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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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은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잔잔하지만 섬세한 감정 표현을 즐길 수 있어 그 특유의 읽는 맛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안고,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마주했다.

 

이 책의 저자인 츠지히토나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집필한 작가로 국내에도 다수의 팬을 지니고 있다.

소설뿐만 아니라 요리 에세이 등을 집필했고, 영화감독 그리고 뮤직 아티스트로서 본인의 재능을 다방면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다.

소설가나 작가가 아닌 진정 종합 예술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한밤중의 아이'는 책 제목과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환한 달이 뜬 한밤중, 혼자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다소 심오하고 어두운 내용이겠구나 짐작이 되었다.

 

이 소설은 후쿠오카의 '나카스'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는데, '강의 모래톱'이라는 의미의 이 섬은 작지만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섬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 서울의 여의도 같은 느낌인가보다.

 

실제 존재하는 곳인가 싶어 검색해보니 후쿠오카의 밤을 대표하는 도시로 나카스 포장마차, 클럽 등을 관광한 사람들의 여러 후기가 눈에 띄었다.

이 소설을 읽어보고 나카스의 밤거리를 여행하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도입부는 2016년 경찰 히비키가 8년 전 초임으로 근무했던 나카스 파출소에 재부임하여 폭동을 진압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외국인 폭력배 간의 싸움, 둘러싼 구경꾼들 그리고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차량들로 난리 법석인 혼잡한 거리에서 히비키가 한밤중의 아이, 렌지를 다시 마주하게 되며 이야기는 2005년으로 급격히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 아카네는 클럽에서, 그리고 아빠 마사카즈는 호스트로 밤일을 하고 있었다

 

다섯 살의 렌지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무호적 아이로 부모의 방치와 학대 속에서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 나카스의 밤거리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낸다.

술 취한 어른들 사이를 쪼르르 뛰어다니는 어린애로 유명인사였던 렌지를 나카스 사람들은 '한밤중의 아이'라고 불렀다.


화려한 조명 아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카스였지만 다행히도 형이 되어준 이시마, 친구가 되어준 노숙자 등 렌지에게는 온정의 손길을 뻗는 주변 이웃들이 많았다.

 

 

가토 렌지, 국민 번호 299346, 나카스국의 대통령

 

시간이 흐르며 렌지는 자신이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보호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나라를 만든다. 비정상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일상을 정당화 시키고 묵묵히 받아들이기 위해 렌지 스스로가 선택한 살길이었다.

 

육지와 연결되어있지만 분명한 섬인 나카스.

일본인 부모를 두고 있고 일본 태생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렌지.

작가의 공간 설정과 의도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 들어 가슴에 큰 파장을 남긴다.


 

 


히비키는 렌지가 처한 어려움을 알고 기본 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듯 각자의 바쁜 사정으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흘러가는 역경과 고난의 시간 속에서 렌지는 끝없는 인생의 너울을 맞이하지만 그의 옆에는 묵묵히 그의 옆을 지켜주는 주변 어른들과 여자친구가 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편견 없이 아무렇지 않게 렌지를 대해주는 사람들.

 




 

위로의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역시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대해주는 것' 같다.

소란스럽지도 적극적이지도 그리고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없겠지만 조용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게 때로는 최선이 아닐까.


개인의 힘은 미약하고 처해진 환경에서 누군가를 구제해낼 획기적인 방법은 될 수 없겠지만, 작은 관심과 들여다봄이 그 사람이 스스로 도약하는데 보탬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글파파로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작가가 한밤중의 아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외면받고 고통받는 아이들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던 츠지 히토나리의 신작이었고, 기대만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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