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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 ㅣ 창비세계문학 75
헤르만 브로흐 지음, 이노은 옮김 / 창비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혹]을 선택한 계기는 창비에서 나온 세계문학 총서이자 최초 번역된 작품으로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사회에 대한 이야기란 소개를 보고 흥미가 생겼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 파시즘과 나치,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꿈틀거리고 있던 사회로 대중이 어떤 심리 상황이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치의 혼돈의 시대에 악이 더 자리 잡기 쉬운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이 책은 서술자(의사)가 알프스 산마을에 들어가서 겪게 되는 일 년 동안의 일들을 14장에 걸쳐 에피소드별로 기술하고 있다. 주요인물로는 의사 양반과 윗마을 할머니 기손과 그의 외손녀 이름가르트, 이방인 마리우스와 벤첼,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베취 가족이다.
산골 마을 사람들은 전쟁의 상흔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이 평온하다 못해 지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윗마을 사람들에게 산이란 신적 존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면 아랫마을 살마들은 그보다 산업화 된 삶에 조금은 익숙해져 보였다. 그런데 마리우스 라티란 인물이 불쑥 나타난다. 그는 황금을 찾기 위해 마을에 왔다고 하였고, 큰 욕심 없이 살던 사람들은 그에게 적대감이 우선했지만 시나브로 그의 존재는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의사선생을 눈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농부 밀란트 가족은 스스럼없이 이방인 마리우스의 거처를 마련해준다. 그런 방랑자는 죽음을 몰고 다니기 마련이라는 말에 밀란트는 이러게 말한다.
“죽음이 우리 가까이에 웅크리고 있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죽임이고 우리의 친구야...... 하지만 우린 낯선 죽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p75)
이 대사에서 우리는 이미 끝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할 수 있다.
마리우스는 행동대장으로 벤첼을 앞세워 마을 청년들을 구슬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사상은 베취의 직업과 같은 라디오나 탈곡기 사용을 터부시하고 서비스 직종을 경멸하는 반면, 산에는 분명 황금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파한다.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는 한 세트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벤첼) “그런 것이 세상에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면 더 좋죠.”
(의사) “당신이 그 사람을 괴롭힌다고 해서 그걸 중단시키지는 못할 겁니다.”
(벤첼) “하지만 그 사람도 보험과 라디오를 가지고 모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고요.....”(p193)
베취 가족에 대한 벤첼과 의사의 대화를 읽으면서 마음이 화들짝한다. 벤첼에게서는 혐오를, 서술자에게는 그에 이미 일부 동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리우스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란 말이 이어진다. 거기에 히틀러의 인종우월주의도 숨어있으리라.
가톨릭적 전통이 강했던 마을이지만 마땅히 지도자라고 할 만한 존재가 없었다. 기손의 외손녀이기도 한 이름가르트의 산신부 의식에 앞장섰던 신부님은 보기에도 매우 노쇠하고 답답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그나마 중립자적 위치인 의사선생에게 마을사람들은 약간의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그 빈자리를 결국 마리우스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름가르트가 마을의 희생 제물로 스스로 바쳐지던 날, 아무도 이를 막는 주민은 없었다.
어머니 기손 외에는...
(기손)“자네는 누구에게 순종해서 자네의 자식을 죽이려 하는 건가? 자네의 두려움에 순종하는 건가?”
(밀란트) “예, 우리의 두려움은 이제 너무나 거대해 졌습니다. 세상이 구원자를 부르고 있어요.”
딸의 죽음마저도 합리화해버릴 수 있는 이교도적 행위, 외손녀가 마녀사냥과도 같은 대중의 광기에 맞서기에 어머니 기손은 다소 무기력해 보였다. 하지만 광기에 어린 사람들의 마비를 깨운 작은 반항의 힘은 기손을 향하고 있었다.
(기손)“우리는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죽음 속으로 건너갈 필요가 없고,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 속으로건너갈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죽음이 무가치하거나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비통한 죽음도 살아나게 된다는 거다. 살아 있는 것은 언제나 쓸모있다는 거지. 내가 배운 것은 내가 종말을 보고자 한다면 종말 쪽이 아니라 중심을 보아야 한다는 거다. (중략)우리는 죽은 이들 쪽을 바라볼 수 있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돼.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거야.”(p460)
마리우스가 외부자로서 불손한 시선을 대표했다면 그의 반대편에 어머니 기손이 있었다. 그녀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이미 자연이 된 이름가르트와 조우한다. 거기엔 슬픔도 회한도 없고 산과 대지의 기쁨에 더 가까운 그 무엇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느낌은 이 책을 직접 읽어보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손에게서 자연의 여성성에 대한 통찰, 틈틈히 보이는 서술자의 노동과 직업에 대한 성찰도 인상적이다.
[현혹] 헤르만 브로흐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서 오랜만에 세계문학을 접한 낯설음과 동시에 그의 문체에 익숙하지 않아 몇차례 반복하면서 읽었다. 20세기 초 혼돈과 도덕이 상실한 시대에 산골마을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그것은 문명의 발달한다하더라도 자연과 죽음 대하는 인간의 진지한 태도, 죽음을 넘나드는 극단적 상황에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가치에 대한 되새김질이 아닐까. 광기와 현혹의 역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