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헬조선을 탈출해도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청춘. 그럼에도 꾸준히 탈출을 꿈꾸는 건 이 나라가 점차 나아질 바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강명은 그런 아픔까지 직설적으로 담아낸다. 쓰라린 상처와 마주하는 기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야 할 일이 잔뜩 밀려있는 와중에도 스티븐 킹의 새 중편집 [별도 없는 한밤에]를 읽었다. 장편이었다면 몇 번이나 흐름이 끊겼을지 모른다. 아니 솔직해지자. 장편이었다면 아예 일을 잠시 접고서 쭉 읽었겠지. 스티븐 킹은 내게 그런 마력을 주는 작가니까. 그의 소설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첫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메두사 눈빛에 굳어버린 석상이 되듯 마지막 문장까지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그 마법에서 간신히 헤쳐 나오면 어느새 타임 슬립을 한 거처럼 시간이 저만치 흘러가 있다. 그러나 이번엔 4개의 중편이 모인 책이라 부담 없이 끊어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중편집은 각 이야기 사이마다 쉬어갈 틈이 필요하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 내려가기 보단, 한편 한편이 끝나고 그 이야기의 여운을 느끼고 곱씹는 편이 더 기억에 짙게 남는다. 어쩌면 조금 바빴던 게 이번 중편집의 맛과 향을 더 깊고 강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복수에 대한 4가지 이야기를 담아낸 스티븐 킹의 이번 소설들은 독특하거나 새롭지는 않지만, 무시무시한 그만의 매력이 아주 잘 담겨있었다. 오랜만에 킹의 독한 얘기들을 맛보게 되어 기뻤다. 조금 늦은 여름에 만나긴 했어도 아직 더운 날씨여서 이 소름 돋고 쩌릿쩌릿한 이야기들이 무척 서늘하고 시원했다.

 

킹의 중편집은 [사계 Different Seasons][미스터리 환상특급 Four Past Midnight], 그리고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Hearts In Atlantis] 이후 오랜만인 듯 하다. 띠지에 닐 게이먼은 스티븐 킹의 마지막 중편소설집이 될 책이라고 얘기하는데 - 물론 광고성 멘트겠지만 - 그래선 곤란하다. 어정쩡한 분량과 하나의 테마로 묶어내기가 물론 쉽지 않지만, 킹의 중편집들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해왔단 점에서 계속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이번 [별도 없는 한밤에] 역시 단단하고 생생한 이야기들이다. 책 읽기에 앞서 경건한 마음으로 잉크 냄새를 맡아 본다. 다소 매캐하고 텁텁하지만 설레는 내음이다. 매끈한 표지와 까끌까끌한 본문의 종이도 만지며 두툼한 부피를 가늠해본다. 600쪽에 이르는 분량이 쉬 끊어지지 않을 보급품을 확보해둔 부대마냥 든든한 느낌이다. 에이핑크 멤버들이 태어났을 무렵부터 킹의 소설을 이런 식으로 읽어왔으니 이젠 오랜 습관을 넘어 종교화된 의식과도 다름없다. 페이지를 넘겨 차례와 마주한다. ‘1922’, ‘빅 드라이버’, ‘공정한 거래’, ‘행복한 결혼 생활’. 이 네 개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다른 킹의 중편집들과 비슷한 분량이다.

 

가장 앞에 자리한 이야기이자 가장 긴 내용을 자랑하는 ‘1922’는 대공황 시대에 아내를 살해한 뒤 서서히 몰락해가는 농부에 대해 다룬다. 딱히 아내의 복수라고 말할 순 없지만, 아내의 복수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초현실적인 악몽은 이 중편집에서 가장 세고 지독한 이야기다. 파멸을 향해 천천히 내딛는 남자의 고독하고 잔인한 운명을 킹의 끝내주는 입담을 통해서 생생하게 그려나가는데, 고어에 가까운 잔혹함과 메마른 황무지처럼 차갑고 건조한 문체가 만들어내는 비극의 하모니는 절정을 이루며 쓸쓸하고 황폐화된 고통을 안긴다. 두 번째 이야기인 빅 드라이버는 자경단 장르를 통해 풀어내는 전형적인 복수담으로, 스티븐 킹 식의 [데드 위시]이자 [브레이브 원]이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가장 흔한 소재지만, 무엇보다 이 끔찍하고 생경한 범죄를 겪게 되는 여성 피해자의 심리를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필력은 가히 소설판 [네 무덤의 침을 뱉어라]라 할 만큼 무섭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결말에 이르러서도 근원적인 구원은 피한 채, 또 다른 피해자와의 의도치 않은 공감을 통해 여전히 해소할 수 없는 불안감을 걸쩍지근하게 안기며 남성 위주의 현 사회에 대해, 그리고 심각한 성범죄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세 번째 이야기이자 가장 짧은 분량을 가진 공정한 거래는 하나의 콩트에 가까운 소설로 친구에 대한 시기, 질투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성향과 악취미적인 공상을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하는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혹은 행복량 보존의 법칙에 해당하는 얘기로 가정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통해 느껴지는 대리만족과 불편함의 심리를 나름 위트 있으면서도 의표 있게 찌른다. 다른 킹의 단편들에서 나타나는 페이소스와 잔인한 유머를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배치된 행복한 결혼 생활은 이번 중편집에서 유일하게 영화화된 작품으로 조안 알렌과 스티브 랭 주연의 [굿 메리지]라는 영화로 국내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알고 보니 내 남편은 싸이코 살인마라는 전형적인 설정으로 시작되는 작품으로 극적인 장치나 반전은 없지만, 아내가 느끼는 배신감과 당황스런 감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신뢰와 관계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건지, 한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게 얼마나 불확실한 건지 쉽고 명료하게 표현해낸다.

 

여러 가지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나약하고 어리석은 부분들을 조망하는 킹의 어두운 시선은 여전하다. 때론 조소하고 때론 투덜거리며 절박한 상황과 마주한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을 드러내는 작가의 잔혹함이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우화를 통해 희망의 소중함과 휴머니즘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킹의 독한 화법은 쉬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재미를 안긴다. 어두운 곳에 있어봐야 밝음을 안다고 명암을 극대화시켜주는 킹의 실력이 놀랍고 부럽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종이로 쿡 찍어낸 것과 같은 생생한 필력과 각 캐릭터 속의 내면을 홀랑 다 긁어낸 듯한 심리 묘사는 덤. 분명 악마에게 혼까지 팔아넘기고 얻은 작품들일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매번 놀라운 이야기들을 직조해낼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이 돌아왔다. 아니 사실 거의 매년, 그는 돌아온다. 국내에 번역되는 속도가 느리거나 아예 번역이 안 돼서 그렇지. 킹은 꾸준히 신작을 써왔다. 1986년엔 눈이 썪어들어갈 정도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영화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라는 호러물을 감독했음에도 [그것]이란 걸작을 퍼냈고, 1999년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의 사고를 당한 후에도 보란 듯 [드림캐처]를 완성했다. 1974년 [캐리]로 데뷔한 이래 엄청난 성공과 영광을 누렸음에도 그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사랑 받아온 작가는 드물 것이다. 그것도 아멜리 노통 정도의 분량도 아니고 수학 정석과 비견될 정도의 두꺼운 페이지를 거의 매년 선보이는 작가는 더더욱 더. 스티븐 킹은 과작보다는 다작이 어울리는 작가다. 작품마다 질적인 편차는 있지만 재미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킹에게 있어 실망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이번에 나온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2014년 1월에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로 - 그리고 킹은 그해 11월에 [리바이벌]이란 소설을 퍼냈고, 올 6월에는 (벌써)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속편인 [파인더스 키퍼스]까지 출간했다! 손에 모터가 달린 건지, 아님 창작의 신에게 빙의된 건지 모르겠지만 - 그의 첫 하드보일드 탐정물이라 했다. 세상에. 그가 40년간 온갖 종류의 소설을 써왔는데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그 첫 하드보일드로 그 해 미국 최고 추리소설에게 수여하는 에드거 최고 장편상을 수상했다는데 두 번 놀랬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스티븐 킹이 작정하고 처음 쓴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기대감이 안 생긴다면 거짓말. 소설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묻지마 테러를 벌인 살인마와 정년 퇴직한 형사의 쫓고 쫓기는 내용이 다이기 때문에. 하지만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기대감과 만족치가 있듯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고전적인 설정과 익숙한 플롯을 가지고 킹은 자신만의 하드보일드 추리물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범인과 탐정을 미리 던져주고 둘이 핑퐁 게임을 하며 주고받는 대결의 양상은 굉장히 빠르고 전복적이며, 주도권을 독자에게 뺐기지 않고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겨 끝으로 달리게 만든다. 킹의 드라마트루기는 매우 능수능란해서 읽다보면 묘한 무아지경에 빠지고 마는데, 마치 영화를 보듯 긴박한 상황 묘사와 캐릭터에 빙의된 듯한 기분마저 드는 심리적인 묘사가 병행되며 단순한 이야기에 깊이와 특유의 세계관을 부여한다. 따라 앞뒤좌우위아래 입체적인 무대가 세팅되며, 사건의 종결을 향해 복합적으로 배치된 과거와 현재의 사연은 화문석처럼 촘촘히 얽혀 단단한 내용을 만든다. 고전적인 편지로 시작한 범인과 탐정 간의 소통은 곧 SNS로 변형돼 현 세태를 담아내고, 보스톤 마라톤 폭발사고나 맥도널드 차량 돌진 사고와 같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세팅된 시작과 끝은 무분별한 광기와 분노, 재난에 대해 얼마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가 다시금 공포를 되새기게 만든다.

 

탐정 빌 호지스와 범인 브래디는 모두 이전 킹의 소설들에서 등장했을 법한 캐릭터군이다. 등장민물뿐만 아니다. 사람을 치는 자동차나 쏘시오패스 살인마의 비극적인 가정사, 새로운 기술과 현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사 등은 그의 세계관에서 그리 낯설거나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살을 생각하는 은퇴한 형사나 조력자로 등장하는 독신 여성, 사건을 알리는 편지와 의뢰인 간의 사랑 등은 모두 이전 이 장르에 통용되던 기술과 법칙들이었다. 그럼에도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새롭게 만드는 건 장르의 전복적인 구축과 재해석에 있다. 킹은 그 기존의 요소들을 가지고 조금 다르게 활용해낸다. 우선 탐정 위주, 혹은 범인 위주의 단선적인 시점축을 무너뜨리고 양쪽을 교차로 배치해 대결 양상을 띄며 긴장감을 높혔고, 팜므 파탈이나 유혹과 외압에 굴복한 동료 대신 예의 바른 흑인 청년과 우울증 걸린 중년 여성을 조력자로 내세운다. 더욱이 탐정이 직접 '행동'하지 않으며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도 의외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킹은 이미 이 장르를 자기식 대로 서술하는 데 있어 두려움이 없는 셈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미 미국에선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후속편이 출간되었다. 킹은 이 자신만의 하드보일드 시리즈를 삼부작으로 완성짓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2016년에 출간될 마지막 편인 [엔드 오브 왓치]도 초고 집필이 끝났다고 하니 그의 성실함에 두손 두발 다 들 지경이다. 남은 건 부지런히 번역돼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숙달된 이야기꾼의 추리소설 시범은 완벽한 예를 남기며 끝을 맺혔다. 킹에게 있어 장르는 무색하다. 스티븐 킹이 바로 하나의 장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꿈의 태그매치다. 어디 누가 해리 보슈와 패트릭 켄지가 만날 거라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잭 리처’와 ‘닉 헬러’가 한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루카스 데븐포트와 릴리 로텐부르크’와 팀을 짜 수사를 한다. 심지어 오만가지 이상한 사건들과 마주친 바 있는 ‘펜더개스트’는 무시무시한 ‘구스범스’ 세계 안으로 떨어진다. 이런 단편들이 자그마치 11편이다. 한 지면 안에서 무려 22팀(정확히는 23명)의 작가들이 만든 캐릭터들이 대결(이라 쓰고는 협력? 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렇다. 요즘 트렌드대로 얘기하자면 황금가지 밀리언셀러에서 나온 단편집 [페이스 오프]는 추리/스릴러 계의 ‘어벤져스’라 할 수 있다. 쟁쟁하기 그지없는 영미권 스릴러 작가들이 각자 이해사정들을 뒤로 한 채 이 앤솔로지를 위해 뭉쳤다. 단순한 팬서비스 차원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과 캐릭터를 걸고 독자에게 다가간다. 이를 접하는 독자들 입장에선 기대감에 전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장르문학의 불모지인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헤더 그레이엄과 F. 폴 윌슨, M.J. 로즈와 존 레스크로아트, 피터 제임스, 제임스 롤린스, 린다 페어스타인, 스티브 베리 등의 작품들은 단 한편도 한국어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앞서 소개한 제프리 디버와 짝패가 된 존 샌드포드의 루카스 데븐포트 시리즈 역시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조셉 핀더의 번역된 소설들은 절판되었고, 그마저도 여기에 등장하는 닉 헬러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얼론이었다. 레이먼트 커리와 리사 가드너 역시 마찬가지다. 소수 번역된 이들의 책들은 지금 모두 절판 상태다. 국내 독자들은 아쉽지만 이 쟁쟁한 스릴러 앤솔로지를 오롯이 즐길 수가 없다. 이 환상의 태그매치가 갖는 의미들과 잔재미를 곱씹을 여지가 아무래도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단편집을 기획한 데이비드 발다치의 서문과 각 단편 앞에 짤막하니 소개된 작가들과 캐릭터들의 집필 사연들을 통해 그 분위기나마 조금씩 짐작할 수 있다는 게 위안거리다. 책 말미에 첨부된 작가들 소개 또한 좋은 가이드가 된다. 이걸로 만족할 수 없다면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나온 [라인업]이란 책을 들춰봐도 몇몇 캐릭터들은 도움이 될 순 있겠다.

 

본편에서 가장 감정이입이 잘되고, 유감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은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이 함께 쓴 [야간 비행]이다. 2015 에드가상 단편 부문 후보에도 오른 이 소설은 국내에 많이 소개돼 익숙한 해리 보슈 시리즈와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이종교배다. 짧지만 두 작가들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난다. 그 특유의 유머도, 어두운 인간의 그림자도, 그리고 선한 정의도 함께 가지고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 가장 긴 분량을 가지고 있는 제프리 디버와 존 샌드포드의 [라임과 프레이]도 나쁘지 않다. 다른 단편들이 아무래도 본편 맛보기 같은 축약된 분위기를 지니는 것 같은 분량의 압박이 있는데 반해, 이들 단편은 (아무래도 가장 길다보니) 그 제약에서 빗겨나 있다. 호흡도 괜찮고, 사건 흐름도, (존 샌드포드 소설을 읽지 못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프리 디버의 작풍도 반갑다. 리 차일드와 조셉 핀더가 함께 한 [대단한 배려]도 좋은 마무리다. 무엇보다 위트 있고, 한정된 공간과 분량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들을 잘 소개한다. 이 앤솔로지 성격에 그야말로 딱 맞아 떨어지는 단편이 아닌가 느껴졌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R.L. 스타인과 더글라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가 함께 한 [가스등]이다. 섬뜩하면서도 이죽거리는 R.L. 스타인 분위기도 존재하고, 초자연적인 현상과 마주치는 팬더개스트 시리즈의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애매모호하니 환상특급과도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 앤솔로지를 기회로 국내에 이 쟁쟁한 페이지 터너들의 소설들이 소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번 단편들만 맛보다 감질나서 죽겠다. 국내 장르 소설팬들은 이래저래 슬프다. 고문도 아니고 찔끔찔끔 이게 뭐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치드 매치드 시리즈 1
앨리 콘디 지음, 송경아 옮김 / 솟을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모든 것이 통제된 채 소사이어티의 오피셜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 근미래. 열일곱 살이 된 주인공 카시아는 각자의 배우자를 정해주는 매칭파티를 통해 자신의 반려자를 접하게 된다. 그는 바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가장 친한 친구이자 믿음직하고 잘 생긴 이웃집 청년 잰더.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음날 매칭 상대의 정보가 담긴 마이크로카드에서 카시아는 잰더가 아닌 다른 소년의 얼굴과 마주치고 만다. 그는 일탈자로 평생을 소사이어티 이면에서 살아온 카이. 그녀는 편안하고 안락한 자신의 미래를 대변하는 잰더와 카이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며 혼란스러운 앞날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마치 [도망자 로건]에 [트와일라잇]과 [헝거 게임]을 뒤섞은 것 같은 이 디스토피아적인 청춘 로맨스는 두툼한 분량 속에서 여유롭게 인물들을 소개하며 감정과 복선을 착실히 쌓아나간다. 수많은 비밀과 사연은 살짝 가려두고 세 인물 간의 감정의 파고만을 건들인 채 호기심을 자극하는 1권은 진정한 시작에 불과하며 더 많은 험난한 여정과 아픔을 겪고나서야 이들의 로맨스에 방점을 내려줄 듯 하다. 흥미로운 건 사실 이 금단의 로맨스가 애초에 생성되게 만드는 빅 브라더 '소사이어티'의 존재다. 필요악일수도 있고,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될 이상론을 대변하기도 한 이 사회구조체는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경험한 지난 과거의 투영인 동시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대비시킨 판타지다. 사랑을 통해 자유의지와 책임, 결과를 묻는 등장인물들의 싸움은 그래서 올드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요소다.

읽기 전 로맨스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기에 조금 묵직하고 하드한 맛을 바랬는데, 그런 먹먹함과 잔인함보단 질풍노도 불완전한 청춘 시절의 예민하고 풋풋한 감정에 집중하고 있어 조금은 (취향적으로) 아쉬웠다. 하지만 아직 나오지 않은 두 편의 후속작을 생각해본다면 너무 미리 결론을 내리는 것도 성급한 일이 아닐까 모르겠다. 어떤 결말로 달려갈까. 소사이어티와 카시아, 잰더와 카이의 운명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