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 - 신약학자가 복원해 낸 메시아 예수 죽음의 비밀 북오븐 히스토리컬 픽션 1
애덤 윈 지음, 오현미 옮김 / 북오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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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
복음서는 각양각색의 시각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이 죽으시는 장면만큼은 네 권의 복음서가 일관적으로 보도하는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아할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비열한 정치모사꾼으로 알려진 빌라도는 왜 예수님에게 무죄를 선언했을까요?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헤롯당과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는 한 팀이 될 수 있었을까요? 또한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입성하던 무리들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으라고 외치던 무리들 사이의 온도차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온 백성에게 기대와 희망을 불어넣던 예수님이 죽었는데 왜 폭동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신약학자인 에덤 윈의 <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는 몰입감 넘치는 소설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의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설득력 있는 가설을 통해 그는 다양한 층위의 욕망들을 다룹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가진 욕망, 빌라도가 가진 욕망, 폭력적 반란을 꿈꾸던 이들의 욕망,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었던 대중의 욕망, 그리고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의 욕망과 가룟 유다의 욕망까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수난 네러티브는 철저히 복음서의 신학적 의도에 기초하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 본 책에서 들려주는 네러티브는 온갖 사람들의 욕망이 부딪히고 만나는 날 것의 정치현실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서로 거래하고, 배신하고, 협상하고, 속이는 인간군상의 흔한 정치현실의 모습들. 하지만 본 책이 주장하는 서사 속에 푹 빠져들다 보면 복음서의 수난 네러티브와 본 책의 네러티브가 도리어 서로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본 책은 복음서의 역사서술에 빠져있는 퍼즐을 완성하는 실제 조각을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각자 꿈을 꾸고, 서로를 이용하며, 때로는 적절히 배신하는, 분명 복음서의 수난 서사 기저에 있을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당대에 서로 충돌했던 강렬한 열망들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제사장들은 당시에 어떤 꿈을 꿨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어떤 꿈을 꿨을까요? 혁명가들은 어떤 꿈을 꿨으며 빌라도는 어떤 꿈을 꿨을까요? 이는 예수님에게만 집중된 구원서사 기저에 있는 당대의 배경들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 또한 공감하게 만들어줍니다. 모두 그럴듯한, 일을법한 일들이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몰입감 자체가 뛰어난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소설입니다. 당대의 역사문화적 정보를 제공하는데 과하게 에너지를 쏟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편의 잘 구성된 영화처럼 각기 다른 인간군상들의 장면들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서로의 욕망들이 어떻게 갈등을 일으키고, 또한 어떻게 만나서 창조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과정 자체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잘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이는 근래 번역출간되고 있는 다양한 1세기 그리스도교 역사 소설들과 가지는 차별점이기도 합니다. 일주일 시리즈(<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 <에베소에서 보낸 일주일>, <예루살렘 함락 후 일주일>)는 당대의 역사적 문화적 지평을 소개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이야기 뵈뵈>의 경우는 당대의 신학적 지평을 소개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다면, 본 책은 말 그대로 수난서사들 기저에 말하지 않는 의문적 요소를 해결하는데 '그럴듯한 서사'를 전달하는데 전력합니다. 부제가 말하듯이 말입니다. “신약학자가 복원해 낸 메시아 예수 죽음의 비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는 말은 명료하며 적실한 말인 동시에 너무나 많은 말들이 함축된 말입니다. 복음서의 수난서사 또한 신학적으로 명징한 의도가 담긴 네러티브지만 또한 당대에 있을법한 정치현실의 갈등이 함축된 서사입니다. 에덤 윈은 본 책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뒤편에 그럴듯한,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이는 십자가 수난 서사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는 동시에 당시에 파급력을 가져왔던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죽으셨을까요? 무엇을 위하여 죽으셨을까요? 이에 대한 신학적 해답은 이미 성경에서 충분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는 당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신약학자가 담대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나간 서사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십자가 사건에 대한 ‘담대한 상상력’은 도리어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성경의 ‘신학적 의미’를 더욱 깊고 넓게 확대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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