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 - 시공 로고스 총서 8 시공 로고스 총서 8
크리스토퍼 노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자크 데리다가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많다. 문체에 대한 수많은 실험, 글쓰기의 리듬, 프랑스 특유의 지적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자의 어려움, 데리다를 둘러싸고 있는 지적 전통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 정치적 입장 표명에 대해 과묵하다는 점에서 빚어지는 정치적 무관심 ...... .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는 것은 그의 글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미 1967년에 그의 삼부작―<문자기록과 차이(Writing and Difference)>,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 번역서―이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주석서들이 넘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는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데리다가 직접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일차적이겠지만,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는 것처럼 데리다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아마도 진리와 전통에 대한 극단적 상대주의자로 데리다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러한 오해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데리다의 유명한 말인 '텍스트-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Il n'y a pas de
hors-texte)에 대한 노리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말은 텍스트로서의 은유 바깥의 현실 세계란 없다는 의미로 이해되었고, 그로부터 데리다는 지상세계와는 무관한 관념론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러나 데리다에게서 이 말은 사실과 그에 대한 관념의 상응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즉 언어와 현실 사이의 지시작용에 있어서 데리다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언어와 현실이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의한 의미의 발생이 언제나 주어진 틀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미의 형성에는 항상 그에 수반하는 '맥
락(context)'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책에서 이 말의 직접적인 맥락은 구조주의적인 이항 대립의 체계이다.

해체는 지적 허무주의라는 계몽과 관련해서도 노리스의 지적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사변적 이성의 영역 바깥에서의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절대이성의 변증법적 논리나, 의미의 목적(telos), 규제적 이념 등과는 달리, 데리다가 제시하는 (의미의)지평을 파괴하는 전망적 사유는 (철학적)근거율 내에서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한 반성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면, 논리적 인과관계에 의해서만은 설명되지 않는 이미지의 논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근거지우는 원리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설명원리를 필요로 하는가?

노리스의 책은 해체는 비정치적이다, 해체는 무책임하다, 해체는 수사적 과잉이다 등의 해체에 대한 일반적 오해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데리다의 작업이 지닌 내재적 교정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80년대말부터 90년대 초에 이르는 데리다의 최근 작업에 대한 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입문서라는 공간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고, 노리스가 의도한 목적―데리다에 대한 꼼꼼한 읽기는 그의 철학의 중요성을 분명히 제시해준다―에서 볼 때 무리한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통 형이상학의 해체가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역사의 종말'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필수 사항이다.

어쨌든 노리스의 책은 데리다를 둘러싼 오해와 오독을 해명하기 위한 적절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해 그 자체의 조건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출현할 것이다. 데리다 자신의 작업 역시도 이러한 오해와 오독 곁에서 그에 빛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자유의 대가가 경계(vigilance)(마키아벨리)이고, 계몽의 대가는 무한한 책임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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