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스크롤했다. 친구들의 이름이 잇달아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사람들 각각의 이름이 기호처럼 느껴졌다. 내 전화번호부는 나와 관계가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전혀 관계가 없었던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 당연한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인간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뭔가를 얻으려고 한다.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지금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뭐든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들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로채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누군가가 얻고 있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잃는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 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그런 세상의 룰을 자주 들려주었다.
신기한 일이다. 지금 내 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수많은 번호 중에 외우는 번호는 하나도 없다. 친한 친구 번호도, 상사 번호도, 하물며 부모 번호조차 못 외운다. 휴대전화에 나의 인연과 기억을 모조리 맡겨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전화가 생겨 곧바로 연결되는 편리함을 손에 넣었지만, 그에 반해 상대를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시간은 잃어갔다. 전화가 우리에게 추억을 쌓아갈 시간을 앗아가고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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