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천선란 외 지음 / 허블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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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by 천선란 

 

팬데믹과, 이어지는 인간 간의 전쟁, 인간과 외계인 간의 전쟁을 겪으며 주인공은 살기 위해 무감각을 선택 한 듯 보인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주인공의 감정 상태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그것 같았다. 


어떤 곳인지 궁금했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어요. 예나 지금이나 호기심이 별로 없는 편이거든요.
여기를 벗어난다고 해서, 이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편이 더 낫다는 생각도 해요...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게 생각나지 않는다.. 
(벤의 죽음 앞에서도) 하지만 역시나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나한테 지키고 싶은게 존재하기나 했을까? 


감정이란 세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본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써야 한다. 그래야 어떤 사안을 뭉뚱그려 '난 원래 저것을 좋아하지 않았어. 이것도 괜찮지 뭐' 라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전쟁이 더 나을 건 무엇인가? 지독한 현실의 기억이 전장을 오히려 요람처럼 만든다고, 세상의 절망만이 이인의 사적인 악몽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평온이라 생각하는 것, 착각 아닐까? 하지만 그 누구도 '너 그거 큰 착각이야!!' 라고 주인공의 면전에 이야기할 권리는 없다.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우주 존재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는 감각을 획득한 주인공.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주인공이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무의식 중에 문신으로까지 새겨버린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는 트라우마의 상징인가? 지워지지 않게 새겨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감싸 안고 극복하려는 것은 주인공의 삶의 의지인가? 죽고 싶다 죽고 싶다 =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이런 감각인지?  


지울 수 없어. 그건 나를 도려내는 일이니까. 이 행성에서 도려내져야 할 건 내가 아니고 그 사람이야 
그럼 살고 싶어? 어. 
죽음을 다짐한 사람들이 왜 더 오래 살아남는 줄 알아? 모든 생명체는 살아야겠다는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욕망이 뒤틀리면 지구의 흐름으로부터 비껴나가게 되는거야....죽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더 오래 살게 돼.


개인적으로 핀란드 대원과 독일군, 영국군을 묘사하는 방식이 재밌었다. 조상대대로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핀란드인이라니. (적확히 꿰뚷었잖아!) (휴, 독일이나 영국식 식사가 아니라 너무 다행이야!)  


벌새의 한 장면을 오마쥬한 듯한 문장을 보며 아,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찌릿하구나! 생각한다. 

이인은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어설프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요람행성 by 박해울

절박한 사람을 이용하는 구태의연한 방법 

1) 누구보다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을 물색한다

2) 그럴싸한 직책이 박힌 (예컨데 '수석' 폐기물 처리사 및 정화차량 수리사 같은) 명함을 준다

3) 일에 그럴싸한 명분을 부여한다 (예컨데 다음 세대들이 살 곳을 개척한 신성한 작업이니라!) 

4) 불우한 가족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5) 쓸모를 다하게 되면 가차없이 버린다


이거, 어디선가 많이 본 플롯 아닐런지요?  


그래도 책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 발견! 단순한 문장인데,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본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지? 난 이런 감정선에 약하다. 

쓸모가 없는 명함이지만 손가락으로 그 명함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무주지 by 박문영

a와 b 중 박문영 작가의 글을 골라보시오 한다면 나는 작가의 글을 100%의 확률로 알아볼 수 있으리. 그 특유의 글쓰기가 환영받는 날은 한국인의 글읽기가 더 폭넓어지는 날 일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폴리아모리, 양육, 평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설의 배경 '무주지'의 설정은 판타지적이다. 

무주지는 주인 없는 평등한 땅, 소유욕, 독점 관계 없는 곳.. 수평적 사회 모델  
인간의 고통의 근원은 가르는 것, 그것으로 인한 차별, 무주지에는 그것들이 없다. 
관계는 다층적 이었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위계없는 우애가 흘렀다 
1) 자신의 아이를 기르지 않는다 2) 남의 아이를 돌본다 3) 양육 기간은 4년으로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를 돌보는 이들이 인간 성체일 필요는 없다. 라는 합의 하에 클론들이 양육을 도맡아하게 된다. '인간의 종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라는 인간들의 구호는 인간 노동 레벨의 최상층! '극악의 난이도' 양육 앞에서 무너진다. 클론들이 양육을 도맡아 하면서 인간들은 가장 양육의 굴레에서 해방되지만 이렇게 한가지 원칙이 무너지면서 다른 원칙도 무너진다. 평등, 수평, 무소유 등 그럴싸한 대명분 속 탄생한 무주지는 또 다른 이등시민(클론)을 만들어내며 차별을 가한다. 


기계적인 평등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차별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미혹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끊임없는 자기 반성, 성찰, 때로는 차별의 속성을 이용하여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택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현실적 선택일 것이다. 


양육의 책임이나 다층적 인간 관계로의 도약은 결국 법, 사회제도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뻔한 생각을 해본다. 

핀란드가 육아휴직 제도를 개편하는 이유(2021.5.12.)


남십자자리 by 오정연

1) 극악의 난이도-돌봄노동

좋다 이 작품. 치매걸린 노인을 케어하는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일을 하며 좀 먹어가는 휴머노이드라니 블랙코메디다. 하.. 치매걸린 노인 케어는 휴머노이드조차 고장나게 한다. 돌봄 노동이 이렇게나 고된 것이란다 인간들아. 특히 남자들아! 


2) 외면 당하는 노인 문제 

그래봤자, 대면하고 싶지 않은 예정된 미래를 멀리멀리 보내버리겠다는 거잖아
대단하지 않냐? 인간이 인간이지 않은 상태로 얼마나 오랫동안 생을 지속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우주적 규모의 실험. 저건 대처가 아닌 방관이지 

사회가 노인 문제를 싸잡아 행성으로 보내 버리고 싶어하는 느낌. 나만 가져봤니? 사회가, 미디어가 담합하여 노년의 삶에 대한 고찰을 부러 방해하며 늙는 것은 죄악이다! 노인들은 감정이 없다! 그들은 사회적 짐이다! 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느낌말이다. 하지만 방치된 미래에서도 삶은 지속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있다. 늙어가는 것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다. 세대론에 휩쓸리지 말고, 그 개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강남순의 낮꿈꾸기] 긴즈버그의 유산, 한국 사회에 주는 의미


3) 늙어서도 계속되는 노동

65세 이상 인구의 3명 중 1명이 여전히 일을 하고 있지만,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압도적인 1위로 나타났다. 노후 준비가 되어 있거나 적어도 준비 중이라는 노인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2017년 기준 한국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4.0%였는데, OECD 국가 가운데 높은 축에 속하는 미국도 23.1%에 불과했다. 프랑스(3.6%), 노르웨이(4.3%) 등은 10%도 되지 않았다.
 

메이는 빌린 학자금을 45년에 걸쳐 갚느라 요양행성에서도 머리를 만진다(그녀는 3년전까지 비주얼 아티스트라는 상당히 쿨한 직업에 종사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실업률과 극단적 고령화의 끝을 보는 듯한 느낌. 지금도 지옥이라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나빠질 참인가. 핀란드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미국인 강사가 아직도 학자금을 상환 중이라는 말을 들었던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4) 비정상 가족의 탄생

과거 미아의 육아 도우미였던 해리. 미아는 친어머니보다 해리에게 할머니와 같은 친근함을 느끼며 위로 받는다. 편안함, 손끝으로 주름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느낀다.  

해리는 친자식들보다 미아에게 더 애틋함을 느낀다. 미아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양로행성으로 온 이유도 있다.

해리와 메이는 양로 행성에서 처음 만났지만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는 친구이다. 둘은 같이 산다. 그것도 재미나게. 돈을 좀 더 모으면, 집을 산 후에..이렇게 미루는 삶 말고, 지금 여기서 행복하며 남을 비정상이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피로 묶이지 않은 사람들의 함께 살아감. 여성이라면 더 유연하게 가능하리라. 이 셋에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이 작품까지 읽어보니 5편의 작품 대부분에서 AI나 휴머노이드를 인간이 꺼리는 일이나 하는 대체제, 부속품 쯤으로 묘사한 것이 아쉽다! 작가들이 상상하는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 클론은 인간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는 이급 시민에 머물러 있다. 그런 설정은 좀 진부하다. 


2번 출구에서 만나요 by 이루카

2번 출구는 강남역으로 대변되는 혐오와 폭력을 상징하는 것인지요 작가님? 

혐오와 폭력의 데이터를 정화하기 위해 인간 여자와 AI가 주파수를 맞춰가는 과정이라니 소재가 신선하다. 변환 주파수를 흡수한 사람들은 변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도록 변할 수 있도록 '리셋'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맘 맞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 알리와 AI유니는 한팀이 된다.


보려고 들으려고 노력하는 삶에 대해 여러번 강조하는데, 소통하기 위해 읽고, 쓰고, 생각이란걸 하자는 거겠지.   


알리의 시간 속에 있던 여러 버전의 문 중 가장 크고 무거운 문 그것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알리에게 주어진 몫. 


작가는 우리에게 무겁지만 그 문을 꼭 밀고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연대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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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페미니즘 #그녀들의이야기 요다 # 장르 비평선 2
김효진 지음 / 요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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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페미니즘 이야기 구현에 적합한 형태. 페미니즘은 sf에 적합한 주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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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n의 세계 - 30대 한국 여성이 몸으로 겪는 언스펙터클 분투기
박문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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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용은 울어야할 내용인데 웃으면서 읽었어요. 공감 너무 많이 되네요. 남한 소도시에서 3n의 세계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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