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근대인이란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한다. 고대 희랍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통해 진리에 접근했다. 하지만  질문하는 자기 존재까지 질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질문을 개념화한 사람은 누구일까?

단서를 제공한 사람은 17세기 ‘근대 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이다. 그는 유럽사회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았다. 그때는 종교개혁 이후에 프로테스탄트가 정식 종교로 인정받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회와 30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모든 학문은 신학을 정당화하는 매개체로 존재하던 시기였다. 국가권력과 통치방식은 왕족과 종교권력, 귀족 계급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계급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계급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으며 사는 것을 정당하게 생각했다.

 데카르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모든 인간이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었다.
 <방법서설>은 데카르트가 자신이 걸어온 진리 탐구의 여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철학자들이 말하는 진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논리학은 유용하지만 오류가 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명제, 보편타당한 진리를 원했기 때문에 학교 공부에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배운 학문을 비롯해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학처럼 확실하고 증명 가능한 정답이 산출되는 지식을 원했다. 그렇게 정교한 의심과 성찰을 통해 발견한 명제는 다음과 같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는 데카르트 학문의 제 1원리로써 그의 모든 학문적 고찰의 기반이다. 그는  이성을 통해 참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회의의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 첫 번째 방법은 명석 판명한 명석판명하다는 것은 일본어를 음독한 것으로, 이진경은 이를 ‘분명하고 뚜렷한’으로 번역한다.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그린비, 2005, 52쪽.)
 지식을 선별하는 것이다. 온전한 지식 이외에 모든 지식은 선입견이나 오류 가능성이 있으므로 걸러낸다. 그에게 당위적인 전제는 없다. 모든 것은 검토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분리·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섬세한 사고를 위한 것으로 문제를 분해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정교한 문제해결을 돕는다. 세 번째는 분리·분석한 것들을 종합하는 것이다. 순서를 정해 쉬운 명제부터 어려운 명제 순으로 종합해 나간다. 마치 카드 쌓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명제를 종합한다. 마지막으로 의심하지 않은 전제가 없는지 꼼꼼히 검토한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제시한 '방법적 회의'이다. 「방법서설」의 역자 이현복 교수에 따르면 이 방법의 의의는 모든 학문이 통일성과 단일성으로 연결되어 있고 단일한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에 있다. 『데카르트적 방법과 도덕』, 이현복, 315쪽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데카르트적 사고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었다. 후대에는 종교 전통과 교리 체계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던 것도 의심의 표적이 되었다. 오직 '생각하는 자기 자신'만이 확실성을 담보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어떤 것을 회의하는 자의식 속에서 인간정신의 과정이 확실성을 얻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383쪽  

 이것은 더 이상 신적 계시나 종교 전통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기 이성을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며, 대중은 더 이상 획일적 집단이 아니라 혼자 사유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개인'으로 변화한 것이다. '개인'이 탄생했다. 근대까지의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감탄사였다면,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회의의 표현과 결과들로 이루어진다. 같은 책, 376쪽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데카르트적 사고는 인류가 혼란과 불안을 초래하는 불확실성 대신에 조작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수학적 인식을 접목한 학문들, 그 중에서도 물리학은 눈부신 발전과 발견을 이룩하였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경험론과 함께 데카르트 철학은 산업혁명과 근대과학의 동인이 되었다. 18세기 유럽은 중국의 과학기술과 문명을 추월하게 되고, 서구의 과학적 세계관은 자본주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 속에서  현대 사유체계를 형성했다.

데카르트는 근대의 여명을 밝혔다. 자기 확실성을 기초로 사유한 것은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개인을 탄생시켰다. 비록 데카르트 이후의 사람들이 모두 이성적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 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이 목격한 것처럼 어렵게 얻은 자유·평등의 인간 권리를 히틀러와 나치정권에  반납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세 시대의 노예적 인간으로 퇴보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근대적 인간들은 자기 질문을 통해 당대의 과제에 반응하며 살았고, 계몽 이후의 주체적 개인들은 인류의 인권과 민주성이 신장하는데 기여했다.

질문을 금지한 시대에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회의하라고 외쳤다. 그는 참된 판단과 진리를 향한 열망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그는 의식적 사고를 개념화시켰으며 근대세계의 정신과 체계의의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했다. 데카르트의 사유는 근대인의 조건을 갖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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