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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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 재스퍼 트윗 『그 환자』 : 시월이일

박사학위를 앞두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조슬린과 함께 하기 위해 약혼자 파커는 코네티컷의 오래된 주립 정신병원에 지원한다. 앞날이 촉망된 엘리트 정신과 의사 파커에게 코네티컷 주립 정신병원은 모든 부분에서 열악한 곳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곳은 파커에게 놀이공원과도 같이 설레는 곳임에 틀림없다. 노후된 시설은 물론 정부로부터 나오는 적은 지원금, 부족한 인력은 그의 열정을 불태우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음침한 병동의 스산함과는 다르게 평범한 환자들과의 면담으로 시간을 보내던 파커는 실명도,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복도 끝 방의 환자 조와 마주하게 된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그가 여섯 살 무렵 입원하여 무려 3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수용되었음에도 아무도 그의 병을 진단하지 못했고 병원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진단과 처방만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파커의 관심은 끝 방 환자 ‘조’를 향했다. 진료기록보관소에 남은 그의 오래전 기록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어쩐지 파커는 그 기록들이 전부가 아닐 것만 같았고, 또한 진실도 아닐 것만 같았다. 그간 조를 치료하던 의사나 간호사들은 죽거나 병들었다. 당연히 병원을 떠나야 했고, 개중엔 환자로 병원에 다시 수용된 이도 있었다. 조와 관련된 사람들은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우여곡절 끝에 조의 전담의가 된 파커는 치료의 시작부터 충격적인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 조의 말에 따르면 병원장의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은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병원장실로 발걸음을 옮긴 파커는 새로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동양 호러는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인과응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선과 악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또한 구전 효과를 통한 현실감의 증대로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예를 들어 망태 할아범이 잡아간 옆집 아이나, 술 받으러 나간 아버지가 도깨비에 홀려 혼을 잃었다거나, 억지 울음에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구전 동양 호러는 마치 옆집과 앞집에, 또는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구전한다는 점에서 ‘실제와 실재’의 현실감을 동반한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무대 장치를 활용하기 때문에 현장감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서양 호러는 짐승형 괴물(몬스터), 인간형 괴물(좀비), 또는 살인마 등의 살육 현장을 자극적으로 표현하며 때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의 무차별 살육을 통해 불특정 피해자를 만들어 공포감을 조성한다. 물론 엑소시즘을 떠올리면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지만 이 역시 종교적 배경이 우선된다. 중요한 사실은 동양 호러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살육에서 보이는 피는 현실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는 점이며 따라서 동양의 ‘벌’은 서양의 ‘피’와 같은 장치로 활용된다.

그런데 재스퍼 트윗의 『그 환자』는 서양 호러임에도 동양 호러의 장점을 취했다. 소설의 시작에 <프롤로그>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기 등장하는 이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 좋겠지만 나도 의사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형편이라 아무리 특이한 경우라 해도 환자의 비밀을 누설하고 다니는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순 없다.”라는 문장을 배치함으로써 마치 동양의 구전 효과와 같이 이 이야기가 ‘실제와 실재’하는 것처럼 시작을 한다. 또한 정신병원이라는 제한적 공간에 더해 의사와 환자 간의 대화는 피가 난무하는 좀비물이나 몬스터물보다 더 깊은 심리적 공포를 선사하며 오래된 자료, 감춰진 비밀,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그리고 의문의 초자연 현상을 정신병과 결합하여 망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은 다양한 호러 패턴을 제시한다. 작가가 필명으로 글을 쓰고 본명과 신원을 감춘 점과 “본 원고는 전문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웹포럼이었다가 2012년 오프라인 형태로 전환되면서 폐쇄된 MDconfessions.com에 ‘나는 어쩌다 의학을 포기할 뻔했는가’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라는 문구는 소설의 구성에 맞물려 현실감은 물론 극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20세기 폭스사 할리우드 영화화 확정에 전 세계 20여 개국 판권 계약을 했다니 재미는 보장이고 딱히 취향을 타지도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푹푹 찌는 더위에 태풍까지 온다니 호러 장르에 자신이 있다면 『그 환자』에 도전을 해보는 것도 여름밤에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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