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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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나처럼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재수없거니와, 그런 주문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은 재수없다. 다분히 출판사의 의도가 느껴지는 이 책의 제목을, 이 책의 저자조차 언급하기 쑥스러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원래 한겨레신문 토요판 2면 오른쪽에 세로로 놓여 있던 '독후감'들이다. <어떤 메모>라는 몹시 '겸손'하고 '얌전'한 코너명으로, 그러나 굉장히 '도발적'인 내용으로(지금도 연재 중이다). 나는 이 글을 매주 '챙겨' 읽었다(新문과 뉴new스는 더 이상 내게 새롭지 않다. 이런 '다른 시각'을 맛보는 것만이 내가 요즘 신문을 뒤적이는 이유이다). 챙겨 읽었으므로,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이 눈에 익었다. 그러나 꼼꼼히 다시 읽었다. 저자의 도발은 여전히 유효했고, 나의 시선도 그동안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이 '달라짐'은, 정희진의 표현에 따르면 '통과'의 산물이다. 오이는 피클이 될 수 있지만 피클은 다시 오이가 될 수 없다. 그렇듯 독서 이전과 독서 이후는 같을 수 없으며, 가역적이지 않다. '오이와 피클'은 그가 에필로그에서 든 예인데 새로운 것은 아니다. 누가 그랬더라. 책을 읽어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고, 그것은 제대로 독서하지 않은 탓이라고. 사사키 아타루의 말처럼, "독서가 곧 혁명이다."(*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독서에서 그치는 것이 혁명은 아니다. 독서에서 비롯된, 독서로부터 촉발된 급진적인 변화가 혁명일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 <이 치열한 무력을>, 안천 옮김, 자음과모음, 2013. 참고)

 

  이런 변화가 순탄할 리 없다.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혁명에 어찌 '피 냄새'가 나지 않을 수 있으랴! 텍스트와, 나아가 저자와, 결국엔 자신과 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상과 갈등하며 읽어야 하는데, 지식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저자 말대로, 자신의 위치성에 대한 '정치적 자각'이 필요하다. 다르게 읽으려면 먼저 자신을 살피라. 논어 어딘가에서 먼지 쌓여가고 있는 切問而近思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그러니,

 

  정희진처럼 읽지 말라. 정희진도 정희진처럼 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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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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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동서양의 구분을 도식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편리한 만큼 위험한 방법이다. 가령 서양은 이성 중심이지만 동양은 감성 중심이라는 둥, 서양 사람은 자연을 극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봤다면 동양 사람은 공존 혹은 순종의 대상으로 봤다는 둥. 주류와 경향이야 있을 것이지만 그게 다일 리도 없는 노릇. 주변 상황을 자의적으로 배제하고 이해하는 것은 오해와 착각의 지름길이다.


  상징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대학교 때 만난 두 중년 여교수는 각각 동양철학(유교를 배웠다)과 서양철학(중세철학이었던 것 같다)을 담당했다(전자를 A, 후자를 B라 하자). 내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A는 인자해 보였고, B는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로 보였다. 편견은 얼마 못가 깨졌다. A가 수업 중 결혼에 대해 한 말 때문이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인륜이고 천륜이다." 유교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때 A는 뭔가 비장하면서도 비정했다. 나는 '비혼'인 B를 떠올리며 질문했다. "그렇다면 학문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인륜을 저버린 것인가." 단호한 답변. "그렇다." A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남자든 여자든 사람 구실을 잘 못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 학문이 인륜을 중시하는 유교 철학이어도 그러하냐고 물어봤다. A는 동양 철학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양 철학에 비해 동양 철학은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도 나처럼 B를 떠올렸던 걸까. 어쨌든 그때 나는 인격 수양은 B보다 A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개, 2004.)을 읽기 전에도 약간 걱정했다. 흔히들 말하는 '동양의 가치'를, 그것도 '고전'을 통해 다시금 듣는 일은 얼마나 하품나는 일인가. 익숙함은 악이다. 아무런 새로운 자극이 없음은 생각과 몸이 썩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선생의 높은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래서 더 불안했다. 시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기우였다. 선생의 '강의'는 신선했다. 익숙했던 텍스트도 다시 읽혔다. 그의 관점 덕분이다. 선생은 서양 사상의 경향을 존재론적으로 동양 사상의 경향을 관계론적으로 파악한다. ​모두에 언급했듯 이런 이분법은 위험하다. 그러나 대가는 대가이다. 선생은 그런 이분법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고전을 끌어와 쓴다. 그러니까,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관계론이지 동양 고전이 그대로 관계론인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르게' 읽어도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읽고 보든 관계론적인 측면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다. 중요한 것은 '동양'도 '고전'도, 심지어 '나'(신영복)도 아니다. 결국 방점은 '독법'에 찍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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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사르트르 How To Read 시리즈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지음, 변광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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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어났니?

  사르트르는 자유의 철학자라 불려도 손색없는 사람입니다. 평생 보부아르랑 연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고 하지요. 그의 사진을 보면 어딘가 기이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의 눈이 사시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정면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는 시선! 그는 사시의 철학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철학자의 삶을 그의 철학에 그대로 환원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재밌습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출생을 비평하며, 자신을 죽은 자의 아들보다는 오히려 기적의 아이라 부르는 쪽이 더 알맞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지 15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없는 유년 시절을 그는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나는 초자아를 갖고 있지 않다.”(존무, 1028~1029) 이런 유년 체험이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을까요? 그러나 그의 자유는 저주받은 자유’(존무, 1029)였습니다. 그의 외갓집 생활은 그를 외톨이’, ‘이방인으로 만들었습니다(“아비 없는 아이로서의 나는 오만함과 비참함으로 가득했다.”(존무, 1033)).

  이런 체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해명하기 힘들겠지요. 다만, 그는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두지 않았답니다. 양녀만 들였다고 해요. 추측이지만, 그 스스로가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지요. ‘아버지 없는 사회를 건설하려 했는지도.

왜 사니?

  소설 구토에서 로캉탱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매달려 왔던 롤르봉 후작의 전기를 쓰는 일이 귀찮아졌기 때문이지요. 그는 심각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실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나는 생각할까? 나는 이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왜냐하면...!”(구토, 149)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봐도 자유는 늘 불안을 동반합니다. 뭔가 하던 일을 딱 멈출 때, 어딘가 속해 있던 집단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불안합니다. 자유와 불안은 짝패인 것이지요. 이런 자유를 텅 빈 자유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유는 존재를 갖지 않았다. 자유는 존재에서 소외되어 있었다.”(존무, 1030)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다시 할 일을 찾거나 다시 어딘가로 속하려 합니다. 존재와 자유를 일치시키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지요. 이 연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 연기는 또 다른 말장난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연기는 자유를 끝없이 연기시킨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mauvaise foi’인 것이지요. “그의 자유는 연기를 위한 자유이며, 그의 연기도 그에게 존재를 부여하지 못했다.”(존무, 1034)

  방황하며 열심히 일기를 쓰던 로캉탱은 드디어 결심합니다. “나는 노력해 볼 수 없을까... (중략) ... 그것은 책이어야 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니 말이다. (...) 예컨대 어떤 이야기, 일어날 수 없는 어떤 모험적 순간 같은 것. 그것은 강철처럼 아름답고 단단해야 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나는 떠난다. 몽롱하다. 결정할 용기가 없다. (...) 한 권의 책. 한 권의 소설이어야 한다. 그 소설을 읽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걸 쓴 사람은 앙투안 로캉탱이야. 카페에서 죽치던 머리칼이 붉은 놈이었지라고. (...) 그리고 그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도, 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완성되고, 그것이 내 뒤에 있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 아마도 어느 날, 이렇게 등을 오그리고 기차 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 이 우울한 시간을 선명하게 떠올리면서 어쩌면 가슴이 더욱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그날, 그 시간이야하고 말할 때가 오겠지. 그리고 나는 과거의 나를, 오직 과거 속의 나만을 인정하게 되겠지.”(구토, 251~252)

  우리는 우리의 어떤 모습을 인정하게 될까요...

 

왜 죽지도 않고 또 왔니?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크게 유행했던 실존주의의 사조는, 1960년을 전후해 나타난 구조주의의 위세에 밀려 점점 세인들에게 잊혀집니다. 실존주의의 실존이 위협받게 된 것이지요. 변광배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이 세계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구조주의자들은 소쉬르의 언어학과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의 영향으로 이 세계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그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관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면, 사르트르는 이렇게 해서 인간의 위대성을 믿으면서 인간에 대해 거대담론을 펼치는 20세기의 마지막 철학자였던 것이다.”(변광, 98)

  지난 세기의 마지막 철학자라는 표현이 서글프네요. 그러나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다루고 있는 타자의 문제는 라캉, 레비나스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들뢰즈는 사르트르의 타자론이 그 이후에 나온 타자론을 그 아류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대요. 그렇다면 우리는 라캉을, 레비나스를, 그리고 그 뒤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낳은아버지를 잊어야 할까요? 우리의 공부는 호로자식들을 생산하는 공부여도 좋을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사르트르의 아버지 없는 사회 건설은 실패한 것 같군요.

  자, 이제는 하우투유즈사르트르를 고민합시다.

 

 

참고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변광배 옮김, How to read 사르트르, 웅진지식하우스, 2008.

사르트르, 이희영 옮김, 구토/, 동서문화사, 2011(2).

사르트르, 정소성 옮김,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2009(2).

변광배,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살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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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지음 / 책만드는집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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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아니 적어도 싫어하기는 힘든 시인 윤동주(1917.12.30~1945.2.16). 나 또한 그를 좋아한다. 이 감정은 내 개인사하고도 맞물려 피어오르는 것이라 쉽게 퇴색되지 않는 것이다. 그중 하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정병욱의 수필 <잊지 못할 윤동주>를 읽고 크게 감명 받았다. 정병욱은 시인이 독서를 폭넓고 깊게 하면서도, 좀처럼 읽는 책에 줄은 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일종의 결벽성이 있었던 것이다. 시인을 닮고 싶은 마음에 나도 그 뒤로 한참 동안 읽는 책에 줄을 긋지 않았다.

  또 하나. 1 때 담임선생님이 그 글에 실린 윤동주 사진과 묘하게 비슷했다. 핏기 없지만 눈만은 형형했다. 그래서 좋아했다. 우연히도 담임선생님 과목이 또 국어였다. 자연스럽게 문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는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제목을 쓰라는 것. 나는 자신 있게 썼지만 실수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라고 쓸 것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라고 쓴 것이다. 선생님은 시험이 끝난 후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왜 그랬니? 그냥 한글로 쓰지. 나는 부끄러웠다. 다른 애들과 좀 달라 보이고 싶었다고, 그래서 선생님 눈에 들고 싶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답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맞은 걸로 해줄게. 나가봐.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등 그의 시집에는 명편들이 많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서시>이다. 이 시야말로 윤동주의 삶과 시 세계의 序詩이기 때문이다. 서시란 무엇인가. 시작이요 끝이다. 시인이 세운 최초의 뜻이자 독자에게 처음 건네는 인사말이며 결국엔 스스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종착역이다. 그야말로 一以貫之인 것이다.

  그렇다면 윤동주는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조금이나마 그 뜻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화자의 눈은 하늘을 향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고 있다. 깨끗한 하늘에 비해 내 마음에는 얼마나 얼룩이 많은지.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나는 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그의 시선은 이제 땅에 내려와 앉는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고, 죽을 때는 가장 낮아진다. 평생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조차, 죽음은 땅에서 맞는다(페루가 아니라). 시인은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다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천명한다. 그리고 시인은 오늘밤에도 괴로울 것이다. 별이 바람에 스치우므로.

  평생, 그래봐야 30년도 채 안 되는 삶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을 시인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이 시 앞에서 언제나 숙연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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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4-12-30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저는 서시를 개작해 떡볶이 집에
(한창 유행과 단골이던)시화전을 떡..하니 걸어 놔 버린 일도 있는 걸요.
그 말도 안되는 치기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 이십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요.
감히 할짓이냔 말이죠..어디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어야 할것이 한점 남은 떡볶이 육수에도 괴로워 했음을..로 개작 따위나 할 시가 아님을...암튼...딴엔 책 꽤나 읽어대는 문학소녀씩이나 되서 왜 그랬는지...지금도 생각함 얼굴이 벌게집니다..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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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양억관 역, 문학동네, 2010.11)를 읽기 시작했다. 1995년 일어난 '옴진리교 사린 사건'을 취재한 내용이다. 수십 명의 피해자와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것을 거의 그대로 실으려고 노력했단다. 머리말을 보면 그가 얼마나 세심히 신경 썼는지 엿볼 수 있다. 인터뷰 대상자를 공모가 아니라 직접 찾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 인터뷰이에게 몇 번씩 취지와 의도를 설명하고, 원고를 보내 정정 및 삭제할 기회를 준 것, 피해자들의 개인사에 더 귀를 기울인 것 등. 촉박한 시간과 선정성 등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매스컴 소속 기자라면 엄두를 내기 힘들었을 과업을, 소설가 하루키가 해냈다. 그가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일상은 깨지고 관계는 어그러졌다. 몸이 아픈 것은 차치하고라도, 트라우마 때문에 그들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 중 다수가 가해자를 증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뭐랄까, 자연재해에 당한 사람의 체념 같은 거랄까. 개개인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불가항력의 재난 앞에서 느낄 법한 무력감 내지는 허탈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과는 다른 반응이다. 그건, 사건의 양상과 본질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피해 당사자와 2차 피해자(유가족)의 위상 차이 때문일까. 어려운 문제다.

  세월호 문제도 이런 식으로 다루면 의미가 있지 않겠나 싶다. 생존자를 중심으로, 유가족들의 변화한 삶과 고통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뜻 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긴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터. 하루키의 인터뷰도 1년 내내 진행됐다고 하니,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만 밝혀진다면야 기한이 얼마가 걸리든 무슨 상관인가. 해야 할 일이다. 나도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영광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겨레가 진행하고 있는 '잊지 않겠습니다' 기획은 훌륭하다. 박재동 화백이 희생된 학생들의 얼굴을 그리고 짤막한 사연을 덧붙이는 식이다. 이렇게라도 '학생들'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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