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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살 정은이
정유정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그녀는 꾸미지 않았다. 그냥 썼을 뿐이다.
소설을 썼지만 만들지는 않았다.
그녀의 소설은 스케치한 연필선이 보이는 맑은 수채화도 같다.
그때는 그랬다.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어서 옛날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하다.
그저 전에는....
샤프 하나에 온 급우들의 부러움을 사고,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회에서 운동장 저 한켠에 숨어 서서 부모님이 따라온 친구들을 보며 괜한 설움에 눈물을 훔치던 때.
아버지의 사랑은 보통 '미운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매로 표현 되고, 그래서 사춘기 여린 마음은 반항으로 답하고.
참 무지도 많이 맞았고, 유서도 많이 쓰던 때다. 곱고 슬프게 죽어가는 모습을 그려보던 시절.
그냥 386세대들의 보통 이야기.
그녀의 소설은 그런 이야기들을 썼다.
어른들 앞에서 '옛날'에는 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는, 그렇지만 신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386세대만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고 쉽게 써서 장면장면이 영화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결코 쉽게 읽을 수는 없다.
제법 능숙하게 씌여지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는 촌스러움을 감추고자 애써 서울말씨를 흉내내던 촌놈들에게 오래간만에 고향에 간 듯한 느낌을 주었고,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는 어린시절의 풍경은 낀 세대들에게는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조용한 책이다. 이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