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창작하는 능력이 없어 파괴에만 창조력을 쏟아붓는 애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편이다. - P34
그렇게 나는 이세연의 종말까지 함께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랬다. 열정과 팬심이 친분으로 변하고, 친분이 형편없는 일상으로, 그 형편없는 일상이 청춘의 낭비와 착취라는 깨달음으로 변하며 다툼과 결별로 이어지기까지. - P39
내가 그간 어떤 선택을 했든, 어떤 길을 걸었든, 우리가 어떤 다툼을 했든, 모든 일들은 세월에 마모되고 윤색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만이 이 자리에 남아 빛나고 있다고 말하듯이. - P78
그래도 없어졌다면 그렇게까지 소중하지 않은 물건일 거예요. 적어도 지금은 말이죠 - P82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계속 쓰거나 지켜보아야 한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빌려 말하자면, 모든 것이 확률적으로 존재하여 관찰로 고정해야 하는 셈이려나. - P87
"그렇게 한 곳이 정교해지면 다른 곳은 또 성글어지겠지만." - P99
나는 오랫동안 네가 다시 살기를 바랐고 네가 살 수 있었을 모든 다른 경로를 반추했고, 어느 시점에서는 그저 다른 결말을 빌었다. - P106
내 목숨은 내 것이라 하찮으니, 중요한 것은 그대의 생명이니. - P113
우리는 순간이라는 신비 속에 잠시 존재했다 사라지는 허상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실상 존재하지도 않아요. - P129
나는 ‘나’를 인지할 수 있었고,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느꼈다. 내게는 주관이 있었고 그 주관은 내가 영혼을 가진 존재처럼 느끼게 했다. 나는 죽음을 기억할 수 없었고 삶만을 기억했다. - P158
너 죽을 결심을 했구나. 죽을 마음은 조금도 없으면서 말이지. 그렇지? - P178
무엇이 좋은 선택이었을지 지금도 가끔 생각하지만 결국 지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 P186
너무 가까이 붙어 살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경험은 동일했고 매 순간이 같았다. 아는 것이 같아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 P187
누군가가 간혹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은 전체의 것이 되었다. 때로는 그 의견이 남의 의견이었는지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지도 헷갈렸다. - P188
꼭 대단한 전사거나 영웅이라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운 좋게 운명이 비껴간 것이다. - P190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좋은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 P200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면 아무리 저주받았거나 귀신에 들렸다 해도 찬양하고 싶어지는데. - P209
내 철 지난 수명에 미련은 없으나, 나는 여전히 내 숲의 요람이며 그녀의 무덤이 아니던가. - P216
죽음은 사람이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가 찾아와 덮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차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다 나중에는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었다. - P261
어쩌면 슬픔은 처음부터 내 생명에 깃들어 있었으리라. 어떤 사람은 그렇게 심장에 가시를 박고 태어나는 모양이다. 아리고 쓰라리고 서러운 것이 애초에 내 영혼에 깃들어 있었고 단지 너처럼 좋은 인연이 있어 보듬고 달래주었을 뿐이더라. - P269
그러니 나는 여기 머물고자 한다. 이곳이 내 세상이니. 이 낯섦이 내가 원한 것이니. 이 삐걱거림이 내 갈망이었으니. 저 너머의 내가 바란 것이 바로 내 이 삶이니. - P269
증명할 수 없는 문제는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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