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살 길이 보인다
김선호 지음 / 다산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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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아빠 나이,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을 듯한 저자는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는 직책은 다 거친 사람이다. 서울대 출신에 미국 유학까지 갔다 와서 고위 공무원에 CEO, 대학 교수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랑스러움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세 번은 타의로, 세 번은 자의로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다. 저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저자의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 저자의 인생 이야기에 있어서 뜨끔,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도 '남들이 보기에 멋있는' 직업,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는가. 그러기 위해서 행동으로 나서기보다는 편하게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나 굴리지는 않았는가.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나의 30년 후는 아닐까 겁도 났다.


"어떤 사람이 뭐든지 시종이 해 주는, 밥도 시종이 먹여주고, 골프도 시종이 쳐 주고, 화장실에서 지퍼도 시종이 내려주는, 하여튼 모두 시종이 해 주는 천국 같은 곳에 가 보니 엄청 좋았대요. 처음엔 좋았는데 그래도 너무 할 일이 없으니 점차 심심해졌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말했대요. 그랬더니 시종이 '여기는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는데 스스로 하는 것은 허용이 안된다'고 하며 절대 시켜주지 않더래요. 심심해서 미칠 것 같은 이 사람이 '그러면 나를 여기 천당 말고 그냥 일 많은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이 시종이 말하기를 '그럼, 여기가 천국인 줄 아셨어요? 여기가 지옥인데요.'"


저자의 조언은 아직 나에게는 와닿지 않으나, 베이비부머 이후 세대, 30대에서 40대들이 읽기에는 유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아내가 보험의 구조가 오늘날처럼 변하기 전에 보험을 들어 두어 치료비보다 많은 보험료를 탔듯이, 앞으로의 미래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를 생각하고 대처한다면 생각하지 못한 때에 뜻밖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래야 살길이 보인다'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살 길이 보인다는 것인지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를 반드시 찾으면 일어설 수 있다는데, 저자도 아직 인생의 이유를 찾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저자도 인정하듯, 저자가 체면치레를 하느라 구멍내버린 적자를 메꾸는 것은 저자의 아내다. 저자는 교수님답게 이런저런 조언을 제시하지만, 결국 사업은 자기가 해 봐야 체득하는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나서도 끝까지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노라고 말하는 바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많으나 정작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는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내는 법조차 잊어버린 팍팍한 현실 속에서 30년을 살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편의 글이 완성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자 많은 아버지들의 현실을 작가가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저자의 에필로그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꼭 보셨으면 싶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고향을 떠나, 부모도 떠나 낯선 객지를 헤매던 젊은 시절에 머무를 곳도 없이, 내일 아침 먹을 밥도 국도 없이, 공장 직공으로, 공사장 막부로, 만원버스 차장으로, 16시간 노동하는 미싱공으로, 남의 가게 점원으로, 중국집 배달부로, 부잣집 가정교사로, 원양어선 선원으로, 사막의 노동자로, 세상 온 데 장사꾼으로 떠돌며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습니까. 부모의 품이 얼마나 그리웠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습니까. 그 때를 돌아보면 지금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홍시를 들고 온 아들을 두 손 들어 반겨주는 노모가 있고, 남편의 무심을 인내하고 기다리다 '이젠 나라도 죽기 살기로 가정을 버텨 내겠다'는 똑똑하고 당찬 아내도 있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아버지의 얼굴에 뽀뽀를 해 주는 아들과 딸이 있고, 김치며 된장국 정도야 언제라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도 있습니다. 헤진 이불이라도 따뜻한 잠자리가 있고, 무엇보다 30년 동안 세상의 칼바람을 모두 맞으며 쌓은 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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