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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평점 :
<디디의 우산>을 읽기전에 나는 우연히 세운상가에 들를 일이 있었다. 변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실제로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고,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은 이상 나의 삶과 점접이 없고, 또 없을 장소였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세운상가를 방문하게 되었고, <디디의 우산>의 배경 역시도 마찬가지로 세운상가였다는 책을 펼치며 알게 되었다.
세운상가 위에 새로 지어진 전망대에서 종로를 내려다보면,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 구나 하는 낯선 질감을 느끼게 된다. 저 작은 집에, 저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누군가 나와 같은 영화나 티비 예능을 보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꼭 낯선이의 장례식 장을 스쳐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않는" 삶을 영유하고 있을 뿐인가. 그리고 죽어버리는 것인가. 하는 황망한 기분도 든다.
황정은의 소설을 읽으면 비린내가 난다. 언제 시공이 되었는지도 모르는 낡은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을 걷다보면 맨홀에서 세어나오는 그런 역한 비린내가 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애써 삶의 프레임에서 밀어내고 싶은 장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조명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탐미적으로 포커스 안에 넣고 싶은 삶의 아름다운 프레임 안에 우리 세계의 그림자들을 은근슬쩍 밀어넣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에 소음과 불편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때문에 마치 인스타그램의 사진보정을 받듯 과거를 미화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잘못을 축소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2014년 대한민국 사람들은 비극을 공유했고, 돌이키거나 보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각인하게 되었다. 코끼리를 잊어버리고자 마음을 먹으면 코끼리를 더욱 더 선명하게 떠올리게 되듯, 오점을 지우고자 하면 상처가 되었고 그것은 결국 커다란 흉터를 남기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모르고 살아도 좋았을 이 커다란 세계에서, 비극을 통해 서로를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 d와 dd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마치 d는 혼자서 손을 들고 서있는 사람 같고, dd는 두 사람이 손을 들고 서있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d가, 혹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편의와 편리, 혹은 사회 정의와 자본 속에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상실해버렸다. 서로의 이야기에 무관심하고, 누군가의 비극은 불편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디디의 우산>은 그 일말의 감각을 비오는 날 작은 우산처럼 독자의 프레임 안으로 밀어넣는다.
작중 소재로 나오는 턴테이블과 각종 음향기기들은 독립적으로 소리낼 수 없는 장치들이다. 유일하게 독립적인 소리를 내는 CDP는 10만원짜리 싸구려로 등장하며, 그닥 소리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그것을 훔쳐가보린 노인은 아마 죽음을 코앞에 둔 무기력한 자신에게 스스로 "난 혼자서도 살 수 있다는" 거짓말을 되내이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어찌되었건 <디디의 우산>은 이 특수한 음향기기들을 통해, 사람들은 독립적이지만, 결국엔 "케이블"로 연결되어야만 "화음"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아 이 얼마나 상투적인 아름다움인가 나는 생각한다. 마치 작중에 등장하는 앨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탠더 노래처럼 소름이 돋을 만큼 간지러운 말이지만, 나는 이 낡고 촌스러운 이 "노래"를 동경한다. 왜냐하면 이 촌티나는 말이 2014년과 2016년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한 송가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치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에서 그림자가 일어나듯,
이 책에서 일어서고 있는 것은 그런 "타인의 질감"이라 나는 생각한다. 공동체 의식이나, 전체주의 같은 범주로 묶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은 때론 공포이자 혐오스러운 존재지만, 때론 우리의 "낭독자"이자 "책"이자 "화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 "시스템"이 아닌 "사람"과 같이 살아가다. 죽어버리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 사람. 참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내일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문구처럼 매일 "죽음으로부터 집으로 돌아온"다 라고 생각해보자.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안심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삶다워지는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디디의 우산>이 다같이 함께 잘 살면 행복할 거라는, 뜬구름 잡는 교조적인 이야기를 설파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비록 망하지는 않을 지언정, "내내 이어질 것이다.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선 "정류"와 "증폭"이 필요하듯, 우리는 모였다가 또 크게 움직이고 살아야하는 것이다. d는 우리가 어딘가를 떠나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 다만 되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돌아갈 무렵에" 비가 내린다면 "우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아직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나역시 <디디의 우산>을 작은 우산처럼 밀어넣어보겠다.
나와 같은 "뜨거운" 질감이 깃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