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
황보름 지음 / 뜻밖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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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4. 황보름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 : 뜻밖


어쩌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스무 살의 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망쳐가고 있었다. 환경을 망가트리고 자연을 훼손하고 범죄를 일삼으면서도 내로남불 정신으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었다. 당시 나는 우리 세대가 서른을 맞이하고 또 마흔을 맞이했을 때 적어도 우리는 그들과 다른 기성세대가 되어있을 거라 믿었고 희망이 넘치는, 보다 윤리적인 세상이 열릴 거라 믿었다. 머잖아 전쟁이 사라질 것이고, 암과 같은 각종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고, 훼손된 자연은 복구되며, 인종차별 같은 미개한 인식이 사라질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마흔이 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스무 살이던 시절의 그때보다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심화된 인플레이션, 더욱더 망가진 환경과 훼손되어 복구가 불가능해 보이는 자연, 이제는 숨조차 마음껏 쉬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 하나의 책임이라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딱 n 분의 1로 나눈 몫만큼의 책임은 내게도 있다.


복잡한 심경이 싫어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집어 든 책이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였다. 조금은 가벼워지고 싶었고, 한편으론 누군가의 삶을 도착하며 느끼는 안도감에 취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나는 딱히 복잡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편에 속하고 단순하다 보니 의외로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작년 한 해를 나며 너무 쓸데없는 일들에 힘을 빼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살던 나였는데, 언제부턴가 타인 또는 세상과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을 하려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혹여 스무 살의 내가 바라본 기성세대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혹독하지만, 다행히 관점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황보름의 에세이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는 다시금 그런 관점에 대해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오랜만에 만나면 처음으로 묻는 안부가아이는?”이다. 대체 사람들은 나에게, 아직 태어나지도, 태어날 계획도 없는 아이에 대한 안부를 물을까.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선을 넘는다. “이제 마흔이니 정말 결혼을 해야 .”라거나 거울은 보지도 않는지 남의 아랫배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저자 황보름은 삶이 쉽지 않다는 말을 자주 되네 면서도,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부지런히 찾아가며 자신만의 우아한 선을 완성해나가고자 한다. 우리를 들게 만드는 고민을 자신만의 거리에서 되돌아보는 그녀의 여백 가득한 태도는 의미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채도 높은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삶은 원래 그런 거라고. 원래 쉽지 않은 거라고. 쉽지 않은지는 묻지 말자고. 쉽지 않아도 어쨌거나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찾아왔다고.’ 저자의 말처럼 언제부턴가 우리는 버티는 것이 삶의 유일한 방책이 되고 것만 같다. 그러나 이제 우린 버티는 것이 용기고, 인내하는 것이 용기며, 용기의 밑바탕엔 자신과 타인을 향한 사랑이 있다는 있지 않을까. 복잡한 세상, 복잡한 마음.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담백한 문장에서 아직 남아있는 삶의 온기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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