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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화야 설리화야
이룸 지음 / 카프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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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에게는 전 인생을 붙드는 강렬한 그 무엇이 있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소용돌이친 강렬한 원체험은 이후 삶의 방향과 방식에 관여하게 된다. 어떻게 드러내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어낸다지만 말짱 없는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원체험을 변형하고 은유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붙드는 그 무엇을 말하게 된다. 어쩌면 애당초 그렇게 하기 위해 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을 미루어볼 때 이 작가 역시 그렇게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은 작가의 원체험을 가로축으로 삼고 사회와 제도의 모습을 세로축으로 삼아 직조한 탐구한 작품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우선 작가의 무조건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보자. 이 소설의 주인공 규대는 어질고 심지가 굳을 뿐 아니라 평생을 두고 지순한 사랑을 품고 지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다른 주인공 도람도 자존감이 강하고 발랄하며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갑자기 행방불명된 피붙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가능하게 한 인물 창조라 할 수 있으며 작가의 원체험이 슬핏슬핏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에게도 스토리가 곡진하게 전달된다. 이렇게 진심과 소망이 갖는 힘은 아주 세다!

   세상의 어떤 삶도 개인의 운명으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특히 개인의 몰락 이면에는 사회와 제도의 모순이 반드시 작동한다.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 아픈 경험이란 세상을 읽고 모순을 발견하는 통로가 되기 마련이고 이 소설 역시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우선 화려한 전국체전과 다리 밑으로 내몰린 낙오자들을 대비시킨 기본 구도 설정이 돋보인다. 거기다가 사상의 자유를 꺾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도와 개인의 삶을 흔드는 금권주의가 소설의 결을 두텁게 만들고 있다. 여성의 인권과 성을 유린하는 젠더 문제 또한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원체험을 자신 속에 가두지 않고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작가의 열린 시각이 있어서 가능한 작업이었다고 본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성적 관심에 매몰되어 있는 점, 다리 밑 낙오자들의 신상 얘기가 극단적이고 신파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약간의 아쉬움은 술술 읽히는 가독성, 삶을 해석하는 예리한 문장 들로 충분히 상쇄된다. 무엇보다 작가의 오랜 공력과 진심이 전해져서 좋다. 

  어라, 작가의 절필 선언에 눈길이 간다. 이 작품에 대한 결연함의 표현으로 이해하면서도 한 명의 작가를 잃는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이 작가의 작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같다. 작가가 살아가는 방식이란 글쓰기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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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지 이야기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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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가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소설가 최시한을 기다려온 독자입니다. 굉장히 반가운 작품, 역시 기대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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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박물관 문지 푸른 문학
김혜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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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명랑소녀>에서도 확인된 바 김혜정 작가의 마음은 늘 낮고 쓸쓸한 곳을 향하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탈북자, 철거촌 아이, 장애인, 다문화가정 아이 들에게로 깊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의 결핍이 결코 전체의 결핍은 아니며 그 결핍 속에서도 성장의 단초는 있다고 독자에게 조곤조곤 말하고 있다. <침묵>의 주인공이 갖는 사랑과 후회, 반성의 감정이 그러하고 <하와>에서 재구의 이중적인 행동과 눈물 또한 그러하다. <영혼박물관>의 깊은 사색과 <또자는 어디로 갔을까>의 맑은 심성에 다다르고 보면 결핍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느닷없는 각성마저 들었다. 드러난 결핍의 이면을 보면서 감춰진 나의 결핍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결국 인간이란 모두 결핍을 안고 사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나는 <영혼 박물관>과 <하늘나라 입국절차>가 좋았다. 함께 어울리던, 그 중 가장 힘든 생을 살고 있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은 주인공과 그 친구들로 하여금 일상을 살지 못하게 한다. 죄의식과 채무감으로 비틀거리게 되며 남은 친구들마저 서로를 갉아먹게 된다. 당연한 모습이지만 어쩌라, 그래도 살아야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하여 '불안한 영혼'인 주인공과 인태, 순재는 나름의 애도를 통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과정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을 분투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 여기라는 것이다"라는 표현에 묵직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하늘나라 입국절차>는 새엄마가 낳은 이복동생의 피부병 때문에 더이상 햄스터를 키우지 못하는 초등생의 고민을 다룬 소설이다. 햄스터를 키워줄 사람을 찾아 헤매며 엄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고 천연히 말하는 주인공은 마치 '이청준' 작가의 성장소설들을 보는 것같이 마음이 아리고 애잔했다. 모든 연령대를 커버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동화처럼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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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어떻게 할 것인가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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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책 스타일과 레이아웃이 좋다. 두께에 잠깐 놀랄 수 있으나, 일단 읽기 시작하면 페이지가 잘 넘어갈 것이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론이 나와 있는데다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연습문제를 풀도록 되어 있다. 나아가 '자기작품짓기'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별도로 찾아볼 수 있도록 색을 달리한 것도 독자를 위한 배려로 보였다. 

 

  친절한 책이다. 마치 필자분이 바로 앞에서 이리저리 말씀해 주시는 느낌. 머리말이며 독자들에게 짚어주는 포인트, 문제의 내용 설명과 답지 설명, 길잡이와 내용설명 들이 그렇다. 그래서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이론 파트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영화,드라마, 소설, 동화 등을 예들어 설명하기 때문에 잘 읽힌다. 특히 스토리텔링이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인간 전반의 문제로 인식하여 근원적 의의를 밝힌 부분, 2부의 스토리텔링 방법 제시 부분 등은 이 책의 가치를 입증하는 탁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본문이 좋지만 연습문제는 더 좋다. 차근차근 쌓아올리며 질문을 던지니 문제를 풀면서 실력이 쌓이도록 되어있다. 문제만 있는 게 아니고 해설서도 있는데 가능성 있는 오답에 대한 설명까지도 되어 있다. 학생을 가르치듯, 독자를 격려하며 끌고가는 모습에 정성이 느껴졌다. 

 

  그동안 스토리텔링에 대한 책을 많이 읽은 입장에서 이 책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책 중에 최고다" 로 자신 있게 평가한다.

  읽기로 만족하지 못하는 문화인들, 전문글쓰기에 입문하거나 더 잘쓰고 싶은 사람들이 거듭 읽고 지침대로 공부한다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뜰 것이며 훌륭한 스토리텔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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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우물 현대시 시인선 148
송정화 지음 / 한국문연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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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 한번 읽고,

정독해서 한번 읽고,

맘에 드는 몇 편 베껴쓰면서 한번 읽었다.

갈수록 좋았다.

<안나푸르나> <자귀> <거미의 우물> <봄밤> <꽃잎 지는 소리>

<늙은 옹기속 아버지><간이역>등을 베껴썼는데 그만큼 내 정서를 사로잡았다는 뜻일 게다.

내용과 형식이 잘 버무려졌고 대상을 보는 시선, 깊이, 상징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안나푸르나>는 <서시>라는 제목을 달아도 좋았을 것 같았다.

시인이 지향하는, 이 시집이 아우르는 행보와 주제가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시집을 읽으면 건질 게 몇 편 없는데

이 시집은 버릴 게 몇 편 없을 정도로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약력에 의하면 <좌판>이라는 시가 신춘문예 당선작인데

시집 속에서는 그닥 돋보이지 않았다. 

신춘문예를 뛰어넘는 작품이 많다는 뜻으로

그동안 끊임없이 시를 벼려왔다는 증거이기도 할텐데

왜 이리도 첫 시집이 늦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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