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아리랑 - 잊혀진 대륙, 일만 리 만주기행
류연산 지음 / 돌베개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만주 화룡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저자 류연산은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사는 일만 리 만주땅 답사를 통해 만주 조선족의 역사, 문화,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진실된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역사책은 백성의 삶을 외면하기 마련’이라고, 만주 땅을 개척하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온 조선족에 대한 기록을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책에서는 만주기행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롯이 녹아 있는 백성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저자는 1994년 무거운 행장을 둘러메고 일만 리 만주 기행을 시작해, 만주 땅을 메주 밟듯 옹근 4년 세월을 돌아다닌다. 두만강, 압록강, 흑룡강 수천 리 물줄기를 따라 동북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조선족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역사와 삶을 조사하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만주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책에서는 해답이 곧 만주 조선족의 역사와 그들의 삶 속에 담겨있으며, 그것은 미화되거나 감춰진 조선족의 모습 속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현실 속이라고 말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우리 선조들의 이주와 만주 땅 개척, 항일 독립운동과 광복, 6.25전쟁, 문화대혁명 등 만주에서의 조선족의 역사는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이였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 만주 조선족들은 생존을 위해, 또는 민족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의 역사를 직접 써나갔다. 책에서는 이러한 역사 속에서의 삶을 그들에게 직접 듣거나, 말에서 말로 전해져 내려온 구술 자료를 통해 찾아내고 되살렸다. 자랑스러운 역사 뿐 아니라 치부로 여겨질 역사에 대해서도 서슴지 않고 다루는 작가는 19세기 말 이주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역사적인 사건이나 백성의 삶을 책에서 말한다. 수로 건설을 통해 만주의 전설적인 벼농사 대부로 전해지고 있는 황룡세, 만주 반석일대에서 항일의용군, 일명 개잡이부대를 이끈 전설적 영웅 이홍광의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훌륭한 업적과는 대조되게 만주 일본군사학교에 다녔던 박정희의 친일 행적을 과감 없이 말하는 저자는 대통령으로서의 박정희의 공과 인간으로서의 박정희의 과오를 확실히 구분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처를 감추고 고치려하지 않으면 속에서 썩어들어 가듯이, 대통령 박정희의 친일 행각 같은 부끄러운 역사도 가리려고 하면 속에서 곪아가게 된다. 역사를 진실된 시각으로 보고 잘못된 행적에 대해서는 감추기보다는 드러내어 반성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박정희의 친일 행적처럼 잘못 알려지거나, 감춰진 역사를 바로 알리고자하는 목소리는 가곡 ‘선구자’의 원곡이 유랑민의 설움을 담은 ‘용정의 노래’이며, 작사자 윤해영이 친일파라는 사실을 다루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광복 이후 200만 중국 조선족의 터전이 된 만주는 이후 한국전쟁, 반우파 투쟁, 문화대혁명, 개혁 개방 등 파란 많은 중국 근현대사의 거친 파도에 휩쓸린다. 두만강 답사 길에서 취재한 한국전쟁 열사의 아내와 문화대혁명 때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때문에 우파로 몰려 징역살이를 한 조선족 지식인 오재근의 증언은 조선족이 중국 근현대사를 헤치면서 겪은 고난의 역정을 전해준다. 그리고 남북 분단 이후 역사에 묻혀 잊혀진, 만주에서 활약했던 독립 운동가와 그 후손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김좌진 장군의 딸 김산조 여사가 가난에 찌든 채 살고, 김규식의 딸 김현태 여사가 근근득식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말하면서 역사의 그늘에서 독립 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의 고난에 찬 인생을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만주 조선족이 힘겹게 보전해온 결혼, 장례, 주거, 음식 문화 이야기나 우리 민족의 전통춤인 수박춤의 유일무이한 전수자로 맥이 끊길 위기에 있는 김학천 옹의 삶 등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조선족의 힘겨운 노력을 다루며 조선족의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민족 문화를 지켜내려는 노력 외에도 만주 조선족들은 민족 문화를 다른 민족의 문화와 조화시키는 지혜를 보이기도 한다고 알려준다. 중국식 가옥 구조인 봉당에 온돌을 결합하여 조선족만의 독특한 가옥 구조를 만들기도 하고, 냉면, 불고기 등 우리 음식을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량하여 모든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의 만주 조선족의 조화의 지혜는 이를 말해준다. 저자 류연산은 ‘참역사는 발밑에 있으며 그것은 그 터전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겪고 보고 듣고 느낀 것’ 속에 있다는 신념으로 만주 답사 길에 만난 모든 이들을 꼼꼼히 취재하고 기록하면서 풍부한 구술자료와 증언을 확보했고 이러한 노고 덕택으로 이 책에 역사책을 뒤지고 훑어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를 실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직접 말하는 이야기가 새로운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도, 굳어버린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하면서 이 책을 완성시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