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폐허
김일석 지음 / 산지니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집 속 시 한 편을 읽어본다.

반성론 / 김일석

1.
나무라 해서
꽃더러
반성하라고 하지 마
모두가 쓸쓸함 견디며
고요한 숲에
버려진 존재인 걸

2.
한때 파리의 구석진 다락방에서
절망했다는 늙은 피카소가
죽기 전 열아홉 소녀와 살았다 해서
남을 돕는 행위가 진부하다 했던 그가
이기적인 공산당원이었다 해서
밤마다 우울과
매음(賣淫)을 그렸다고 해서
반성하라고 하지 마

- 김일석, 『붉은 폐허』, 산지니, 2017.

* 나무와 꽃을 별개로 보든지, 나무와 나무 안의 꽃으로 보든지 간에 나무는 꽃을 나무랄 입장이 못 되는 걸까.
‘반성하는 것’과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 존재의 행위를 반성하는 것은 이전보다 더 좋은 쪽으로 자신을 가꾸어 나갈 여지를 주는 것이다. 반면,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공동체의 윤리나 강령 혹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잣대를 내세워 다른 생각의 여지를 줄이는 면이 있다. 특히, 반성을 요구하는 쪽이 세력이 되어 이쪽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고 목소리를 키울수록 사회는 경직되어 오히려 삶의 여유를 앗아가기도 한다.
시인은 아예, 나무든 꽃이든 그 어떤 존재이든 “쓸쓸함 견디며”, “버려진 존재”라는 데서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이런 마당에 누가 누구를 차별하고 강요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지에 대해서 저마다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피카소의 그림과 삶을 엮어 또 하나의 반성론을 쓴다. 입체파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 <아비뇽의 처녀들>(1907)은 나체의 다섯 매음녀가 등장한다. 여러 각도에서 본 것을 화 화면에 섞어 구성하는 기법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피카소는 춘화를 연상케하는 수백 점의 그림과 판화를 남기기도 했다. 여성 편력이 있다 해서, 그림이 점잖지 못하다 해서, 그의 사상이 나와 다르다 해서, 돈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피카소의 말에 실망해서 등등의 이유로 피카소에게 반성을 요구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시인은 되묻는다.
피카소에게 “구석진 다락방”의 청색시대가 있긴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부와 명예를 갖다 준 다양한 그림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끊임없이 변해 왔을지언정 외부의 강요와 주문에 따른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그의 그림 역시, 평범해졌을 테니까.
반성은 반성해야 할 사람이 더 떠드는 경향도 없지 않다. 자기 생각, 자기 방향에 철두철미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일수록 나무에게 꽃에게 심지어 자신에게 엄혹한 잣대를 대어 새로운 생각과 값진 상상력을 제한한다.
이 세상에 오고 가는 특별한 시간이 “버려진 존재”로 귀결되는 건 쓸쓸한 일이지만, 이런 인식이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며 겸허하게 사는 데 바탕이 된다면 즐거이 수용할 일이다. (이동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