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대우고전총서 12
김인곤.강철웅.김재홍.김주일.양호영.이기백.이정호.주은영 옮김 / 아카넷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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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학문 전반의 발전에 있어서 의미있는 번역서이다. 등장 인물들은 탈레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 등등...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읽기 위해 읽어야 할것들이 점점 쌓여가는 근 현대 사상가들보다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처음부터 철학해보기 어떨까?

직접 읽는게 부담스러우면 번역자들이 직접 쓴 해제부분을 읽고 단편들에 도전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거다. 그것도 힘든 사람들은 이태수 교수님의 서평을 한번 읽어보는게 좋을거 같다.

 

철학의 시작에서부터 되밟아오기  

글쓴이 : 이태수(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필자의 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국어교과서에 ‘생활인의 철학’이란 제하의 수필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것을 싫증이 날 정도로 씹어가며 읽어야 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글의 요지인즉, 소위 전문적인 철학자들의 현학적이고 어려운 논설보다 시정(市井)의 평범한 아낙네들이 하는 말이 훨씬 더 많은 지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난해함이 곧 지혜의 함량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 자체가 정말로 지혜로운 말씀의 한 훌륭한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그 글이 왜 꼭 교과서에 실려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아직 철학이 어떤 성격의 학문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제 막 지식의 대해를 항해하려고 나서는 대다수의 젊은이에게 철학은 어려운 것, 그것도 불필요하게 어려운 것이란 편견부터 심어주는 것은 아무래도 부당해 보인다.

이런 점을 헤아렸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글은 교과서에서 빠졌다. 그 글이 담고 있는 지혜의 무게와 미리부터 철학에 대한 혐오감을 부당하게 부추기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당위를 서로 견주어 보면 그렇게 하는 편이 옳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필자가 소위 전문적인 철학이란 것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곡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필자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철학에 접해보는 것은 충분히 보람이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으며 평소에도 비전문가에게 철학책 읽기를 권고해왔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의 글에 대해서 한 가지 걸리는 대목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렵다는 지적만큼은 틀렸다고 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전문가뿐 아니라 전문가에게도 사실 철학은 어렵다. 누구라도 전문적인 철학서를 읽으면서 도대체 자신이 무얼 캐고 따지고 있는지 그 지점조차 혼미하게 될 정도로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필자는 읽던 책을 덮고 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되돌아가서 철학의 길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보라는 충고를 한다. 수학이나 물리학 분야에서라면 입문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필자가 말하는 철학의 ‘처음’이란 시간적으로 철학이 발단한 때를 뜻한다.

많은 사람들은 서양 철학의 기원이라면 일단 고대 그리스의 두 거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철학이 시작되는 시점은 그 거봉들을 넘어 조금 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그 시점은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하는 탈레스가 활동한 기원전 6세기 전반으로 잡는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기원전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가 철학사에 등장한 때까지 탈레스의 뒤를 이어 그리스 사상의 판도를 현란하게 꾸몄던 많은 현인들을 철학사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란 명칭으로 함께 묶어 부른다. 보통 그들이 논의했던 내용을 기술하는 것으로 철학사의 첫 장을 채우는데, 그 부분이 바로 필자가 공부하기를 권하는 철학의 ‘처음’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독자들은 그 부분에 관해서는 소략한 철학사 서적을 통해 매우 불충한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저술 중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한 권도 없다. 현대인들의 그들에 관한 지식은 모두 후대의 저술가들에 의해 인용된 조각들을 바탕 자료로 하여 복원된 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 복원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당시 독일의 문헌학자 딜스(Hermann Diels)는 고문헌의 산더미 속을 뒤져 관련 자료를 찾아내고 옥석을 가려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을 솎아내는 일을 수행해내고 그 성과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들』(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이란 저술에 담아냈다. 이 책은 그 이후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관한 연구의 표준적인 자료집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김인곤 외 7인의 고전학도가 달려들어 번역해낸 것이 바로 이 자료집이다. 그러니까 딜스의 책이 나온 지 백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 독자들에게도 그 동안 접근불가 지대였던 철학의 ‘처음’을 직접 탐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셈이다.

역자들이 딜스의 책 전체를 다 번역한 것은 아니다. 딜스는 그의 책에서 관련 자료를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정리했다. 그 중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자신의 저술에서부터 직접 인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는 B군으로 분류되어 있고, 그들의 생애나 행적 등에 관한 후대의 증언은 A군으로, 그리고 나머지 확실히 신뢰하기 어려운 정보 자료는 C군에 모아 놓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B군에 속하는 자료들이고 역자들은 그것들을 전부 번역하였다. A군 중에는 일부만이 선별 번역되었고, C군은 거의 무시되다시피 했다.

나아가 딜스가 붙여놓은 상세한 주석은 번역에서 제외되었다. 딜스의 주석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최상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학술적 정보가치를 지녔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루어진 연구의 축적을 고려하면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주석을 그대로 다 우리말로 옮기는 수고를 하라는 것이 오히려 무리한 주문일 것이다. 그 대신 역자들은 그동안 고심하며 나름대로 연구한 흔적을 담은 역주를 붙였다. 비록 딜스의 것만큼 풍부한 내용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국내 연구가들로서는 짚고 넘어가는 것이 마땅한 대목들을 가능한 한 모두 성실하게 점검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 점이 또한 이 번역의 학술적 가치를 방증해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이 책의 경우에는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을 건너뛰지 말고 꼭 읽어야 한다. 좥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단편들의 출전 개관좦이란 장이 그 부분인데, 거기서 독자들은 딜스가 자료를 취해 온 출처가 어떤 것이며 그것들의 전승 과정이 어떠했는지 등에 관한 필수불가결의 정보를 얻게 된다. 역자들은 이 부분을 1982년도에 나온 컬크(Kirk, G.S.) 등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The Presocratic Philosophers)에서 주로 빌려왔다. 역자들은 이 부분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여러모로 컬크 등의 책에 기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딜스 이후로는 컬크 등의 책이 관련 문헌 중에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책을 긴히 참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컬크 등의 책에서 빌려온 것 중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은 역자들이 ‘희랍철학의 여명기’라고 이름붙인 부분이다. 앞서 말한 대로 탈레스를 철학의 시조로 모시는 것이 전통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철학이 어느 한 사람의 출현으로 돌연히 시작된 것은 아니다. 탈레스 이전부터 철학의 싹은 종교나 문학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글의 모두에서 언급한 소위 ‘생활인의 철학’이란 것에서도 전문적인 철학으로 발전할 빌미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딜스도 탈레스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에 속하지 않는 자료도 일부를 수록했다.

그러나 딜스의 책에 수록된 관련 자료에 관해서는 그것이 너무 불충분하다거나 또는 선정기준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컬크 등의 책 역시 철학의 여명기를 중시하여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관련 자료를 선정하여 수록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딜스의 책보다는 확실히 진일보한 면이 있다고 판단된다. 역자들도 같은 판단을 한 모양인지 해당 부분에서 컬크 등의 책에서 자료를 빌려와 딜스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있다. 그 결과가 꼭 만족스러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명기에 관한 판단은 어떤 경우에든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길게 시비하지 않겠다.


역자들이 한 일 중 돋보이는 것은 번역 이외에 각 철학자별로 내용 해제의 수고를 해준 점이다. 여러 명이 썼기 때문에 해설의 수준이 고르지는 않다는 점이 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꽤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혹시 이 대목에서 이 서평을 읽는 사람들에게 의구심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다. 처음에서부터 되밟아오기를 하면 철학이 쉬워지리라는 기대를 하게 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그 ‘처음’에 관해서도 해제의 도움을 받기를 권고하는 것 같은 말을 하다니, 아무래도 철학은 처음서부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미안하게도 그런 의구심을 완벽하게 풀어주지는 못할 것 같다. 처음부터 되밟아오기를 하면 이해가 쉬워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처음’ 자체가 식은 죽 먹기 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철학의 시작 단계에서는 논의된 질문 자체가 일상적인 언어로 제기된 소박한 내용의 것이었다. 예컨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논의되고 있는 핵심적인 질문은 “선천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된 질문부터 무슨 뜻인지 한참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전형적인 질문 가령 ‘이 세상의 최초 모습은 어떠했을까?’와 같은 질문은 적어도 질문, 그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분명히 어렵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워낙 오랜 옛날, 문화 환경이 전혀 달랐던 곳에서 쓰인 언어로 논의된 것들인지라 그 논의의 미묘한 뜻까지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면 약간의 수고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세상에 가치 있는 일 중 ‘식은 죽 먹기’ 같이 호락호락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것도 지혜로운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역자의 노고와 성취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주로 역자들이 극복해야 하는 진정 더 큰 어려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들은 역어의 선택 하나하나가 심각한 문헌학적, 철학적 논쟁과 결부될 수 있는 분야의 번역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아마 그들도 처음부터 시작하면 어렵지 않을 줄 알고 애당초 이 분야에 입문했다가 이제는 처음으로 되돌아 가보는 일이 지닌 독특한 어려움을 푸는 매력에 사로잡혀 있는 연구자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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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과학을 읽다

과학책 읽기에 관한 한국일보의 좌담회를 작업실에 스크랩해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마침 오늘부터 '과학을 읽다'가 연재된다고 하니까 이에 맞춰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한국일보(06. 08. 08) "수학·과학 알면 교양에 날개단 격이죠"

'엔트로피'나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은 자연과학 용어가 사회현상을 설명하거나 철학적 용어로 차용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정작 그 뜻을 이해하는 이들은 드물다. 과학책이라면 손대지 않은 풍토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과학책을 통해 교양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리즈 '과학을 읽다' 연재(8월15일자부터 과학면 게재)를 앞두고 좌담회를 열었다. 우수과학도서를 선정하고 저술을 지원하는 과학문화재단의 나도선 이사장, 인기 과학책 저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과학도서 전문 출판사인 승산의 황승기 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과학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과학책을 많이 안 읽는 이유가 뭘까요?

나도선 과학문화재단 이사장=과학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을 잘 안 읽는 게 문제입니다.

황승기 승산출판 대표=요즘은 그래도 웬만큼은 팔립니다. '파인만의 QED(양자전기역학) 강의'를 출판할 때 이렇게 어려운 걸 교양서로 냈다니까 언론에서 전혀 다루지 않았는데 1만7,000권이나 나갔죠. 이공계 출신 중 양자전기역학을 어려워했던 이들이 읽는 것 같아요(*의외로 많이 나갔군! 교양물리학 전도사로서 파인만은 가히 '천재적'인데, 그의 책들이 원래부터 많이 나간 건 아니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사이언스북스, 2000) 같은 경우 나는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도솔, 1989)로 읽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던 책이었다. 책은 내용으로만 승부하는 게 전혀 아닌 것.)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이공계 출신과 수험생 덕분에 과학책들이 팔리죠. 문제는 번역서에 비해 국내 저술서가 너무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많은 책들이 정작 과학내용이 없고 거의 만화 수준입니다. 쉽게 쓴다고 알맹이는 빼놓고 냄새만 풍긴다면 과학책이 아니죠.

=하지만 그렇게 저술할 수 있는 분들이 적죠.

나 이사장= 과학에서 성공한 과학자가 대중 과학서를 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해요. 과학자들이 그 쪽으로는 인식을 못하고, 능력을 개발하지 않기도 했죠. 사실 연구자로 성공하려면 다른 데 눈을 못 돌리는데, 원로들이 책 쓰는데 좀더 참여했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문화재단은 과학문화총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대중활동을 많이 하는 저는 막말로 '골 빈 과학자'로 꼽힙니다. 연구나 하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죠. 물론 연구에 분ㆍ초를 다투는 분야에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 분야는 아주 길게 연구하는 분야이니 대중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과학문화 특임교수제를 만들어 대중활동을 업적으로 평가하면 실효가 있을 것입니다. 또 과학자뿐 아니라 전문 과학 저술가층을 두텁게 해야 합니다. <붉은 여왕>을 쓴 매트 리들리는 기자였지요. 역시 기자인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은 과학자가 쓴 책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오죽하면 과학자들이 학회에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습니다(*나는 두 사람의 책을 모두 갖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과학책을 왜 읽어야 할까요.

황 대표=정말 똑똑하고 경영도 잘 하는 경영자 중에서 가끔 너무 뻔한 것에 속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 보니 수학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안 돼 있어 그런 것 같아요. 과학책은 이공계 출신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과학적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과학을 알면 날개를 단 것입니다.

나 이사장=저는 '여성의 과학하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학생들이 과학을 잘 할 수 없다는 선입견 많은데 현대과학은 육체적 노동도 아니고 치밀함과 집념을 갖고 하는 것이기에 여성들 하기에 적합한 분야입니다. 이러한 꿈을 키우기 위해선 과학책을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최 교수=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서 "왜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하느냐"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모리스 윌킨스, 제임스 왓슨, 프란시스 크릭이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화학실력이 달렸던 왓슨은 처음에 좀 웃음거리였어요.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고, 미국 의회에서 휴먼게놈프로젝트를 해야 한다고 손을 들어 밀어붙인 것은 왓슨이었습니다. 그가 '이중나선'을 써서 그렇다는 거죠. 이 책은 일반인은 물론 동료 과학자에게도 DNA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던 책이나, 추천할만한 과학책을 꼽는다면.

 

 

 



나 이사장=특히 학생들은 과학자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 가슴에 와 닿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여성 과학을 만나다>(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편저)는 우리나라 곳곳에 여성 과학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어 좋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도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최 교수=미국에 '동물의 왕국'을 공부하러 갔는데 밤새 읽고 난 뒤 세상이 다르게 보인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입니다(*최교수의 해제는 언젠가 옮겨놓은 듯하다). <이중나선>은 과학자 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책이죠. 특히 내가 정말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회의하는 사람들에게요. 과학이 인문학과 만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는데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가 그런 책입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여전히 10위 안에 듭니다. 저자의 근저인 <문명의 붕괴>도 꼭 읽어보십시오.

 

 

 



황 대표=책을 출판하느라 어떤 책은 30번 이상 읽는데 그냥 지나쳤던 내용이 새삼 다가옵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를 읽고 발견한 것이, 뉴턴이 자연법칙에 접근하는 방식과 아인슈타인의 방식이 다르고, 위튼(초끈이론의 대가)의 접근 방식이 또 다르다는 점입니다. 현대에 뉴턴 식으로 해선 과학자로서 성공할 수 없어요.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는 고등학생들이 서너번은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제가 학원 수학 강사를 할 때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1명이 읽고 "서울대 논술 준비는 이제 끝났다"고 했답니다.(진행·정리=김희원기자)

06. 08. 08./08. 15.

P.S. 오늘자 한국일보에 처음 연재된 '과학을 읽다'는 역시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다루고 있다. 필자는 김희원 과학전문기자이다.

한국일보(06. 08. 15 )'유전자의 꼭두각시' 인간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진화생물학의 새 지평을 연 이 책의 제목은 사람의 이기적 특성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유전자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뜻이다. 이기적인 것은 유전자이고, 인간 개개인은 유전자의 목적을 수행하는 '생존기계'일 뿐이다. 인간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런 저런 유전자를 진화시키고 이어받은 것뿐만 아니라 유전자가 자기 복제자를 대대로 유지하기 위해 개체를 이러저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이 말에 당혹감을 느낄 이들도 적지 않을 터이다. "특별한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인류에 봉사하는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조차 모두 '유전자의 명령'이란 말인가?" 또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을 꼭 빼 닮게 행동하는 아이를 보며 이 메시지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때로 복잡한 생물학 연구결과가 등장하지만 핵심적인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렬하다. 생물은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함께 보이지만 모두 유전자의 자기복제라는 목적에 봉사한다는 것이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기성과 이타성의 단위부터 시작한다. 흔히 하나의 생물 개체가 자신을 위한 이기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자명하다.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침입자에게 침을 쏘는 벌의 행동은 이타적이다. 하지만 벌 집단을 단위로 본다면 벌의 희생 역시 이기적인 행동이다. 결국 이기적으로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구의 단위는 '유전자'이다.

-벌과 개미의 예를 들어보자. 일벌은 알을 낳지 않고 번식을 여왕에게 맡긴다.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주지도 못하면서 일벌은 왜 평생 여왕을 돌보며 일만 하는 것일까? 개개의 일벌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일 같지만 유전자 입장에선 성공 전략이다. 아이 낳기와 키우기를 분업해 효율적으로 번식할 뿐 아니라 일벌들끼리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왕은 결혼비행에서 얻은 정자를 몸 속에 품고, 암컷 즉 일벌을 낳기 위해선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킨다. 수벌을 원한다면 미수정란을 낳는다. 때문에 암컷 자매 벌들끼리는 유전적 근친도(같은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가 75%로 통상적인 유성생식의 근친도 50%보다 높다. 암수 벌끼리의 근친도는 25%이다. 일벌의 유전자 입장에서는 유전적으로 가까운 암컷을 여왕벌이 더 많이 낳는 게 유리하다. 실제 생물학자들은 여왕벌이 암수를 낳는 성비가 3대1에 가깝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도킨스는 인류가 형성한 문화적 관습조차 유전적 근거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친가보다 외가의 식구들 즉 큰아버지 보다는 이모, 친할아버지 보다는 외할아버지에게 친밀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자기 핏줄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 계통이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의도와 사고가 있는 주체라고 믿지만 않는다면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은 무수히 많다.

-도킨스는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도발적인 글쓰기로 1970년대 유전자의 시각에서 본 진화생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홍영남 이화여대 교수가 번역했고 지금까지 5만부가 나간 스테디 셀러다. 을유문화사.(*책은 1976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최근에 출간 3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 <리처드 도킨스: 한 과학자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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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 주요 본문에 대한 해설.번역.주석
조대호 역해 / 문예출판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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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서양철학의 수용사가 꽤 되는데, 일본은 새로운 번역이 수도 없이 나왔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저라 할 수 있는 형이상학이 왜 이제서야 나온걸까?

하지만 국내 관련 학계의 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왜 이제서야"가 아니라, "아니 벌써"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오게 된다. 일단 국내에는 고전기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번역능력을 갖춘)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점을 지적해두어야 하겠고, 둘째로는 그나마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 대다수가 플라톤 전공자라는 점에 있다. 할 줄 알면 아무나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번역 문제와 관련해서만 본다 해도 많이 다르다. 플라톤만 열심히 읽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번역하기 힘들고, 아리스토텔레스만 열심히 읽은 사람은 플라톤을 번역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번역서를 낸 조대호 박사는 국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이며, 매우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드는 실력있는 학자이다. 물론 번역도 특별히 '틀린' 부분없이 무리없이 읽히는 걸 보면 기대가 헛되지 않다는걸 알수 있다. 형이상학 전체 14권은 각각 대략 10여장씩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대호 박사는 각 권 앞에 권에 대한 해설을 담고, 다시 장이 시작되기 전에 장에 대한 해설을 담고, 그 후에 번역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 그 중에서도 형이상학은 아무런 사전정보없이 장과 장을 읽어나가게 되면 도저히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그의 의중이 파악되지 않는 구절들이 많지만, 조대호 박사의 해설을 읽고, 번역을 읽게되면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신경쓴 해설임에 틀림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이 발췌번역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파악하기로는 '실체론'을 중심으로 한 번역이고, 이런 의도는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발췌이지만, 번역되지 않은 부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학철학, 논리학, 신학 등과 관련된 매우 귀중한 내용이 담겨있다. 곧 나머지 부분도 추가하여 번역서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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