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청춘사용설명서
박근영 지음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지도를 보고 갈 곳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이 책은 말한다. 지도 따윈 던져버리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12)

전쟁이 터지면 전쟁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이 글은 2003년 3월말에 씌어진 것이다). 그걸 출판시장에서는 '현실'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제 읽은 한 칼럼에서는 '전쟁'과 '전장(戰場)'을 구분하고 있었는데, 전쟁은 언제나 승자와 영웅을 탄생시키지만, 전장에서는 패자만이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둘은 다르다. 보다 많은 관심이 두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 '전쟁'이 아니라 '전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2차대전 당시의 독소전쟁을 다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지식의풍경, 원제는 Russia's War)의 출간은 의미있어 보인다. 역자는 러시아사 전공자이다. 1941-5년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에서 2천만명이 넘는 러시아인들이 희생됐고, 패퇴한 독일 또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패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 시기 독일군의 만행에 대해서 러시아 영화 <컴 앤 씨>(1985)가 잘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는 역사상 세 번의 중요한 전쟁(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첫째는 13세기 타타르(몽고)의 침입을 받고 200여년간 복속되었지만, 결국 패퇴시킨 일이고(15세기), 둘째는 1812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를 패퇴시킨 일, 그리고 셋째가 바로 1945년 히틀러의 독일군을 패퇴시킨 일이다.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 또한 미영 연합군을 패퇴시키길 기원한다(더불어 우리 공병대가 갈 일이 없기를).(*물론 턱없는 기대였다.)

 

 

 

 

 
지난주간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건 슬라보이 지젝의 <믿음에 대하여>(동문선)이다(*물론 이 번역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믿음이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여기서 믿음이란 건 달리 신앙이라 번역해도 무방하다. 지젝은 '예수와 바울', '프로이트와 라캉'에 대응하는 또다른 짝패를 도입하는데, 그것은 마르크스와 레닌이다. 흔히 교조적 맑스주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젝은 과감하게 복원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레닌으로의 복귀'이다. 책의 서문조차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레닌까지"란 제목을 달고 있다. 지젝이 최근에 레닌주의에 골몰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듯 선명하게 레닌주의를 들고나올 줄은 몰랐다. 하여간에 이 희대의 재사가에 힘입어(한 출판인은 그를 가리켜 대단한 '구라꾼'이라고 했다) 레닌주의는 포스트맑수주의를 넘어서는, 아주 세련된 이론적 담론으로 재탄생한다. 예수와 더불어.



언제나 그렇듯이 책값이 좀 비싸지만(도서정가제 이후에도 동문선의 책값은 다운될 기미가 안 보이다), 얇은 분량이므로 모두가 사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문제는 번역인데, 역자는 서양사 전공자로서 조르주 뒤비의 책 등 이미 여러 권의 번역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신뢰할 만하다? 그건 아니다. 역자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보아지지만(우리말로 그래도 읽히는 편이다), 역시나 이론의 대식가이자 대중문화광인 지젝을 따라잡기에는 식욕이 좀 모자라고 걸음이 좀 느리다. 그래서 영화/작품명들을 말끔하게 옮기지 못하고 있다. 언어학자 '야콥슨'은 '제이콥슨'으로 번역하고. 영화 <브라스트 오프>는 <싫증>으로 옮기는 식이다. 처음 몇 쪽을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나쁜 번역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김종주나 이만우보다는 나은 번역이다(*이건 오판이었다).

 

 

 

 

프랑스의 신예작가 우엘벡의 <소립자>(열린책들)가 번역돼 나왔다(*올해 재판이 나왔다). 98년인가 출간되어 논란이 많았다는 작품이다. 굳이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지젝이 <믿음에 대하여>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겸사겸사 읽을 만한 책으로 제프 콜린스의 <데리다>(김영사)도 있다. 김영사에서 나오는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의 한권이고, 역자는 이 시리즈의 <라캉>을 번역했던 이수명 시인이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무난한 번역일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만화이기 때문에 데리다를 싫어하지만 평소에 읽을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유익할 듯싶다(조금 알아야 욕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참고문헌에 따르면 데리다는 1996년 현재 37권의 책과 250편 이상의 에세이, 인터뷰를 출간한 다작의 저술가이다. 아직까지 완간되지 않은 하이데거 전집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그는 하이데거와 경쟁한다). 그러니 좀 말려주기를...(*입방정이었다. 알다시피 데리다는 이미 투병중이었고, 이듬해 2004년 가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눈에 띈 책은 영국 철학자 러셀의 <러셀 자서전>(사회평론)이다. 상하권 합해서 12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문화과학사에서 나온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천재의 의무>와 나란히 읽을 만하겠다. 이 러셀과 같이 <수학의 원리>를 쓴 미국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사고의 양태>(다산글방)도 번역돼 나왔다. 역자는 화이트헤드 전문가들인 오영환, 문창옥 교수. 이로써 화이트헤드의 주저들이 대부분 번역된 듯싶다. 한때 화이트헤드 카페에서 활동한 적도 있었는데, 모아놓은 책들은 언제나 읽을는지...



 

 

 

고전번역으로는 막스 베버의 <문화과학과 사회과학의 방법론(1)>(일신사)이 번역돼 나왔다. 인터넷서점엔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모양이다. 좀 가벼운 책으론 셰리 터클의 <스크린 위의 삶>(민음사)이 있다. 저자 터클은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정신분석의로도 활동한 바 있는데, <라캉과 정신분석혁명>이 그녀의 저작이다. 현재는 MIT에서 과학사회학을 강의한다고 한다. 제목의 '스크린'은 '모니터'로 옮기는 것이 더 적절했을 듯싶다. 여기서 스크린은 영화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가벼워 보이지만 책은 좀 묵직하다(거의 500쪽).

진짜 가벼운 책으론 미디어학자 빌렘 플루서의 <디자인의 작은 철학>(선학사)이 있다. 플루서는 구대륙의 '맥루한'으로 불리는 인물인데, <코뮤니콜로기>(커뮤니케이션북스)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커뮤니케이션북스) <디지털시대의 글쓰기>(문예출판사) 등이 번역돼 있다. 미디어학과 관련한 국내저작으로는 이기현의 <미디올로지>(한울)도 출간됐다. '사회적 상상과 매체문화'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전에 나는 부르디외에 관한 그의 글을 읽은 게 전부여서 책의 수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한 언급이 좀 들어가 있는 게 흥미를 끄는 정도.

 

 

 



조지 커퍼드의 <소피스트 운동>(아카넷)이 김남두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플라톤 전공자인 김교수는 겸손하게도 아직 단한권의 단행본 연구서도 출간한 바 없다. 때문에 이 책은 저자보다도 역자가 더 눈에 띈 경우이다. 같은 서양고전철학 전공자인 윤구병 전 교수(현재는 농부)의 존재론강의 <있음과 없음>(보리)도 출간됐다. 여기에는 저자와 김남두 교수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철학쪽 이야기가 나왔으니 마저 하면, 유독 헤겔 책들이 여럿 나왔다. 조극훈의 <이성의 복권>(리북)이 '헤겔철학과 이성사회 실현'란 부제를 달고 나왔고, 이정일의 <칸트와 헤겔: 주체성고 인륜적 자유>(동과서)도 출간됐다. 동과서에서는 클라우스 뒤징의 <헤겔과 철학사>도 번역 출간했다. 나로선 생소한 저자들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국내 저작으론 인권운동가 서준식의 <서준식 생각>(야간비행)이 출간됐다. 읽거나 말거나 그의 책들을 사두기를 권한다. 인권운동에 작은 힘이라고 보태기 위해서. 그리고 두 저널리스트 김훈과 고종석의 글들이 각각 <김훈세설>(생각의나무)와 <히스토리아>(마음산책)으로 묶여서 나왔다. 이미 일간지 지면 등을 통해 발표된 글들을 모은 것으로 애독자들을 위한 장서용의 책이라 할 것이다. 내가 이들의 글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분량'과 '시간'이라는 조건 속에서의 글쓰기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의 글에는 언제나 긴장이 배여 있다. 하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그들의 글은 좀 긴 시간을 갖고 길게 쓴 글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장인 백대웅 교수의 <전통음악의 랑그와 빠홀>(통나무)도 출간됐다. 통나무에서 나왔다는 것은 김용옥 기자와 연분이 있다는 얘기인데, 사실이 그렇다. 내가 언제 이런 책까지 사서보랴 싶지만, 책이 나왔다는 사실 정도는 기록해 두고 싶다.

더불어 이번에 방한 틱낫한 스님의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너무 많은 책들이어서 이미지 나열은 생략한다), 나로선 고마운 일이다. 나는 명상서적이나 처세술책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따라서 돈 들일 일이 줄어드니까). 틱스님은 화를 가라앉히는 <화>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는데, 사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자신의 성격이 오히려 불만스러울 지경이니 틱스님과는 인연이 없는 셈이다. 몇 년전에 한 외국인 지인이 선물로 준 <평화로움>이 책꽂이 어딘가에 그냥 평화로이 꽂혀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러시아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사랑할 수 없다!

 

 



 

끝으로 과학책 혹은 기타. 철학연구회 편, <진화론과 철학>(철학과현실사)은 내가 좋아하는 주제인 만큼 당연히 눈길이 가는 책이다. 여러 분야 전공자들이 진화론과 철학에 관한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해 쓴 논문들을 모았다. 이 주제에 대한 한국학계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홀크 크루제 등이 쓴 <지능의 발견>(해바라기)도 흥미를 끄는 책이다. 부제는 '개미도 사고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돈이 좀 있다면, <아인슈타인 파일>(이제이북스)도 사보고 싶다. 미국 FBI가 사회주의 성향이 농후했던 이 세기의 과학자를 대중에 무해한 인물로 포장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가 폭로된다. 연대출판부에서 '문학의 기본개념 시리즈'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환상> 등 네 권의 책이 먼저 출간됐는데, 특징은 얇다는 것(얄팍한지는 모르겠다)과 국내 필자들의 저작이라는 것.

한동안 미루어둔 숙제를 한 기분이다. 이젠 하고 싶은 걸 해야지!...

2003. 03. 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67)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책은 원저가 독일에서 발간된 지 25년만에 완역, 출간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이다. 숱한 고전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실정에서 '25년'이면 그다지 대단한 시간차는 아닌 듯도 하지만, 저자의 지명도와 국내에서의 명성을 고려해볼 때 이번 출간은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니 일단은 타박부터 터져나온다.

 

 

 

 

아마도 가장 적절했을 타이밍은 10년전, 그러니까 그가 방한했었던 지난 1996년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국내에는 하버마스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었다(현재의 역자를 포함하여). 그건 방한에 맞춰 출간됐었던 <현대성의 새로운 지평>(나남, 1996)이나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집 <하버마스: 이성적 사회의 기획, 그 논리와 윤리>(나남, 1997)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해서, 소위 하버마스 후기철학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의 번역출간이 이렇듯 지체된 이유를 나로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각한' 번역서이지만 출간을 환영한다. 이젠 전공자들이 독어나 영어로 진땀을 빼가면서 읽지 않아도 되니까. 내친 김에 일반 독자들도 읽어볼 수 있게 됐으니까(번역은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소개를 옮기자면, 이 책은 "<공론장의 구조변동>(1962),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과 함께 합리성 옹호의 3대 주저로 평가받는 책"이다. 더불어 (있으나 마나한 번역서란 얘기를 듣는) <인식과 관심>(고려원 1996), <사실성과 타당성>(나남, 2000)과 함께 이론적인 '주저'로 평가된다. 사회철학과 법철학, 윤리학 등을 망라하고 있는 '종합적인' 하버마스에게 단 하나 빠진 게 있다면 '미학' 정도인데, 언젠가 한 대담에서 그는 미학쪽의 책은 쓸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나는 이 '공백'이 하버마스의 사유에서 필연적이면서 그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버마스의 미학'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연구서들은 나와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이 세계가 '생활세계(Lebenswelt)'와 '체계(System)'의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과 "이때 생활세계는 언어와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들이 합리적 토론을 통해 진리를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가능한 세계"이며 "반면 체계는 화폐와 권력이라는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 조정이 이뤄지는 영역으로 윤리를 배격하고 오로지 합목적적 합리성(도구적 합리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같은 구분을 바탕에 두고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침입해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함으로써 생기는 현대 사회의 병리현상을 지적한다." 거기에 수반되고 있는 것이 사회학 이론사에 대한 하버마스식 정리이다. 그는 "맑스, 베버, 뒤르켐, 미드, 파슨스에 이르는 사회학의 이론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인지심리학으로부터 언어이론, 행위이론, 문학인류학에 이르는 현대 사회이론을 총망라"한다. 가히 사회학 이론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러한 '종합선물세트'를 뜯어보기 전에 잠시 반성해볼 것은 고전적인 사회학 이론서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번역/소개돼 있느냐는 것. '맑스, 베버, 뒤르켐' 같은 3대 이론가는 아직 부족한 대로 입맛 정도는 다실 수 있지만, 미국의 사회학자 미드와 파슨스에 이르면 우리의 번역 살림이 매품이라도 팔아야 할 흥부네 처지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한때 이들의 책들을 뒤적거렸지만, 미드에 관한여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책은 <미드의 사회심리학>(일신사, 1994)이며, 파슨스도 <현대 사회들의 체계>(새물결, 1999) 와 오래전에 절판된 <지식과 사회>(탐구당, 1972) 정도가 고작이다(사회체계론자이자 하버마스의 이론적 맞수인 니클라스 루만의 국내 번역/소개도 빈곤하기 짝이 없다. 일단은 방대한 주저인 <사회체계론>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해서, 한국어로 사회학 고전들을 읽는다는 건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그저 코저의 <사회사상사>나 터커의 <현대 사회학 이론> 같은, 혹은 앤서니 기든스의 입문서들을 참조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인지 모르겠다.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에 사회학 이론은 불필요하든가, 아니면 사회학의 고전이론서나 번역하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학자(혹은 사회철학자)들이 한가하지 않든가. 정말로?..

 

 

 

 

두번째 책은 줄리아 우드의 <젠더에 갇힌 삶>(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제목에서 팍 풍기는 바이지만, 여성학 교재로 쓰일 만한 책이다. 특이한 건 책을 낸 출판사와도 연관된 것이지만 젠더의 문제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와 연관지어 조명한다는 점. 요컨대, '젠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이다. 그러한 연구가 지향하는 바라면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으레 그렇듯이) '해방적 커뮤니케이션'일 텐데, 아마도 그런 지점쯤에서 줄리아 우드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혹은 '커뮤니케이션적 합리성'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여성학 관련서들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05), 김현미,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또하나의문화, 2005),  권혁범,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또하나의문화, 2006) 등이 눈에 띈다. 주디스 로버의 교재용 이론서 <젠더 불평등 - 페미니즘 이론과 정책>(일신사, 2005)도 작년에 나온 책인데, 리뷰를 접해본 바 없어서 필독서인지의 여부는 모르겠다.

 

 

 

 

세번째 책은 안드레아 가보의 <자본주의 철학자들>(황금가지, 2006). 얼핏,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이마고, 2005)를 떠올리게 하는데, 차이라면 후자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전자는 '위대한 경영학자들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겠다. 거명되고 있는 경영학자들 가운데, 내게 좀 친숙한 이름은 테일러와 드러커 정도인데(사실 드러커의 책을 읽다가 테일러에 대해 알게 됐다. 워낙에 강조하길래) 자기 경영도 잘 못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이 '20세기 학문'에 대한 '무지'가 새삼스러울 건 아니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프레더릭 테일러에서 피터 드러커에 이르기까지 현대 경영학을 만들어낸 열 세명의 사상가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개인적인 면모에서부터 그들이 어떻게 경영학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상들이 어떻게 거대 기업들을 좌지우지했는지 등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보다 폭넓은 맥락에서 경영학은 시장과 정치라는 변수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그 시장과 정치를 묶어주는 키워드가 '자유주의'인 모양이다. 국내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출간한 <자유주의: 시장과 정치>(부키, 2006)를 보건대 그렇다. 책은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동양과 한국의 자유주의 사상'이라는 3단락을 통해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한국'이라는 화두를 풀어나간다. 이런 주제로 이만한 부피의 책이 나오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므로 치하(?)할 만하다.

역사적 전후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선 (논리적으로나 권리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가 우선적이며,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것은 그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한 파생적 논리(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한때 논술학원에서. 자유에 대한 나의 생각은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에서도 밝힌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아이디어에 내가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는지 나중에라도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    

같이 읽어둘 만한 책으론 김영진, <시장자유주의를 넘어서>(한울, 2005), 김비환, <자유지상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성균관대출판부, 2005)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읽다가 지루하면 문학평론가 이동하 교수의 <한국문학속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새미, 2006)를 들춰보기도 하면서.

 

 

 

 

네번째 책은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김영사, 2006)이다. '시장' 얘기만 읽다가 가슴 한쪽이 답답해질 경우에 딱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언젠가 한번 쓴 적이 있는데, 나는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김영사, 1997)을 오래전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적이 있다. 이후엔 저자 미치오 가쿠는 나의 '무조건 호감' 대상이다(그는 "뉴욕시립대학의 헨리 세매트 석좌 교수로 이론물리학 분야와 환경 및 평화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권위자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신간은 원저 자체가 작년에 나온 것이니까 저자의 최신간인 듯싶다. 600쪽이 넘는 분량인데, 이론물리학 전공자들은 사회학이론 전공자들과는 처지가, 아니면 태도가 좀 다른가 보다(혹은 한가한 것일까?). 아무튼 반가운 출간소식이다. 사두고 아직 못읽고 있는 <엘리건트 유니버스>(승산, 2002)나 <우주의 구조>(승산, 2005)와 함께 언제 읽어볼 시간이 났으면 좋겠다. 모두가 박병철 교수의 번역인데, 그 열정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평행우주>와 겨룰 만한 책으로 동물행동학, 혹은 비교행동학, "즉 동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문적 방법을 정립한" 동물학자이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에 대한 세밀한 평전 <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북스, 2006; 원저는 2003)가 있다.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었는데, 로렌츠 입문서이자 필독서이겠다. 더불어 로렌츠가 들려주는 '개의 세상살이' <인간, 개를 만나다>(사이언스북스, 2006)도 나란히 출간됐다. 작년에 나온 김훈의 소설 <개>(푸른숲, 2005)와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한데, 로렌츠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번 다룬 적이 있는 데다가 '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아서 나로선 미치오 가쿠를 선택했다.

 

 

 

 

이런 선택을 유감스러워 할 만한 책으로 박해철의 <딱정벌레>(다른세상, 2006)도 있다. 책은 '자연의 거대한 영웅 딱정벌레에 관한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비슷한 책들 가운데에서 가장 두툼한 분량을 자랑한다. 저자는 곤충학자이면서 딱정벌레 전문가. 국내에는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낸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사이언스북스, 2004)도 있고, 번역서로는 <딱정벌레의 세계>(까치글방, 2002)도 나와 있다. 말 그대로 '다른세상'이다. <딱정벌레>의 저자에 따르면, "현세를 딱정벌레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딱정벌레들의 다양성과 뛰어난 적응성 때문이다. 알려진 생물 종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딱정벌레는 지구상에서 깊은 바다를 제외하곤 어느 곳에 가든 만날 수 있다." 딱정벌레의 시대라,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비틀즈, 딱정벌레들! 

 

 

 

 

다섯번째는 좀 가벼운 책으로 골랐다. 데이비드 노리스의 <조이스>(김영사, 2006)이 그것이다. 역자는 시인 이수명씨인데(나는 데뷔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세계사, 1995)를 읽어본 기억이 있다), 같은 시리즈의 <라캉>, <낭만주의>, <데리다> 모두 좋은 번역이었다. 해서, <조이스>는 아일랜드 출신이 걸출한 작가 조이스의 세계에 대한 입문 가이드로서 요긴할 거란 생각이 든다. 소개에 따르면, "그의 대표작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 <율리시스>와 그 원전이 된 <오디세이아>의 구조를 비교하며 <율리시스>의 상징과 신화적 구조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곁들여 조이스의 작품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더블린 사람들>이란 초기 단편집도 있지만, 이번 계절에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한번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지. 읽을 만한 국역본이 4종 정도 나와 있다. 번역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창비사, 2005)를 참조할 수 있다. 조이스의 현란한 곡을 어떤 번역자-연주자가 솜씨있게 연주하고 있는지 비교도 해보면서. 젊음이 아직 다 지나가기 전에...

06. 03. 14.

 

 

 

 

P.S. 주문한 책 배송이 왜 늦어질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소개에서 빠뜨린 책을 발견했다. 미레유 뷔뎅의 <사하라 - 들뢰즈의 미학>(산해, 2006)가 그것이다. 도서관에서 보던 불어본 책이 번역돼 나온 것인데, 저자는 생소하지만 '들뢰즈의 미학'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해부가 이루어질 듯도 해서 기대를 모은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불륜, 오리발 그리고 니체>(산해, 2006)도 신간인데, 뷔뎅과 마찬가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 루이즈 디살보는 작가이자 영문학자로 "한때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함께 뉴저지 주 티넥과 뉴욕 주 새그 하버를 오가며 살고 있다"고. 그런 소개를 접하니 더더욱 종잡을 수 없는 책이다(그나마 '불륜'에 관한 책이란 건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니체'는 왜? 하여간에 사하라-들뢰즈, 오리발-니체란 커플이 접속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사태는 더 두고봐야겠다. 이런 건 먼저 읽고 리뷰를 써줄 친구가 아쉽다...

P.S.2. '마감' 후에 눈에 띈 책으로 망구엘의 <독서일기>(생각의 나무, 2006)가 있다.

 

 

 

 

이미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 <나의 그림읽기>(세종서적, 2004) 등으로 은근한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비서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내용인즉, "학창 시절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다. 시력을 잃어가던 세계적인 문호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그의 독특한 촌평에 문학적 영감을 받는다. 전에도 유별나게 책을 좋아했지만 이 만남을 계기로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된다." 현재는 캐나다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최고의 작가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한다. 'A Reading Diary'는 2004년에 나온 그의 최신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리다 - 시공 로고스 총서 8 시공 로고스 총서 8
크리스토퍼 노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자크 데리다가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많다. 문체에 대한 수많은 실험, 글쓰기의 리듬, 프랑스 특유의 지적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자의 어려움, 데리다를 둘러싸고 있는 지적 전통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 정치적 입장 표명에 대해 과묵하다는 점에서 빚어지는 정치적 무관심 ...... .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는 것은 그의 글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미 1967년에 그의 삼부작―<문자기록과 차이(Writing and Difference)>,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 번역서―이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주석서들이 넘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는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데리다가 직접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일차적이겠지만,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는 것처럼 데리다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아마도 진리와 전통에 대한 극단적 상대주의자로 데리다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러한 오해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데리다의 유명한 말인 '텍스트-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Il n'y a pas de
hors-texte)에 대한 노리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말은 텍스트로서의 은유 바깥의 현실 세계란 없다는 의미로 이해되었고, 그로부터 데리다는 지상세계와는 무관한 관념론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러나 데리다에게서 이 말은 사실과 그에 대한 관념의 상응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즉 언어와 현실 사이의 지시작용에 있어서 데리다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언어와 현실이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의한 의미의 발생이 언제나 주어진 틀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미의 형성에는 항상 그에 수반하는 '맥
락(context)'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책에서 이 말의 직접적인 맥락은 구조주의적인 이항 대립의 체계이다.

해체는 지적 허무주의라는 계몽과 관련해서도 노리스의 지적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사변적 이성의 영역 바깥에서의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절대이성의 변증법적 논리나, 의미의 목적(telos), 규제적 이념 등과는 달리, 데리다가 제시하는 (의미의)지평을 파괴하는 전망적 사유는 (철학적)근거율 내에서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한 반성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면, 논리적 인과관계에 의해서만은 설명되지 않는 이미지의 논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근거지우는 원리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설명원리를 필요로 하는가?

노리스의 책은 해체는 비정치적이다, 해체는 무책임하다, 해체는 수사적 과잉이다 등의 해체에 대한 일반적 오해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데리다의 작업이 지닌 내재적 교정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80년대말부터 90년대 초에 이르는 데리다의 최근 작업에 대한 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입문서라는 공간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고, 노리스가 의도한 목적―데리다에 대한 꼼꼼한 읽기는 그의 철학의 중요성을 분명히 제시해준다―에서 볼 때 무리한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통 형이상학의 해체가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역사의 종말'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필수 사항이다.

어쨌든 노리스의 책은 데리다를 둘러싼 오해와 오독을 해명하기 위한 적절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해 그 자체의 조건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출현할 것이다. 데리다 자신의 작업 역시도 이러한 오해와 오독 곁에서 그에 빛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자유의 대가가 경계(vigilance)(마키아벨리)이고, 계몽의 대가는 무한한 책임인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데리다를 아십니까?
데리다 - 시공 로고스 총서 8 시공 로고스 총서 8
크리스토퍼 노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데리다(1930- )를 아십니까란 물음에 제법 고개를 끄덕일 만한 독자는 많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는 정말 중요한 철학자이다. 심지어 그에 관한 영화까지 만들어진! 하지만, 디지털 영화제에서 본 <데리다>(2002, 85분)의 번역 자막에도 오역은 드물지 않았던 걸 보면(가령 '부정신학'을 '네거티브 이론'이라고 옮겼다), 그에 대한 이해는 많은 오해와 더 많은 무지 사이에서 한동안 배회할 듯싶다.

미국인 여성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데리다>는 자신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 대담과 갖가지 다큐 자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가장 최근의 그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의 표지 대로이다. 백발이고 좀 작은 키에 단단해 보이는 인상인데, 눈웃음이 자상하지만 눈매가 깊고 예리하다. 미국 영화배우 '조 페시의 똑똑한 형' 같은 인상이다(그의 형에 의하면, 데리다의 집안은 전혀 지적이지 않은 집안이다. 그는 집안의 '천재'이다.) 그런 그가 짓궂은 질문들에 대해서 진지하고도 유쾌하게 답변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데리다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적 길잡이로 삼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의 실물과 목소리를 접할 수 있으니까. 또 그의 철학의 끊임없는 공격대상이긴 하지만, 바로 그 '현전'(presence)의 형이상학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자(중의 한 명, 최소한)와의 85분간의 대면이 그에 대한 과감한 관심(열정)으로 발전한다면, 비로소 우리는 그의 글쓰기의 세계, 문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때도 가장 좋은 건 그의 대담들이다. 국내엔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에 실림)이 가장 유용하고, 좀 어렵고 번역도 만족스럽지 않지만, <입장들>이 도전해 볼 만하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으로 그의 저작을 읽어나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사정이 또한 그렇지가 못하다. 번역된 책들 중에 그의 초기 주저라 할만한, <그라마톨로지>나 <글쓰기와 차이>가 결코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10여쪽을 못 넘기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1987)이다. <해체비평Deconstruction>(1982)으로 명성을 얻은 저자가 쓴 본격적인 데리다 안내서이다. 내가 읽은 <해체비평>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데리다>에서 노리스는 훨씬 정교한 논리적 분석과 재구성을 통해 데리다의 전략과 실제를 소개한다.

데리다의 저작이나 그에 대한 연구서 번역들이 대개 부정확하고 미흡한 번역으로 독자를 고생시키는 반면에, 직업번역가가 번역한 이 책은 (물론 부정확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명쾌하여 문맥을 살피면서 읽는다면 충분히 독파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나 자신도 이전에 절반쯤 읽다가 접어둔 걸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영화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노리스를 길안내 삼아 데리다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으리라.(<그라마톨로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루소의 텍스트 <인간언어기원론>도 최근에 번역돼 나왔기 때문에 같이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후설 현상학에 대한 해체에서부터 해체론이 함축하고 있는 윤리학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87년에 나왔으므로 당연히) 90년대 이후의 데리다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입문서로는 <데리다 입문 Derrida for beginners> 같은 쉬운 책도 번역돼 나왔으면 싶다. 최근의 철학까지 포괄하고 있는 책으로는 카푸토Caputo의 <호두껍질 속의 데리다 Derrida in a nutshell>가 권할 만하다.

그런데, 데리다를 왜 읽어야 하느냐고? 그것은 데리다에 이르러 철학이 다른 가능성(철학의 타자)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철학의 가능성, 또 다른 사유의 가능성, 더 나아가 또 다른 삶의 가능성. 데리다를 읽는 이유는 그 가능성에의 모험이 우리를 잡아끌기 때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