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Art & Classic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설찌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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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 <빨강 머리 앤>은 소녀 시절을 지나온 모든 이들이라면 오래 기억하는 작품일 것이다. 책으로 만나지 못했더라도 어린 시절 TV에서 나오던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 캐릭터와 그 노래는 기억하리라 생각된다. 책을 받자마자 여전히 잊히지 않은 그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빨강 머리 앤은 만화, 영화, 책 등으로 수많은 작품들이 나와 있지만 알에이치 코리아 출판사에서 아트 앤 클래식 시리즈 네 번째로 선보이는 <빨강 머리 앤>은 설찌 작가의 그림이 곁들여지면서 평소의 앤과는 조금 느낌으로 재해석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러스트와 어우러진 에세이나 소설의 경우 간혹 내용과 그림이 조화롭지 못해서 몰입을 방해하거나 오히려 책의 완성도를 해치는 경우도 있는데 설찌 아티스트의 그림은 루스 모드 몽고메리의 명작 <빨강 머리 앤>의 이야기 더 흥미롭게 만들고 적절하게 잘 어우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고 머릿속에 기억하는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이 아닌, 다소 통통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재해석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빨강 머리 앤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글은 하이퍼리얼리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 묘사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빨강 머리 앤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너무도 사실적인 표현력이 뛰어나 눈앞에 이 모든 장면이 펼쳐지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더욱이 조심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사실적 묘사는 마치 내가 그곳에 와 있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었기에 상상 속 여행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좋았다.


매슈와 마릴라는 남자아이를 원했지만 스펜서 부인의 실수로 인해 여자아이인 앤이 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당황스럽고 의아해하는 매슈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랑스러운 앤을 어떻게 그냥 두고 올 수 있겠는가. 열한 살 어린 소녀가 겪었다고 생각하기에 너무나 많은 일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지금껏 한 번도 가족이 없었던 앤이지만 자신의 처지와는 달리 너무도 밝고 귀여운 앤. 다정한 매슈와 무뚝뚝한 마릴라가 살고 있는 초록 지붕 집에 그렇게 앤도 새로운 가족이 된다. 어른이 된 입장에서 읽으니 가족의 구성,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책이었다.



상상력과 감성이 풍부한 앤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경들의 묘사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면서 표현하는 앤 방식의 표현들도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설찌 작가의 그림.




평소 무뚝뚝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마릴라가 앤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문장은 가슴 뭉클함을 넘어 눈물이 핑 돌게 만들었다.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진심을 드러냈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내용.



5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이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재미나고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치 추억 속으로 한참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었다. 상냥하고 귀엽고 엉뚱한 매력이 있는 앤은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다. 읽다 보면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도 많다. 고전이, 명작이 왜 명작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도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긍정의 힘으로 산 앤의 삶을 보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한껏 얻게 된다. 어린 앤이 삶의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자라남에 따라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읽는 독자도 함께 성장하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우울하고 지친 일상에서 <빨강 머리 앤>은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유년시절의 추억과 앤과 같은 삶의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선물 같은 책이다.




초록 지붕 집의 10월은 아름다웠다. 골짜기의 자작나무는 해님처럼 황금빛으로 빛났고 과수원 뒤의 단풍나무는 환상적인 진홍색을 뽐냈다. 오솔길을 따라 핀 양벚나무는 세상에서 제일 고운 검붉은색과 구릿빛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은 듯했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햇살을 흠뻑 받았다.

앤은 눈앞에 펼쳐진 찬란한 색채의 향연에 감탄했다. - P214

어느 6월 오후, 앤은 동쪽 다락방 창가에 앉아 있었다. 과수원이 다시 분홍색 꽃으로 채워졌고 ‘빛나는 물결의 호수‘ 주변의 습지에서 개구리가 은방울 굴러가듯 맑게 노래했다. 또한 들판을 뒤덮은 클로버의 향기와 발삼전나무 숲의 향기가 공기 중에 가득했다. 공부에 집중하던 앤은 밖이 너무 어두워지자 더 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앤은 점차 눈을 멍하게 뜨고 공상에 잠겼다. ‘눈의 여왕‘의 가지 사이를 내다보며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면서...... - P292

앤, 낭만을 다 포기하진 말아라. 조금 남겨두는 건 어떻겠니? 많이는 아니더라도 물론...... 앤, 조금만. 조금은 남겨두렴.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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