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6
듀나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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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3. 듀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 현대문학

작가 듀나의 신작 소설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는 태양계 소행성대 이천의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를 배경으로 한다. 정기 여객선 테레시코바의 폭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배승예는 소행성 이천의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 양로원으로 이송된다. 아르카디아의 중심부는 23세기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빌딩 숲이 이어지고 외곽은 20세기 한국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있다. 이전 시대를 그리워하는 미래인의 마음이 담긴 것일까 복각된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는 20세기의 미메시스다. 테레시코바의 폭발로 뇌와 척추의 일부분만이 남고 몸의 4분의 3이 날아간 배승예가 재생 치료를 받기에 아르카디아는 꽤나 낭만적인 도시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아르카디아는 배승예가 어릴 적 잠시 살았던 곳이니 그녀에겐 고향과도 같은 정취가 남아있다.

인간다운 정서를 가득 품은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를 구성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들이다. 배승예를 제외한 대부분이 AI인 이곳은 거대 지성 마더에 의해 지배된다. 아르카디아를 이루는 주요 종족 멜뤼진들은 자신들이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정기 여객선 테레시코바의 폭발 당시 배승예를 구출한 연방우주군에 대한 음모가 싹트고, 멜뤼진들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 배승예는 낭만 도시 아르카디아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죽음은 육체의 완전한 소멸에 있다. 때로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형태로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즉 ‘영혼’의 존재를 의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래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명공학, 유전학 등이 4차 산업을 만났을 때,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작가 듀나가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에서 표현한 죽음은 전통적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 전통적 죽음과 미래적 죽음 사이에는 ‘정신의 지속’이라는 거대한 간극이 발생한다. 인간의 삶 – 살아 있음 – 을 육체에 귀속할 것인가, 혹은 정신에 귀속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위대한 철학자들로부터 시대를 앞서간 과학자들까지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형태의 논쟁으로 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그것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이 논쟁에 대해 작가는 후자로 질문을 던졌다. 몸의 대부분이 날아간 배승예가 뇌와 척추의 일부분이 남은 것으로 비인간이 아닌 인간 대접을 받은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죽음의 방식에 있다. 미래를 그린 이 소설에서 역시 태양계 대부분에서는 전통적 죽음의 방식인 존재의 소멸 또는 기술을 이용한 영생만이 허용되는데, 소설의 무대인 아르카디아에서만큼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선택지가 존재한다. 아르카디아를 지배하는 인공지능 마더는 죽어가는 생물체의 뇌 속 정보를 백업하여 일종의 아바타로 변모시킨다. 가상 도시이며 양로원인 이곳을 찾은 이들은 죽음의 또 다른 선택지로서 마더를 통해 자신을 소멸시키며, 관광객들은 아바타로 변모되는 과정을 관람한다.

공상과학이라는 바탕 위에 그려낸 미래적 죽음의 의미는 실존주의로 이어진다. 물론 작가 듀나가 이번 소설을 통해 내비친 실존주의는 19세기의 합리주의적 관념론이나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양로원을 새로운 개념으로 풀어낸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인간의 존재와 소멸,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통해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 본질로서의 실존을 향하고 있다. 때로 작가의 시선이 잘 투영된 비현실적 세계관은 현실 세계 이상으로 깊이 통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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