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 문장의 왕국 조선을 풍미한 명문장을 찾아서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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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백승종 지음

 

지난 학기, <저널리즘글쓰기>라는 수업을 들었다. 첫 강의 때 교수님께서 흥미로운 설문조사 하나를 말씀해주셨다. 하버드대 졸업생 천여명에게 당신의 현재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90% 이상은 글쓰기라고 답했다.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라 묻는 비슷한 조사에서 가장 많은 대답은 놀랍게도 돈을 잘 벌거나 유명한 사람이 아닌 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는 사람이었. 하버드대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글쓰는 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였다.


12년 교육과정을 막 거치고 스무살을 갓 넘긴 나 역시도 글의 중요성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다. 자신이 이해한 바가 아무리 많더라도 이를 글로 매끄럽게 풀어내지 못하면 무소용임을 대학에 와서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말은 대강 누그려뜨릴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고 정교함과 완결성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문장을 지어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이를 다듬는 능력, 더 나아가 비판적으로 글을 읽는 능력까지 참 중요하다.


이번 신간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도 문장과 글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결코 실용적인 글쓰기 스킬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조선의 문장가들이 써 내려간 글의 자취를 그저 담담히 따라간다. 15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이색, 박팽년, 김종직, 이익, 박지원, 김정희, 김시습, 최한기 등 역사나 문학 교과서에서 여러 번 마주친 기라성들이 쓴 글에 대한 기록이다. 문장가의 문장을 통해 그들의 생애와 업적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 상황과 학문적 계보도 꿰뚫어볼 수 있다. 시대적 흐름과 맥락에 대한 충분한 설명 덕분이다.


역사를 보면 누군가는 한 장의 글로 출세를 하였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김종직은 조의제문을 씀으로써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책 이름부터 얼마나 웅장해지는가!

 

책 속에서 인상깊었던 문장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자가 되어 일찍이 천명을 안셈이지요. 불교를 공부했더니 육신도 잊었답니다. 도미원에서 고개 돌려 (서울을) 바라보니 삼각산(삼봉 정도전)이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같더군요

세상 이익이란 가을 터럭만큼 작지요. 우리의 사귐이 식은 죽의 거죽보다야 단단할 것입니다. 한번 사이가 틀어진 것쯤 무슨 문제겠어요. 백번 방향이 바뀌어도 강물은 끝내 동쪽으로 흐른답니다.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한 시대의 개막을 주도한 사상가다. 왕조 창업에 끼친 정도전의 공헌과 경세가로서 그의 역량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의 스승이었던 이익이 정도전에게 화해를 청하며 보낸 편지가 바로 이 글이다. 이익은 그러한 정도전이 괘씸한 제자처럼 느껴졌겠지만 이미 세상은 정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참 부드럽게 화해를 구한다.

 

실학자 이덕무가 우정에 관한 글도 참 인상깊게 느껴졌다.


성품만 따질 뿐 행동은 말마오. 우둔한 벼루도 날쌘 붓과 짝을짓네.

거공은 비록 사람이 아니라지만

감초를 주면 나누어 먹네.

어찌하여 청춘시절 친구라며

팔구십까지 우정을 지키지 못할까.

헤어지고 합치는 일, 한마디 말에 달려 있다오.

어려울손, 처음을 지켜서 끝가지 함께 가는 것.

차라리 본척만척 지낼망정

아서라, 겉으로만 친한 척 하려는가.

원하노니 이 말씀 자신의 허리띠에 써두시게.

한마음으로 끝까지 지키소서.


그의 뛰어난 문장력은 우정을 참 아름답게 표현한다. 처음의 그 한마음을 지키는 것이 우정이었고 그 우정은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 없는 친구의 도리였다. 비단 우정뿐만 아니라 사랑, 의리, , 효도와 같은 도리는 시대를 초월한다는 것을 숱한 문장가들의 글 속에서 느꼈다.

 

지금으로부터 몇백년전인 조선시대의 글을 많이 인용하다보니 고교 문학수업에서 고전시가와 한시를 배우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고리타분함을 상당히 비호하는 독자에겐 망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19세기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자 경험론자였던 최한기는 오래된 것이 반드시 나쁜것도 아니고 새것이라야 꼭 좋은 것도 아니다라 말한다. 옛사람과 오늘날의 우리가 서로 소통하여 협동하고 힘을 모아 새 지식에 도달한다고 한다. 뛰어난 학식을 갖춘 그는 신문물과 신학문에 대한 수용도 늦추지 않았을뿐더러 옛것에 대한 배움도 게으르지 않았다. 온고지신과 법고지신의 정신은 여러번 되새겨도 부족하지 않은 가치다.


한편, 20명이 넘는 조선의 문장가를 한 권에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도리어 문장가 각각에게 할당되는 양이 적다는 아쉬움도 주었다. 그렇지만 많은 문장가를 최대한 접하고 이중 자신과 마음맞는 문장가를 찾는 것으로도 충분한 성공이고 이에 대해 추가적인 독서와 학습을 이어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능동적 독서라 생각한다.


책을 읽다보니 문장가들 저마다 실력은 출중했지만 누구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타 자신의 소명을 다할 수 있었던 반면 누구는 시대에 의해 좌절을 맛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모든 문장가들의 업적을 기린다. ‘운 좋았던문장가나 비운의문장가와 같이, 수식어만 달라질 뿐이다. 천하의 수재이자 명문장가였던 허균은 자신 곁에 늘 좋은 친구 여럿이 있었으면 했다. 그는 진나라 시인 도연명, 당나라 시인 이태백,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과 자신까지 합하여 사우재기라 불렀다. 우리도 조선시대 문장가들이 남긴 문장과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 배경을 알게된다면 그들과 친구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닐 듯 싶다.

주옥같은 글이 탄생한 시대적 맥락(context) 속에서 그들의 문장(text)을 음미할 수 있는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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