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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해로외전
박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된다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현재 자신의 삶이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돈을 더 많이 벌 텐데…….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 그러면 더 똑똑해져서 좋은 상황들을 더 많이 마주할텐데……. 성격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등의 생각은 정말로 흔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저조차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는 법, 책을 더 많이 읽는 법, 성격을 바꾸는 법 등은 책으로, 컨텐츠로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대학교라는 직장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교수이자 소설가 주현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끝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소설가 주현입니다. 독자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주현이 어떻게해서 이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 생각하면서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작 시점에 화자는 이미 '백년해로'라는 단편 소설을 발표한 후 입니다. 그 이야기는 화자가 말하기를 '나의 가장 깊은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화자가 썼다고 생각할수도 있는 이 '백년해로외전'이라는 소설은 곳곳에 화자의 가장 깊은 부분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면 전에 쓴 이야기(백년해로)는 약간은 피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다른 사람(타자)'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화자는 자신의 어떤 부분을 드러낼 수 없었다가 결국 그 부분을 보일 수 있게 변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그곳에는 '만남'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바닷마을 언니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결혼 이주 여성인 그녀는 결혼식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았고 수많은 하대를 받았을 것입니다. 소설가인 주현은 언니에 대해 여러 가지를 짐작해 냅니다. 소설에서는 바닷마을언니가 장훈을 만나는 시점까지도 서술되어 있어 독자로 하여금 바닷마을언니에 대한 더 많은 점을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결혼 이주 여성을 보면 '팔려왔다.' 혹은 그 결혼한 남성이 '무능력'하다고 선입견을 갖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우리들처럼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사춘기를 지나 성장했고 가족이 있고 할 줄 아는 것이 여러 가지 있으며 그들 역시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순간 애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닷마을 언니와 만나면서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되고 딸 수아를 만나게 됩니다.
수아 역시 언니를 많이 닮은, 한국에서 지내기에 쉽지 않은 삶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입니다. 외모적인 측면 때문에 언니는 '그렇게 생겼으면 영어라도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영어가 중요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수아와의 만남을 통해 현재 존재하고 있는 문제인 대학생들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화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수아는 처음 본 고모의 집에 약간 무람없이 놀러 오기도 하고 어른이 보기에는 살짝 제멋대로, 어떻게 보면은 자신감있게 행동합니다. 어린시절을 지나와, 고등학생인 지금의 수아가 되었을텐데 주현의 어린시절과 대비됩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후암동 할머니댁에 얹혀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주인공은 끝없이 자신을 검열하는 듯한 성격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있는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특이한 외모도 아니고 공부도 잘한 주인공이 더 모나지 않는 성격이 형성될 것 같은데 외모에서 바로 일차적인 편견이 있을 수 있는 수아의 성격이 오히려 훨씬 더 둥글고 편견 없어 보입니다. 그런 점이 잘 이해되지 않기도 하고 때로 자신이 가르치고 있던 학생들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수아를 통해서 주인공은 야엘또한 만나게 됩니다. 바닷마을 언니와 수아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반대로 야엘은 한국인의 외모로 프랑스에서 살아온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엘은 좋은 부모 밑으로 입양이 되었고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자식도 있는 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야엘은 오랫동안 자신의 동생인 장훈을 그리워 했고 (물론 장희도 그리워 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한 잘못때문에 자신과 동생이 입양보내졌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와서 그렇게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야엘이 발표하는 글을 보고 주인공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게 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야엘이 발표하는 글을 보게 만드는 그 모든 과정의 만남들이 주인공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야엘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조금씩 이야기 하고 마지막에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 같은 것도 주인공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주인공은 비로소 이 지점에서 야엘이 '가족'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야엘을 가족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관점에서의 가족과는 다릅니다. '피로 이어져 있으면 가족이다.'라는 점에서 야엘은 처음부터 장선이었지만 입양을 갔다는 점에서 가족이 아닙니다. 야엘을 생각할 때, 피로 이어져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는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장훈조차도 만나지 않습니다. 야엘은 아마도 주인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함께 공유한 사람으로써 새로운 가족.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현의 가족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진정한 가족이란 자신에게 정말로 의미있는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엘을 통해 변화하게 된 주현은 마지막 장면에서 수아를 만납니다. 그런데 수아를 대하고 생각하는 주인공을 보면 이전과 다르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딸과 같이, 혹은 정말 가까운 가족인 것처럼 수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 집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주현이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했던 '가족'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음을 그래서 '백년해로외전'이라는 자신이 드러나는 글을 적을 수 있게 되었음을 독자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독서를 통해 여러 가지를 사유하고 깨닫고 즐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안부를 물을 때만 ‘행복‘ 같은 관념적인 단어를 꺼낸다. 자기 삶은 그렇게 요약하지 못하면서.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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