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의 삶을 관통한 세 가지 코드는 음악과 마약, 그리고 사랑이었다. 이 중에서 그가 가장 성공적(?)으로 체현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마약이었다. 심지어 말년의 그에게는 음악마저 마약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땠을까. 그에게 사랑은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아니, 그래 보였다. 그 때문일까. 문득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그가 아닌 그의 여인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랑의 셈법에 따라 책의 내용을 다시 짚어 봤다. 그랬더니, 이런 얘기가 됐다.
한 사내가 있었다. 천재적인 음악의 감각을 타고 태어났지만 그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뜨거운 환호를 보냈고, 그는 스타가 됐다. 많은 여인들이 추파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뜻하지 않게 마약이 그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지지러진 눈빛 속에서도 그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인들은 더 강한 집착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어느새 그는,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제멋대로 살다가, 역시 제멋대로 죽었다. 알고 보니 그가 사랑한 건 음악과 마약뿐이었다. 여인들은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