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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빠리 - 예술의 흐름을 바꾼 열두 편의 전시
박재연 지음 / 현암사 / 2024년 5월
평점 :
선물 상자 같은 핑크빛 표지와 폰트는 책을 읽기도 전부터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주었다. 흔히 만나던 매끈한 표지가 아닌 따뜻함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폭닥한 질감도 참 좋았던 첫 만남.
나는 전시회를 선택할 때 도슨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볼 때는 모름지기 그 메시지와 감정을 나만의 해석으로 온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친구들의 주장에 늘 반기를 든다. 무슨 말이야. 작품의 시대상과 역할을 알아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이 사랑스러운 책 [모던 빠리]는 이런 나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했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도 쉽게 잘 읽혔던 이 책을 통해 전시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보수와 진보, 규범과 도전 사이에서 계속된 투쟁 속에서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과 모험정신, 그리고 야생의 자유로움을 발견하게 해준다. 아울러 고흐 굿즈, SNS 좋아요, 독립영화, 에펠탑, 광고, 귀인, 가을의 노래, 입체주의, 지분싸움, 다다이즘, 디자인, 오늘날의 전시. 저자가 챕터마다 쉽게 열어주시는 짧은 오프닝도 독자의 마음을 여는 데 한몫한다.
미술사 역시 다른 분야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권위와 규범에 도전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전위적 움직임들이 있었다. [모던 빠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파리에서 열렸던 12개의 주요 전시를 통해 이런 혁신과 반항의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박재연 교수님의 유려한 글솜씨로 엮인 화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장자가 그의 '제물론'에서 그려냈던 늑대만큼 자유로운 인간, 상벌로 길들기를 거부하는 인간상을 연상케 된다. 전통적으로 미술계의 작품 수준은 정부 주도의 살롱전시회 심사, 즉 'authority(권위)'를 통해 가늠되었다. 하지만 'authority'에는 'author(작가)'의 어원이 담겨 있어, 본래 작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심사에서 탈락한 예술가들 역시 선입견과 허영, 권위에 지배되지 않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상징하던 왕예처럼 기존의 권위에 반기를 들고 그들만의 길을 모색했다.
이들은 당시에는 낯설고 불편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힌 인상주의,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대표 화풍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이런 각 전시의 작품, 기획 의도, 정치 사회적 맥락, 평단의 반응, 예술계 영향력 등을 조명하며 새로운 예술의 탄생과 정착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또한, 전시가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새로운 예술적 흐름을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다. 현대의 전시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어떻게 관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현대 미술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예술이 단순한 미적 대상을 넘어 자유로운 정신과 사회를 향한 소통의 매개체임을 깨닫는다.
아름답고 세련된 책의 외양만큼이나 내용 또한 풍성하고 깊이 있어, 책을 덮으면서도 그 시절의 전시장을 거닌 듯한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