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노 쇼고의 '긴 집의 살인'

긴 집의 살인 ㅣ 집의 살인 시리즈 1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10월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우타노 쇼고는 신본격 추리소설의 기수로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추리소설 작가 중에 하나. 독창적인 반전과 정교한 트릭으로 독자의 넋을 빼놓게 만드는 신출기몰한 솜씨는 가히 물이 올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정통 밀실이나 정형화된 퍼즐형 추리를 구사하면서도 구조를 뒤틀고 예의 추측가능한 결론을 지양하는 놀라운 파격은 우타노 쇼고만의 재미와 스릴를 선사한다. 정통파 속의 신선한 충격이랄까. 정형화된 결말을 거부하며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멈추지 않는, 깨알 같은 반전을 갖췄다. [긴 집의 살인]은 그런 그의 1988년에 발표한 데뷔작으로 "집의 살인" 시리즈 첫 권이자 삐딱스럽고 괴팍한 사내 시나노 조지가 첫 등장한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습작 한 번 해본 적 없다는 말과는 달리 300쪽이 넘는 분량을 쉴새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몰아붙이는 이 처녀작은 신인의 열정과 패기가 의욕적으로 다가온다.
 
5인조 대학생 록밴드 메이플 리프는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하기 위해 게미니 하우스라는 산장에서 합숙 훈련을 떠난다. 그러나 합숙 첫 날 멤버 한 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음날 그가 묵던 방에서 다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완전한 밀실과 거짓없는 알리바이. 기괴한 참상의 진상이 미궁에 빠질 무렵 두 번째 살인이 멤버들의 추모 공연으로 바뀐 마지막 공연 중에 또 다시 발생한다. 첫 사건과 동일하게 감쪽같이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모습을 들어낸, 역시나 교살된 사체. 사실 지금껏 발표된 우타노 쇼고의 대표작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나 [시체를 사는 남자], [밀실살인게임] 등 쟁쟁한 작품들에 비하면 상당히 간단하고 쉽게 짐작할 수 있는 트릭일지 모른다. 범인의 동기는 짐작조차 할 수 없고. 그러나 이 간결하고 쉬운 트릭을 끝까지 몰고 갈 수 있는 극적인 능력과 리듬, 그리고 다양한 시점의 묘사들은 책을 쉽게 덥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페이지 터너로서의 장점뿐만 아니라 그 간단한 트릭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뻔뻔스러움은 훗날 지금의 우타노 쇼고를 만들지 않았나 짐작케 한다.
 
단점도 아쉬움도 느껴지는 데뷔작이지만, 이전까지 전혀 글 한 줄 안쓰던 자가 홀연히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고 선배 작가에게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의 배포와 실력은 검증받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반전의 기수, 신본격의 재미를 알린 우타노 쇼고의 첫 출발이 궁금하다면 첫 장을 주저없이 펼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