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의병장의 꿈 -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나남출판 30년, 제2판 나남신서 1450
조상호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에서 다양한 수업을 듣다가 궁금한 내용이 생겨서 도서관에 가서 원하는 책을 찾아보고 나면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은 태반이 ‘나남출판’이라서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나남신서'라는 이름을 달고 도서관 여기저기에 꽂혀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언론학을 기반으로 사회과학 관련 책을 2천여권 남짓 쏟아낸 출판사였으니 그렇게 높은 확률로 나남의 책을 만날 기회가 있었겠죠.

 

<언론 의병장의 꿈>은 출판계에 큰 족적을 남긴 나남을 만들고 이끌어 온 출판인 조상호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나남출판과 관련한 일화들을 모아둔 회사 홍보물의 성격도 띄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출판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에세이라고 볼 수도 있는 독특한 성격의 책입니다.

 

사실 나남 출판이라는 출판사에 대한 인식도 깊지 않았고, 더더군다나 조상호 라는 개인 한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던 터에 얼핏 봐서는 회사 홍보물처럼 보이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첫인상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다 보니 이렇게 투박한 편집 속에서도 저자의 진솔됨이 묻어나와서 오히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잘못된 편견에 대한 죄송함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나남’이라는 회사의 이름에 걸맞게 ‘나’ 조상호의 이야기와 조상호가 만나고 관계를 맺어온 ‘남’의 이야기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습니다. 1부가 조상호 사장 개인의 ‘나’가 적은 ‘남’에 관한 이야기 였다면, 2부와 3부는 ‘남’들이 조상호를 바라본 언론기사들과 평문들을 모아 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부에 실린 토지의 박경리 작가에 관련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토지를 나남 출판사 판본으로 처음 접했기 때문에, 토지 출판까지 얼마나 험난한 과정과 이를 출판하고 싶어하는 출판사들 간의 갈등이 있었는지를 몰랐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많은 뒷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토지>보다 <김약국의 딸들>이 더 많이 팔려서 섭섭해 하셨던 박경리 작가의 모습, 편집의 편의를 위해 전 출판사인 솔출판사의 토지 데이터를 구입하려다 출판사의 자존심으로 거절하는 임양묵 사장의 결정을 오히려 존중해주는 조상호 사장의 훈훈함, 위대한 작품에 대한 존중을 위해 마진이 적게 남더라도 양장본 발행을 강행하는 고집, 편집자의 눈으로 미처 찾아내지 못한 오타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애독자들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초판을 전부 회수하고 모든 오류를 교정해서 다시 내놓은 정직함, 그리고 혹시나 이 사연이 홍보수단으로 비칠까 두려워 언론에 알리지도 않고 비밀리에 진행했던 순수함까지 하나하나 이 이야기만으로도 독립된 한 편의 책 하나를 구성할 수 있을 듯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서로 경쟁하는 입장이니만큼 출판사들끼리 사이가 안 좋을거라는 저의 편견은 책 여기저기 적어진 에피소드에서 산산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동업자 의식으로 서로의 책이 나오면 격려해주고, 부족한 점은 나서서 도와주기까지 하는 모습에서 훌륭한 출판물에는 출판사 한 곳의 열정이 들어있는게 아니라 수많은 출판사들의 사랑과 격려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만, 독특한 책의 형식상 어쩔 수 없는 특징이었겠지만, 동일한 이야기가 책 여기저기에 나누어져서 반복되어서 실리는 점은 책 전체의 구성면에서의 통일성이 떨어지고, 독자의 몰입에 방해가 다소 되는 점이 있으므로 책 전체에서 가장 힘을주고 분량면에서도 압도적인 1부 만이라도 장 구분과 소제목 등을 이용해서 반복되는 부분을 줄이고 주요 에피소드를 강조하는 식으로 편집이 이루어진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독재 군부를 비판하기 위한 우회적인 방법으로 시작한 출판저널리즘이 오늘날 한국 사회과학 출판분야의 거목이 되기까지, 저자가 겪은 여러 사연과 그가 맺은 수많은 인연들을 자서전이라면 으레 그렇듯 자랑하는게 아니라 겸손하게 회고하는 필체가 참 보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북뉴스 서평단 참여 서평이며, 나남출판으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