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방식에 대한 방법론, 소설을 통해 사회의 잘못된 사법제도로 인해 억울하게 형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독자들의 각성과 관심 촉구이다.
우선 미스터리 소설로의 이 소설은 내가 소설을 읽은 가장 간단한 기준인 '재미'면에서 아주 재미있다라고 하고 싶다. 총 7가지 각자 다른 이야기가 단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자의 이야기에는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작가가 등장하여 각자가 쓰는 미스터리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들의 공통점이자 이 소설의 가장 미스터리한 점은 바로 '아귀'라는 의문의 인물이다. 다양한 상황과 성격의 작가가 각자 다른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데 이 '아귀'라는 닉네임을 가진 인물은 그 소설의 스토리의 헛점에 대해 메세지를 보내온다. 처음 아귀의 메세지를 받은 작가들은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작품의 헛점에 대해 알고 싶어하면서 아귀와 메세지를 주고 받고 그의 충고에 따라 작품을 고쳐가면서 무사히 소설을 출간한다. 여기에 아귀라는 인물에 대한 힌트는 없지만 또 한가지 의문이 있다면 작가들이 아직 출간도 하지 않은 작품을 읽고 메세지를 보내온다는 것이다. 어떤 인물인가를 재쳐두고라도 도대체 아귀는 어디서 작품을 읽을 수 있었는지가 가장 의문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아귀의 정체와 그가 어떻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는지가 나오는데 정말 의외의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약간 허무함도 느껴졌는데 어쨌든 예상 못한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각각의 이야기에 하오는 미스터리 소설이나 작가와 아귀가 메세지를 주고 받으면서 풀어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물론 이 이야기들이 실재 대만 사회에서 있었던 사건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야기는 나중에야 알아서 또 다른 생각 거리를 던져주기는 했지만 오랫만에 흥미로우면서 색다른 느낌의 미스터릴 만난 것 같았다.
두번째로는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등장하고 작가가 쓴 소설의 헛점과 나아가 미스터릴 소설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 아귀가 지적과 조언을 해주는데 작가는 실제로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오래전 구상해왔다고 했다. 작가가 해온 소설 쓰는 방법에 대한 강연이 아닌 실제 소설에 그 방법을 녹여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실제로 소설에 대한 이론서 만큼은 아니지만 미스터리 소설의 마니아인 나로서는 꽤 흥미롭게 읽었다. 실제 이론서라면 지루해서 읽지 않았을 이야기를 소설에 녹여내어 미스터리를 좋아하지만 그동안 작가의 의도대로 쓰여진 스토리를 읽기만한 기존 미스터리 소설과는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라서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실제로 예전에 읽은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작품은 피아노를 조율하는 조율사에 관한 소설인데 피아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던 조율에 관한 이야기와 피아노가 이루고 있는 구조나 소재에 관한 이야기라서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소설 역시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을 쓰는 방식이나 그 세세한 구성에 대해서는 이론서를 읽지 않는 이상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용들을 소설을 통해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가장 깊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작가의 메세지인데 7가지 소설속 이야기 모두 대만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스토리이며 의문의 인물인 아귀는 모두 소설속 사건의 범인이 모두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모두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인해 형를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사회의 잘못된 사법제도와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의 방식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작가 후기를 읽기 전에는 실제 사건이라고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의도를 보고 나니 소설이 지닌 무게감이 세삼 느껴졌다. 역자 후기에도 나온 우리 사회에 일어난 비슷한 사건이라던가 그 밖에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대만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실제로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작가의 말대로 꾸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은 마음에 와 닿았다. 어째서 과학이 나날이 발전하는 지금의 세상에 아직까지 이런 일들이 있는지 나 역시 소설을 읽고 답답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미드 중 나는 <CSI>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모든 에피소드를 다 봤을 만큼 마니아이고 이에 대한 실제 과학 수사에 관한 다큐도 본 적이 있다. 그 드라마는 사건에 대한 증거를 다루는 과학 수사대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들이 사건을 풀어 가는 단서는 단연 '과학'이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과학 수사 방법이라는게 실제로 쓰이는 것도 있겠지만 허구도 많다. 드라마적 재미를 위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믿는 증거는 오직 '과학'에 입각해 발견한 증거라는 점이다. 정황증거나 증언에 의존한 불확실함이 아닌 확실한 과학적 증거. 비록 허구이기는 하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그런 증거들과 경찰이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이 들어간 범인 검가가 이러한 사건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과학적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확실하지 않은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조금은 어런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 문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작가가 말한 이런 일들에 대한 관심만은 소설을 통해 조금은 각성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와 읽는 중간중간, 그리고 다 읽은 지금 소설에 대한 느낌은 모두 다르다. 단순히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로만 읽었지만 소설이 지닌 의미는 그보다 더 깊고 무겁다. 하지만 그래서 더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것 같다. 미스터리 소설로의 재미도 있으면서 미스터리 소설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움을 더해 주면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니까. '픽스'라는 제목처럼 고칠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소설에서 잘못 지목된 범인은 파일을 지우고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실제의 세상에도 'Fix'할 수 있는 일들만 있기를 바래본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하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