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위의 세계 - 2012년 제43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정영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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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적이다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럽다란 뜻이다.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세계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 인위적이고 작위적이다.

그 세계는 이렇다할 특별한 사건도 경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질구레한 생각이 자질구레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그 생각들은 연쇄적인 나열로 이어져있어 어떤 것이 더 자질구레하고 덜 자질구레한지 생각하다보면
독자는 어쩔 수 없이 그 고리를 쫓아가게 된다.

가다보면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느냐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내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또 꼬리를 물고, 그러나 반드시 읽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이 작위적인 사고의 물결을 타고야 마는 것이다.

센프란시스코의 안개와 초록색 양말과 괴물
용설란을 쏘며 보내는 시간들
누군가 써 놓은 바닷가 모래위의 이름을 몰래 지우는 일

하나같이 의미가 없는 시간들이며 화자는 이 무의미한 시간들의 무의미한 나열을 통해 작위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무의미하므로 무의미한 사건들뿐이고
무의미한 일들이 왜 일어나느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너무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라는 말밖엔 할 수가 없다.

잠을 자고 창밖을 보고 공원에서 개랑 눈이 마추지고
거기에다 머릿속을 센프란시스코의 안개만큼이나 뿌옇게 흐려놓는 생각의 꼬리를 붙잡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만들어가는 허위의 세계는
무의미하게 시시하고
무의미하게 하찮은 일들이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만, 안 일어나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는 왜 이런 무의미한 글 따위를 읽느냐하면
그것이 꼭 무의미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무의미를 안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할만큼 유의미한 일이며 무의미한 세계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무의미한 시큰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시큰둥으로 시작해서 시큰둥으로 끝난다.


" 혼자 그렇게 궁상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궁상을 떨 것은 없었는데도, 떨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궁상을 유감없이 떨고 나자 하나도 후련하거나 하지 않았고, 가끔 그러고 나면 그런 것처럼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지도 않았고, 궁상을 떨며 많은 것들을 생각해내며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그다지 소중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작가의 이 독특하게 작위적인 문체에 주제가 다 드러나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의 현실세계가 그런 것처럼
일변 논리적인 사고 같지만 그것은 지극히 비논리적이다.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논리적 진술을 가장하지만 결국 비논리적인 진술이며
현실과 비현실이 불분명하고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어 경계가 모호하다.

이런 의도적인 장치로 이 세계가 질서정연한 세계라는 단정을 뒤집고 맞아 떨어지는 사실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없다.
그저 작가의 정신나간 듯한 상상이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우리 또한 의도하지 않아도 데킬라를 마시며 상상을 위한 상상에 빠져 히죽거리는 작가를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소설이라는 그 어떤 장르적 명분도 없는 소설을
우스꽝스러운 무대의상같은 재킷을 입고 인도 자바원숭이의 슬픈 일생을 상상하며 키득거리는 소설가에게 슬슬 약이 오를 때쯤 비로소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눈치채게 된다.

재미있는 소설이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소설이다.
마치 삶에서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무언가를 말할 기대도 버리는 것이 맞다고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그 어떤 기대도 하지 말고 읽어야 한다는 기대를 하는 셈인데 소설을 기대하지 않고 읽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마치 삶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죽을 수는 없는 것처럼
소설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해서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소설이 무언가를 잔뜩 말하며 손을 내민다. 평범하지 않는 그 손을 잡고 싶은 독자라면
약간의 지루함을 각오하고 이 상상의 세계로 걸어가길 당부드린다.

한국문학의 수준을 정영문 작가가 끌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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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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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치나스키...
그는 한마디로
진흙에서 피는 목이 꺾인 꽃이다


이 책은
지극히 속되고 비열한 현실 세계에 대한 목도와
그 세계에 편입한 자신의 가정및 환경이 가하는
폭압과 거기에 대한 기록이다


지적인 품위와 사려깊은 문장을 기대해선 안된다
노골적인 비속어들이 여과없이 노출되고
어둡고 퇴폐적인 장면들에선 아찔하기까지하다


한 소년의 성장기의 터널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읽는 독자들은 어쩜 무안하고 봐서는 안되고 들어선 안될 이야기를 훔쳐 읽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 작가가 묘한게..


거친 이야기를 하는데 섬세하고 차분하며
무거운 이야기인데 경쾌하며
슬픈 이야기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성숙함이 있다


이건 뭘까....


한참을 생각해보니 그것은 솔직함에 있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폭력과 따돌림과 이른 성적 호기심.
이런 어두운 이야기 보따리를 너무 쉽게 풀어낸다


그것이 뭐 별거이냐는 듯...


진솔함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때 온다
마음껏 자기 이야기를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답게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말일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유년의 우물이 아무리 깊다고 한들
우리는 우울하지 않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이 고통스러운 삶을 버티도록
단 한순간의 선물이 있다면 그건 유년시절일 것이다


모두가 처절하게 가난했던 대공황을 지나온
그의 유년은 읽기가 괴로울만큼 외롭다



펼쳐진 스산한 유년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주어진 얄궂은 운명에 대한 초월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한편으론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조롱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날것이 주는 동물적 본능을 속되게 배설하는 쾌감
지속적으로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음을 희망하는
허무의 패러독스
궁핍과 모멸로 얼룩진 어리고 약한 자아의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슬픈 수용....


이런 것들이 느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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