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향하는 길 - 열두 밤의 책방 여행 걸어간다 살아간다 시리즈 6
김슬기 지음 / 책구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홀로 책방을 찾아 북스테이를 하는 여정의 (그러나 책방 정보가 잔뜩 실린 실용서는 아닌) 딱 내 취향의 '특이한 여행 에세이'가 김슬기 작가님의 신간으로 나왔다.

작가님의 첫 책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를 읽은 독자라면 그녀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책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을 터. 임신과 육아로 자존감이 무너진 엄마를 일으켜 세운 책들의 기록이, 그 이후론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면 이번 책은 어떤 면에선 '엄마의 미니 홀로서기'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딱 하룻밤만 새벽에 안 깨고 푹 자고 싶다던 간절한 바람이, 어느덧 만 열 살을 꽉 채운 아이의 "난 알아서 할 게. 내일 봐~"라는 쿨한 답변으로 돌아오기까지, 이젠 아이의 빈자리를 엄마가 서서히 채울 준비를 해야 하는 독립기로도 읽히기 때문.

어느새 맞이한 엄마 살이 10년 차. 육체적인 고단함이나 물리적 돌봄이 사라진 자리를 채울 무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10년을 돌아보며 기념하고 앞으로 살아갈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시간, 한 시절의 끝에서 또 다른 시절을 준비할 교두보. (7p)

책 '나로 향하는 길'에는 열두 개의 여행기와 북스테이의 기록이 있다. 책 속에 있는 경주 '어서어서'와 속초 '완벽한 날들'은 나도 다녀온 곳이라 더 반갑기도 했다. 서울의 '더글라스 하우스'와 파주 '모티프원'은 꼭 다녀와야지 싶어 페이지 귀퉁이를 꼭 접어둔다.

각 지역의 독립 서점을 방문하거나 북스테이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 거다. 자차 없이 이동하기가 많이 불편하다는걸. 그런데 저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심지어 3~4km 정도는 걸어서 이동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카카오 택시를 불러야 해서, 처음으로 앱을 깔았다는 부분에서 뜨악..!)

워낙 차 멀미가 심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만, 오히려 이 점이 참 신선했다. '시간 효율'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목적지까지 걸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일정이 말이다. (나도 과제물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싶고..)


혼자 하는 여행이 모티브지만, 부모님과 함께 한 북스테이 그리고 남편과 시어머니의 북스테이 장면은 뭉클했고, 남편과 모처럼 둘이 여행길인데 아이의 옷을 사기 위해 부지런히 아울렛을 돌아다닌 장면은 공감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둘만 여행 가서도 아이 이야기만 하고 있는 우리 부부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서.

"슬기한테 고맙다고 전해 줘. 내가 정말 고맙다고. 많이, 많이... 정말 많이 고맙다고. 꼭 전해줘."

그는 전달했고, 아내는 울먹였다. 전해 듣는 인사만으로도 목이 메는 감사를 받아야 할 대상은 여행 그 자체이자 여행이 불러오는 일상의 균열, 예측할 수 없음이었다. 그녀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던 것, 절대 가까워질 수 없다고 여겨왔던 것. (103p)

"10년 차 부부의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근사한 음악감상실도, 탁 트인 공원도, 우리 자식 예쁘게 입힐 옷을 사는 것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는 여행. 그게 못내 아쉽고 불만족스럽기보다는 그렇게 사 온 옷을 입은 아이를 볼 때마다 뿌듯함과 행복이 밀려왔다." (122p)


 

특별한 공간에서 만난 특별한 책들은 평소라면 고르지 않았을 책 들이고, 저자가 말한 '일상의 균열'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책에서 소개된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도 꼭 읽어보자 싶어 인덱스를 붙여둔다.

부모님은 사랑을 신성한 것으로 보게끔 나를 키우셨고 그래서 존과 나는 늘 우리의 사랑을 종교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초자연적이라거나 운명 지어졌다거나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믿고,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당연히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종교처럼 여긴다. -사샤 세이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중에서-

내 시간을 조금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나태라는 생각, 가능한 더 많은 것을 더 효율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 내가 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내 숨통을 조여온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하룻밤 여행은 알려주었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면 금방 도착할 곳을 3시간이나 걸려 갈 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 나도 3시간쯤을 침대에 누워 멍만 때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188p)


'익숙하게 반복해왔던 삶의 패턴을 정말 바꿀 수 있을까?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도록 고민했지만 찾을 수 없었던 답을 더는 찾지 않기로 했다. 대신, 보이지 않는 답은 보이지 않는 채로 일단 덮어놓고 새로운 보자기를 들춰 보기로.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자'는 생각, 내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짓'을 해보자는 결심은 그렇게 왔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나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나선 이유는 그게 지금까지의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92p)

저자는 이 엉뚱한 행위이자 특별한 의식이 이전과 다른 10년을 살고자 하는 '나만의 통과의례'라고 표현한다.

나에게도 묻고 싶어진다.

지금과는 다른 10년을 가고 싶은, '나만의 통과의례'는 뭘까?라고.


1년간 매월 이어진 엄마의 책방 여행이 끝날 무렵 아이는 더욱 훌쩍 자랐고 가족들은 더 단단해졌다. 아직은 내 품에 있는 아이가 내 곁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나는 어떤 홀로서기를 하게 될까? 그때를 대비해 미리 공부를 시작하길 잘한 걸까 생각하면서도 ^^; 자주 버겁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책을 읽으며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으니, '책방을 다녀온 기록이 이렇게 멋진 여행 에세이가 되는구나' 싶은 점이다. (나는 왜 블로그에만 올릴 생각을 했을까! 원고로도 좀 써보지 ㅎ)

이번 주에 강화도 이루라 책방에서 북스테이를 하는데 이 책을 읽은 이후라 더욱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