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비상 - 매와 부성애에 대한 아름답고도 잔인한 기억
벤 크레인 지음, 박여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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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8. 크레인 『자유를 향한 비상』 : 아르테


검독수리들이 산허리의 화강암 바위에서 날아올라 오스트리아의 여러 위를 지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독일과 북유럽을 가로지르는 광경을 본다. 영하 32도의 혹한에 사우스다코타의 인디언 부족이 사는 지역 근처에서 몸집이 작고 무늬가 있으며 훈련된 마리를 본다. 크로아티아의 여름날 새벽, 흐릿하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야생 새매가 푸른 하늘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메추라기를 추격하자 얼룩무늬의 갈색 메추라기들이 작은 방사형 폭죽이 폭발하듯 후드득 흩어지는 광경도 본다. 텍사스에서는 야생 해리스매 가족을 따라간 적도 있다. 예민하고 영리한 사냥꾼인 해리스매들이 모래와 파도가 거세게 이는 멕시코 만의 바다와 맞닿은 사막에서 덤불 속으로 달아나는 토끼들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다. 크레인이 함께한 매의 재활과 방생은 강박적 여정의 정점이다. 자연 세계와의 본능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찾아 떠났던 여정. 깊은 감동의 순간들에 수도 없이 빠졌던 여정이다.


매와 함께한 여러 여정 가운데 2007 파키스타에서 매잡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맹금류에 대한 크레인의 고정관념을 크게 바꾼다. 다른 토착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부족 매잡이들이 매를 부리는 방식은 수천 동안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들의 매사냥 방식은 저자가 어떤 방식보다도 가장 순수하다. 대체로 가난한 생계형 농부인 그들에게 훈련은 생존의 일부다. 그들에게 훈련은 정체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며 매를 부리는 행위 자체는 사는 곳의 환경과 균형을 이룬다.


크레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나 자유로웠으며 혼란스러웠다. 모든 규칙들은 유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바뀌기 일쑤였으며 실용적인 농담으로 일상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크레인의 가족은 인종, 문화, 심지어 삶의 행보와 가족의 이야기까지 남들과는 달랐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유럽을 거쳐 인도까지 다니며 히피 문화를 따랐고, 성장과정을 통해 어쩌면 크레인이 매잡이가 되는 것은 운명이라고 밖에 말할 없었다. 저자 크레인은 유럽 전역과 미국, 파키스탄을 돌며 참매, 새매, 독수리를 훈련한다. 그는 미술 교사이면서 훈련사이고 또한 사진작가다. 사회 적응이 어려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크레인이 상처 입은 매를 돌보고 훈련시킨 자연으로 돌려보내며 점차 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은 비단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많은 영감을 남긴다.


아스퍼거 증후군 탓에 나타나는 문제점 하나는 바로 공감의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 점이다. 아스퍼거인들은 사회에 관계된 기본이 되는 상호작용에 곤란을 겪고 여기에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거나 자발하여 다른 사람들과 여흥을 즐기지 못하는 등의 감정 교환 결핍 현상이 보인다. 예를 들어 상대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떠든다거나, 운율과 억양의 결핍 또는 서투른 동작 등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데 방해가 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크레인의 하루는 언제나 대혼란과 불안 속에 시작된다. 그는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그가 가족을 이루고 아들이 태어날 무렵 그는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진다. 그는 직업을 잃고, 가족을 잃었으며, 동시에 삶을 잃었다. 불행 다행인 것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갖고 있는 제한된 주제에 격렬히 몰두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마도 크레인에게 주제는 바로 매였던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 생각하지만, 본디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크레인이 매와 함께한 여정을 담은 『자유를 향한 비상』을 읽다 보면 어쩐지 나의 일부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저자가 상처 입은 매를 돌보고 훈련시킨 자연으로 돌려보내면서 점차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은 자체로 드라마다. 매에 대한 묘사는 과연 르포르타주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매에 대한 부성애를 통해 감정을 되찾고 교류하는 과정은 책을 비로소 에세이로서 기능하게 한다. 크레인의 『자유를 향한 비상』은 새에 대한 기록문학으로 시작해 새가 일깨워준 자유와 사랑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인간애에 관한 멋진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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