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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불을 지고
김혜빈 지음 / 사계절 / 2025년 5월
평점 :
이 소설은 인쇄소에서 시작된 불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주인공인 호연은 화재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 채 흩뿌려진 단서들을 쫓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실 작가는 진실을 찾는 것 보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발밑에 타고 있는 불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작가가 자기 안의 말을 홀린 듯이 쏟아내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어두운 내면, 잊혀지지 않기 위한 집착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만큼 읽으면서 점점 침잠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계속해서 곱씹어 보게 되는 책이었다.
" 사람들은 뻔한 이야기를 보고도 새삼 깨달은 척을 해. 그런데 실은 그 사람들도 알고 있거든 현실에서는 이야기 속 사건보다 훨씬 끔찍한 일이 이미 몇번이나 일어났다는 걸. 코앞에서 넘실거리는 불길은 무심히 넘기다가 유명한 작가나 감독이 내놓은 작품을 보고서 새삼 감탄하다니 웃기지 않아?
(중략)
코앞의 불길이 꼼짝도 하지 못할만큼 세서 그렇다고, 뜨거운 열기가 숨통을 죄어서라고. 누군가가 불길을 제어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불씨를 놓는 인간이 있어서라고. 반복된 불길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피부가 쪼그라드는 것도 잊고, 스크린 속 상들을 멍하니 눈으로 좇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맞으면 맞을수록 아픔을 마주하기 어려워지는 법이니까. 넋을 빼놓지 않으면 지긋지긋한 불길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