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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산문의 거울 8
최영실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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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 없이 “아, 거기 좋더라!” 정도의 말만 들어도 설렐 때도 있다. 작가 역시, 진평왕릉을 처음 접하는 지인의 말로 그곳 인상을 마무리할 때, 말인즉 “이 분위기 좀 봐, 좀 좋아”다. 만약 내가 진평왕릉을 가보지 않았다면 다음 행선지로 진평왕릉을 우선 꼽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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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 차력사의 오늘 이야기 - 역사를 통해 시대를 보다
차경호 지음 / 노느매기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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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호, 『방탄 차력사의 오늘 이야기』, 노느매기, 2018.

부지런하고 입담 좋은 차력사쌤(차경호 역사 선생님)이 그간의 방탄(방송 탄) 원고를 묶었다. 
어제는 남북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 확대와 함께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한 날이다. 변화에 대한 기대로 저자의 오늘 이야기가 더 솔깃해진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이야기를 늘 듣지만 역사 국정교과서 논란 등 배우는 내용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휴전 이후, 한쪽 목소리는 뚝 떼어져 반대쪽에 있고 상호 적대시하는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정권에 따라 화해 분위기가 잠깐 나타났을 뿐, 열강과 집권 세력의 이해관계 속에 70년 세월, 분단은 콘크리트였다. 그 분단을 지우려는 지난 노력들을 대해서 당사자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저자는 그 입장을 제대로 평가하려고 애쓴다. 때로 직설적으로 때로 노회하게 역사적 장면에 대해 들려주는 목소리는 이전의 시각을 조정하게끔 당기고 놓아주는 탄력성이 있다. 
단일화를 합의했던 신익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승만과 대결했던 조봉암,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주장한 반면에 조봉암은 평화통일을 주장했다. 진보당을 창당하고 다음 대선의 유력한 주자였지만, 간첩 혐의로 사형당하고 만다(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후, 정권의 걸림돌이 되는 인사들을 용공 혹은 종북 혐의를 씌워 활동을 제한하거나 죽음으로 내모는 지경까지 이르니, 일반 시민들도 자기 시각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게 말할 자유를 스스로 검열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참다운 민주주의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정치 지반인 전근대적인 유제가 위협을 당하면 용공이니 빨갱이니 하는 상투적인 술어로 상대 세력을 학살시켰던 것이 한국적 매카시즘의 아류들이 저질러온 행적이었다”. 이 말은 조봉암이 했을 법한 말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남로당 가담 전력이 있는 박정희다. 그럼 왜? 조봉암은 왜? 박정희는 왜? 질문이 이어질 만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생각의 여지를 남겨둔다. 
저자는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기도 하고, 김구, 장준하, 김원봉, 박상희(박정희의 형), 전태일, 인혁당 희생자 등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잘 간추려 들려준다. 인물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문제 장면이나 인식과 결부지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앞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해서, 민주주의 대신에 ‘자유 민주주의’를 쓰고 싶어 하는 일단의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립된 바 있다. 저자의 입장은 명쾌하다. “자유주의는 국가의 통제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우선하며 자유로운 시장 거래와 경쟁 체제를 통한 이윤 획득을 추구”한다. 반면에 ‘사회 민주주의’는 과열 경쟁이나 빈부 격차 등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 국가를 지향”한다.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결국, 두 가지 입장을 다 갖고 있는 것인데, 자유 민주주의만 편드는 것은 자유 경쟁의 정당성만 강조하면서 강자 중심의 사회로 발전해야 논리가 깔려 있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사회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간과하기 쉽다고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바른 역사에 대한 고민이 짚이는 부분이다. 거북선을 누가 만들었을까? 여기에 쉽게 이순신이라고 답하는 태도에 의문을 갖는다. 거북선을 설계하고 공사하는 과정을 총괄한 나대용이라는 군관이 있었고, 많은 목수들과 대장장이들 그리고 수병들이 거북선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영웅사관과 민중사관의 접점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민중의 삶을 살면서 민중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영웅으로 등장하는 사회면 된다고. 지금 그런 시대로 가고 있는지 생각이 다를 순 있겠지만 그런 시대로 가게끔 깨어 있어야 할 필요를 배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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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폐허
김일석 지음 / 산지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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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한 편을 읽어본다.

반성론 / 김일석

1.
나무라 해서
꽃더러
반성하라고 하지 마
모두가 쓸쓸함 견디며
고요한 숲에
버려진 존재인 걸

2.
한때 파리의 구석진 다락방에서
절망했다는 늙은 피카소가
죽기 전 열아홉 소녀와 살았다 해서
남을 돕는 행위가 진부하다 했던 그가
이기적인 공산당원이었다 해서
밤마다 우울과
매음(賣淫)을 그렸다고 해서
반성하라고 하지 마

- 김일석, 『붉은 폐허』, 산지니, 2017.

* 나무와 꽃을 별개로 보든지, 나무와 나무 안의 꽃으로 보든지 간에 나무는 꽃을 나무랄 입장이 못 되는 걸까.
‘반성하는 것’과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 존재의 행위를 반성하는 것은 이전보다 더 좋은 쪽으로 자신을 가꾸어 나갈 여지를 주는 것이다. 반면,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공동체의 윤리나 강령 혹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잣대를 내세워 다른 생각의 여지를 줄이는 면이 있다. 특히, 반성을 요구하는 쪽이 세력이 되어 이쪽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고 목소리를 키울수록 사회는 경직되어 오히려 삶의 여유를 앗아가기도 한다.
시인은 아예, 나무든 꽃이든 그 어떤 존재이든 “쓸쓸함 견디며”, “버려진 존재”라는 데서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이런 마당에 누가 누구를 차별하고 강요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지에 대해서 저마다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피카소의 그림과 삶을 엮어 또 하나의 반성론을 쓴다. 입체파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 <아비뇽의 처녀들>(1907)은 나체의 다섯 매음녀가 등장한다. 여러 각도에서 본 것을 화 화면에 섞어 구성하는 기법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피카소는 춘화를 연상케하는 수백 점의 그림과 판화를 남기기도 했다. 여성 편력이 있다 해서, 그림이 점잖지 못하다 해서, 그의 사상이 나와 다르다 해서, 돈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피카소의 말에 실망해서 등등의 이유로 피카소에게 반성을 요구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시인은 되묻는다.
피카소에게 “구석진 다락방”의 청색시대가 있긴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부와 명예를 갖다 준 다양한 그림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끊임없이 변해 왔을지언정 외부의 강요와 주문에 따른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그의 그림 역시, 평범해졌을 테니까.
반성은 반성해야 할 사람이 더 떠드는 경향도 없지 않다. 자기 생각, 자기 방향에 철두철미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일수록 나무에게 꽃에게 심지어 자신에게 엄혹한 잣대를 대어 새로운 생각과 값진 상상력을 제한한다.
이 세상에 오고 가는 특별한 시간이 “버려진 존재”로 귀결되는 건 쓸쓸한 일이지만, 이런 인식이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며 겸허하게 사는 데 바탕이 된다면 즐거이 수용할 일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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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편지
김경순 지음 / 만인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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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엄마의 마음 편지』, 만인사, 2017.

 

이 책은 엄마에 이어 국어교사를 꿈꾸는 딸에게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독자에 따라서는 말하는 어머니를 따라 자신을 비춰 보기도 할 것이고, 또 아들딸의 입장인 독자라면 부모의 말을 듣는 느낌을 가지기도 할 것이다. 딸에게 하듯, 그 또래의 제자에게 하듯 정이 담긴 말 속에는 삶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배여 있어 책 읽는 동안에도 몇 번씩 읽기를 멈추고 생각할 여지를 갖게 한다.

저자는 딸의 롤 모델답게 독서를 즐겨하고, 시를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하며, 주위를 잘 챙긴다. 세상을 배우고 배운 것을 학생들과 나누는 데도 열심이다. 특히, “입만 열면 시를 이야기하던 시시한 선생님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정도로 시 읽기를 좋아하고 실제 수업에서도 시 쓰기를 권장하면서 『누구나 왼손에 시를 품고 산다』등 여러 권의 학생 시집을 엮는 데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러 면에서 훌륭한 저자지만 이런저런 고민거리는 언제든 있다. 잠자는 학생을 활동에 참여시키려는 욕심에 한두 마디 던진 것이 오히려 학생의 분노를 자아내서 당혹스런 처지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사도 없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고 이다음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를 같이 생각해보는 것이 위로도 되고 효용도 있을 줄 안다.

또한 저자는 맞벌이로 자신의 일에 충실하기 위해서 육아나 가사 분담 문제에 대해서 단호한 모습을 보였고, 그로 인한 갈등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어려운 시기를 대화와 양보로 균형을 맞추려고 애를 쓰며 지나왔지만 그런 중에 딸아이의 소외도 적잖았을 것이라며 미안해한다. 딸은 사대를 졸업해서 두 번째 임용시험을 앞두고 있다. 교사로 발령받고 나면, 어머니의 제자와 딸의 제자가 함께 뭉쳐서 독서토론도 하고 문학 기행도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이 현실이 되기엔 지나치게 벽이 높은 게 문제다. 대구에만 사범대가 넷이 있고 임용시험 자격을 주는 교육대학원도 있다. 여기에 지난 몇 년간 계속 도전하고 실망하고 다시 도전하는 예비 교사들이 즐비할 텐데, 이번에도 고작 다섯 명에만 국어교사의 기회를 준단다.

저자는 학급당 인원수를 스무 명 내외로 조정하는 방안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 더 보태자면, 시골학교 통폐합을 멈추고, 폐교된 학교도 다시 살리는 정책이 있었으면 한다. 설령, 학생이 한 명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교사가 끝까지 남아 학생의 성장을 돕고,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시골로 사람들이 돌아오게끔 유인하는 게 도시 과밀도 막고, 지방도 살리고, 학생 인성도 좋게 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저자는 딸아이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안해한다. 엄마의 마음 편지가 딸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다행히, 저자는 딸이 가는 어떤 길이든 응원하겠다고 했다. 저자는 세 살 때 딸을 두고“그림책 읽으며 이야기 나누다보면 정말 거짓말처럼 피곤이 스르르 녹는 신기한 경험”을 선사해준 걸로 기억한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남은 여행도, 책을 같이 읽으며 피곤도 덜고, 제자 간 배틀도 성사시키면서 근사한 추억을 쟁여 가기를 바란다. 대학동기이기도 한 저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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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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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는 사업가(요시다카)가 독살되면서 그의 아내(아야네)와 정부(히로미)가 용의 선상에 오른다. 아야네는 알리바이가 확실하고, 히로미는 요시다카를 죽일 동기가 없다. 난관에 부딪친 사건을 담당 형사와 물리학자가 현장 조사, 과학 기법 등 다양한 추리 과정을 통해서 해결해 간다.

  요시다카가 죽음에 이르는 결정적 요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어 보인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사랑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는 보편적 삶의 윤리를 무시하고, 오직 아이를 얻기 위한 도구로 배우자를 선택한다. 아이 낳기를 위해 그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일 년이다. 
  아야네의 친구이기도 한 준코가 요시다카에게 버림받는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준코는 자살을 선택했다. 아야네가 두 번째 희생자가 되어야 할 차례지만, 아야네는 오히려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간의 사랑으로 아이와 상관없이 남편이 자신을 인정해준다면 멈출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녀도 그의 죽음을 더 이상 유예시켜 주지 않았다.  
  왜곡된 인생관, 결혼관도 나름의 성장 환경에서 기인했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유로 타인에게 고통을 줄 권리는 없다. 서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요시다카와 아야네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는 추리와 함께 쓸쓸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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