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카 만화 백과 9 : 조선 후기의 변동 히스토리카 만화 백과 9
봄봄 스토리 지음, 이준희 그림, 노인환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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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님이 추천하는 초등 한국사의 첫 시작 히스토리카 만화 백과

 

 

 

두 번의 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조선 후기,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굳건한 백성들의 힘!
급격히 변한 조선 후기의 역사와 조선의 아름다운 문화 예술을 담고 있어요.

 

 

히스토리아 만화 백과는 교과 연계 도서로 초등 사회 교과서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민속촌에 여름방학 숙제를 하러 가요.
그곳에서 조선 후기의 성서가 담겨있는 탈놀이 공연을 보고, 공연을 이끄는 패의 대장 말뚝이와 함게 조서 후기 시간 여행을 떠나요~^^

 

 

조선 후기에는 조정에서 같은 의견을 가진 신하끼리 당파를 이루어 서로 대립하는 붕당정치가 등장해요.
예송 논쟁과 환국을 거치면서 치열하게 다투로 이로 인해 조선은 변화를 겪게 돼요.

 

 

조선은 유교 중심의 나라였고 유교에서 예절을 중요시함. 그중 관혼상제는 네 가지 예법을 매우 주요하게 여기고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어른이 되고 결혼도 하며 시간이 지나면 죽게 됩니다.
조선은 유교 중심의 나라여서 예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네 가지 예법으로 정해 놓았는데 이를 관혼상제라고 해요.

지금은 효종이 죽은 후 효종의 새어머니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을지 정하는 상황에
아들(3년)과 작은 아들(1년)이 상복을 입는 기간이 달랐어요.

조선의 조정에서도 서인과 남인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갈렸고
막 왕위에 오른 현종은 정치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서인의 세력이 커서 서인의 손을 들어줬어요.

 

 

 

그렇다고 여기서 예송 논쟁이 끝난 게 아니었어요.
예송논쟁은 현종 때 두 번 일어나요.  효종을 맏아들로 대우할지 말지에 따라 사 상복 기간이 다라졌고
논쟁의 좁은 의미로 유교 이념을 둘러싼 갈등이지만 서인과 남인의 권력 싸움이라고 볼 수 있었어요.

 

 

이후 숙종이 일으킨 세 번의 환국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인현 황후와 장희빈 그리고 숙종의 관계에서 나타나요.
인현 황후와 장희빈을 각가 서인과 남인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숙종은 이들을 이용해서 붕당의 힘이 지나치게 세지는 것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으려고 했어요.
권력의 중심을 잡으려고 서인의 세력이 강해지면 인현 황후를 멀리해서 서인을 몰아내어 남인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러다 남인의 세력이 강해지면 장희빈을 멀리해서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에게 다시 힘을 실어줘요.
이런 식으로 지배 세력이 교체되는 상황을 환국이라고 하고, 숙종이 왕으로 즉위한 기간 동한 총 3번의 환국이 있었어요.

 

 

 

계속된 당쟁의 폐해를 경험한 영조와 정조는 당쟁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탕평 정치를 펼쳤습니다.
영조는 왕이 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고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과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 간의 당쟁이 매우 뜨거워 영종이 왕이 된 후에도 당쟁의 영향으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붕당의 폐단을 막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탕평책을 실시했어요.
왕권을 강화하고 탕평의 정신을 담은 비석인 탕평비를 세우기도 했어요.

 

 

 

영조는 직접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했어요. 당시 조선에서는 천민을 제외한 16~60세 남자들은 군대에 가야 했어요.
군대를 가면 생업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은 세금으로 대신해 옷감 두 필을 냈고 군포를 해요.
이때 양반들은 의무에서 면제되고 백성의 부담은 커갔지요.
그래서 왕은 옷감 두필에서 한필로 줄였지만 효과는 얻지 못했어요.

이후 영조는 늦은 나이 아들이 태어나고 어릴 적부터 총명해 영조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커갈수록 학문보다 무예에 관심을 보였고
결국 영조의 미움을 받기 시작 세손에게 총애가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뒤늦게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후해하고 애도한다는 뜻으로 '사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정조의 탕평과 개혁 정치기 시작되고
사도 세자의 아들이 즉위를 하고 일직이 아버지의 비극을 본 정조는 할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어.
자신을 도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기 위해 1776년 규장각을 설치했어요.

정조는 영조처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탕평책을 추진했어요. 그리고 민생을 안정시켜 다양한 문화도 꽃피웠지요.

 

 

 

정도도 영조의 뒤를 이어 탕평책을 실시했는데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어요.
또한 정조는 왕을 호위하는 친위 부대 장용영을 설치해서 왕권을 뒷받침했고 정조는 강한 왕권을 기반으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시작했고
정조도 영조처럼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고 해요.

정조의 꿈, 수원화성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으로 옮기고 이후 정조는 자주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어.
이에 주민들의 거쳐도 없어졌으니 근처에 새로운 도시 건설을 결심해요.
화성은 1794년에 시작해서 2년 만에 수원 화성이 완성되고 화성을 짓는 모든 과정을 기록하라 명하고 이를≪화성성역의궤≫라고 해요.
이렇게 화성은 정약용의 발명품과 백성들의 노력으로 완성되었어요.

이후 정조는 계속해서 화성 중심으로 상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키고 도시 활성화시키고자 했어요.

 

 

 

정조가 죽고 난후 60년간 조선에는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신분제가 흔들리며 곳곳에서 농민의 봉기까지 얼어났어요.
왕의 권력이 외척 가문에 넘어가는 세도 정치가 오랫동안 이어진 탓이지요.

 

 

이후 조선 후기 종교의 유행
조선 후기에는 많은 신앙이 유행했고 신앙에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견디기 위한 백성들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 후기 두 번의 전쟁을 겪은 조선은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해갔고
여성의 신분은 전보다 낮아져 부자 농민과 부자 상인이 생겼으며 족보를 파는 양반들도 생겨났습니다.

 

 

 

이후 조선 후기 문화예술로 화가와 풍속화, 한글 소설이 유행했어요.
판소리 탈춤은 조선 후기 서민들의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답니다.

초등 한국사 학습만화 히스토리카 만화백과로 조선 후기까지 알 수 있었는데요
이후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이야기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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