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동창회보 2006. 9. 1)

한국정치의 분석과 이해 - 개정증보판
이정복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6년 3월

이정복 교수의 <한국 정치의 분석과 이해>는 권위주의 시대였던 전두환 정부부터 민주화 이후인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의 변화와 발전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 역작이다. 한국 정치 연구의 주요한 시각과 대상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나타나는 한국 정치 연구의 흐름은 민주화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여 각각의 특성을 기술하는 단절적 시각을 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접근법은 민주화 이후 크게 달라진 정치 환경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정치적 갈등과 경쟁의 원인이 민주화 이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또 다른 한국 정치 연구의 흐름은 각 대통령의 시기를 서로 구분해서 파악하려는 관점이다. 정당이 지배하는 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 개인의 지배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제의 특성에서 볼 때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 정치를 5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것으로 바라보려는 관점은 너무 단편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 정치의 발전과 전개를 보다 긴 호흡 속에서 바라보려는 이 책의 시각은, 단기적이고 단절적인 형태로 이해하려는 관점으로 인해 자짓하면 놓치기 쉬운 우리 정치의 연속성과 상호의존성이라는 특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분석한 한국 특성을 보면 과거의 것이라도 논의 시제만 현재형으로 바꿔 놓으면 지금 이 시점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것들이 많다. 또한 한국 정치를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한 글은 이승만 시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를 포괄하고 있는데, 큰 흐름 속에서 한국정치의 변화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각 행정부의 특성을 일관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현실 정치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정치학 연구방법론과 관련된 저자의 ‘긴 호흡’ 역시 보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지난 60년간 정치학의 여러 하위 전공 분야의 연구 대상과 방법론상의 변화를 폭넓게 분석하면서 한국 정치학계가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저작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한국 정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긴 호흡의 시각’이 수직적인 연구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책에서 제기하는 다양한 접근법은 논의 폭의 수평적인 광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책 속에는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정치의 특성과 변화, 산업화와 민주화 등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 그리고 계층적 분석과 정치문화의 관점을 취하는 사회문화적 접근, 정당ㆍ의회ㆍ선거와 같은 정치과정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각도에서 한국 정치의 단면을 잘라보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시간적 깊이와 내용적 풍부함을 하나로 묶어내는 연결고리는 다원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강한 믿음이다. 다원민주주의야말로 한국정치가 실현해 내고 발전시켜야 할 목표이며, 이를 위해 한국의 정치학도들이 보다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다원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믿음은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발전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정치발전론을 논의한 몇 편의 논문을 통해 저자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한국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저작은 권위주의 시대나 냉전을 ‘역사’로 배우는 요즘 젊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너무도 쉽게 지나간 날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에게도 새삼스레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다시 살펴보게 하는 혜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창회보 2006. 9. 1)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