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과 전쟁, 그리고 근대 동아시아인의 삶 중국해양대학교 한국연구소 총서 2
중국해양대학교 해외한국학 중핵대학 사업단 엮음 / 경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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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새로 들어온책 코너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예전,이책에도 글을 쓴 염인호 선생의 만주에서 활약하던 조선의용군출신들이 해방후 대거 북한인민군으로 편입돼 한국전쟁 발발시 남한으로 진공한 21개 연대중 10개연대를 차지했었다는 이야기가 큰 흥미를 끌었었다.

 

이책에서는 해방당시 해외동포중 가장 많은수를 차지하던 중국,특히 만주지역에서 거주하던 조선사람들의 귀환과 정착,전쟁(국공내전,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다.

가장 많은수가 해방후에도 귀환하지 않고 정착한 이유는

첫째,조선시대 말부터 일찍 만주에 정착한 사람들의 경우 2세들은 고향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었고 태어난곳이 고향이다라는 생각과,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정도 생활기반이 잡혀있어서 쉽게 돌아가기 어려웠다는 점

둘째,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실시한 "토지개혁"을 통해 그당시 대부분을 차지하던 농민들에게 희망이 생겼고,"소수민족"에 대한 중굯공산당의 정책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만주지역은 일찍이 나라의 패망이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을 떠나 정착한 곳이 만주 용정,길림등이고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의 기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었고 그후 무장독립투쟁의 중심에 있던 곳이며,많은 수의 조선 젊은이들이 팔로군에 소속돼 싸우는것이 궁극적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한 길이며,향후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키는데 역량을 키우는 일이라 생각하여 국공내전에 목숨을 바치었다.결국,중국의 통일이후 약  3개사단에 달하는 병력들이 조선인민군으로 편입되어 한국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미국의 개입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그들의 꿈인 완전한 조국통일의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채 그 주역들조차 북한에서 종파투쟁(연안파숙청)을 통해 자리를 잃게 되지만,그들이 온갖 어려움속에서도,심지어 목숨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었던 조국의 해방과 통일을 향한 염원은 후세들이 기억해야 할것이다.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들을 나는 기억해 주고 싶다.중국의 어느 산하에서 국민당 군대와 싸우다 죽었을 어느 조선인 병사..,또는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완전한 해방된 조국통일을 꿈꾸다 어느 산하에서 숨졌을 의용군 출신의 인민군 병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이런 이야기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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