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발한다 - 드레퓌스사건과 집단히스테리
니홀라스 할라스 지음, 황의방 옮김 / 한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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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언론은 거짓을 보도하면서까지 드레퓌스를 끌어내렸고, 시민들은 드레퓌스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에 편승했다. 우리는 여기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견자들을 침묵시킨 것은 대중지들이었다. 대중지들은 사람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그들의 물질적 · 정신적 지위를 파괴했고 그런 것을 경멸받도록 했다.” 

231쪽.


현재 우리의 언론은 어떤가. 귀족과 공무원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드레퓌스의 처형을 주장하고 거리낌 없이 반유대주의적 논조를 펼친 ‘라 리브르 파롤’과 같은 언론은 여전히 남아있다.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1면에 기재했던 ‘로로르’지 같은 언론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이를 위한 첫 단계는 정부와 언론에 비판적인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불과 한 세기 만에 저버린 프랑스의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졸라가 유죄 판결을 받고, 드레퓌스를 위해 싸운 피카르 중령이 강제로 전역당하자 프랑스는 환호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런 프랑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프랑스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었다. 이 나라의 도덕적 타락은, 프랑스가 오랜 세월 서구 문명의 전위였던 까닭에 그 문명 전체의 불길한 전조처럼 보였다.”

288쪽.


드레퓌스가 유죄를 선고받은 지 12년 뒤인 1906년에 그의 무죄는 세상에 밝혀졌지만, 불길하다는 전조는 정확했다. 4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치 장교이자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이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저질렀다. 그는 재판에서 “명령에 따른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드레퓌스 사건 재심 당시에 문서를 조작하여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몰았던 앙리 소령이 재판에서 남긴 말과 같다.


“조국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318쪽.


우리나라에서도 국가 폭력의 사례는 비교적 최근까지 존재했다.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민주화 속에서도 국가가 정당하지 않은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OECD는 우리나라를 ‘불완전 민주주의’ 체제의 나라로 분류하였다. 민주주의 지수는 2020년 기준 37개의 회원국 중에서 23등이다. 선정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낮은 ‘정치참여율’이었다. 우리는 정치에 더욱 관심을 두어 드레퓌스 사건에 나타났던 ‘집단 히스테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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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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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특이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 문화 차이가 단순히 우리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보단 틀린 것이라고 보며 그 문화의 도덕성 여부를 따져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미개한 문화로 간주하고 그들의 삶을 배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흔히 문명사회 속에 살며 문화인을 자칭하는 우리가 원시인 문화를 비도덕적이고 미개한 문화로 여기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원시 부족 중 콰키우틀족이라는 부족이 있는데, 이 부족 안에서 추장이 가진 식량이나 귀중품을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포틀래치라는 문화가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지만 저자 마빈 해리스는 콰키우틀족의 포틀래치가 경제적·생태학적 조건들 때문에 생긴 결과임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이와 같이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문화양식을 인류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방법으로 파헤쳐 나가려 시도한다. 그리고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추측을 비판함과 동시에 더욱 문명화된 이 사회가 그들보다 더 우월한 문화를 가졌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한다.

 

책의 중간부터는 평화의 왕자예수에 관한 이야기와 15세기 이후 유럽에서 교회의 권위를 다지기 위해 벌어졌던 마녀사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예수가 처음에는 평화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펼치며 예수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와 함께 복음의 모순성이 있다고 지적한 부분을 근거로 제시한다.

 

예수는 우리가 보통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평화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실제 가르쳤던 것들은 유대인의 전투적 메시아니즘의 전통과 근본적으로 단절되지 않는다.”

-239-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6유령화물에서 시작한다. 뉴기니 등의 지역엔 서양인들이 가져온 화물이 사실 원주민의 조상들이 내려준 선물이라 여기는 화물숭배의 풍습이 있다. 선교사들은 그 점을 이용하여 화물의 비밀을 알고 싶으면 일하라고 하며 원주민들을 착취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원주민들은 선교사의 이중성에 분노하고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9빗자루와 악마연회부터 마지막 챕터인 11마녀의 복귀에는 중세 유럽에서 유행한 마녀사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7장부터 11장까지의 챕터는 쭉 연결된다. 예수와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가 마녀사냥까지 쭉 이어지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16세기와 17세기 마녀사냥이 널리 일반화된 까닭을 밝히고자 했다.

 

마녀광의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에게 전가시켰다는 데 있다. 이 괴물의 환상적인 행위 때문에 고통받고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308-

 

마녀사냥 과정을 살펴보면, 이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제국주의 시대 유럽 각지의 여러 독재자가 사용한 방식과 상당히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도층의 잘못이나 부패로부터 파생된 내부의 문제를 덮기 위해 국가를 하나로 단결시킬 만한 외부 요인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외부로 향하게 되어 내부 문제는 잊혀진다. 지난 서포터즈 활동 때 읽은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저자 다니엘 벨은 외부의 위협을 분명하게 규정할 수 있는 곳에서 그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를 동원하는 작업은 그 나라를 통일시킨다.”라고 하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의 무지에 의해 자행되어 온 다른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비판한다. 저자는 우리가 다른 문화에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된 원인으로 그 문화가 왜 그런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신밖에 모른다라며 둘러댔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현대는 이전과 다르게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배움의 기회도 늘어나면서 새롭게 얻는 것이 많아졌다. 우리는 과학적인 객관성과 올바른 인식의 형성으로 미래에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무지, 공포, 갈등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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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한길그레이트북스 173
다니엘 벨 지음, 박형신 옮김 / 한길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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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는 경제에서는 급진적이지만, 도덕과 문화적 취향에서는 보수적이 되었다. 부르주아의 경제적 충동은 그 에너지를 재화 생산에 돌리고 본능, 자발성, 변덕스러운 충동을 우려하는, 노동에 대한 일단의 태도를 형성하는 등 매우 제한적인 성격구조로 조직화되었다.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청도교주의 속에서 무절제한 행동을 제약하는 법이 통과되었지만, 회화와 문학에서 부르주아의 취향은 영웅적인 것과 진부한 것으로 치달았다. 따라서 문화적 충동은 부르주아적 가치에 대한 격분으로 바뀌었다.”

 

절제를 미덕으로 보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새로운 구속의 시작을 뜻했다. 생산의 목적은 공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이 되었고, 재화 획득의 동기는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 되었다.

 

사치품은 필수품으로 재정의되었고 부채에 대한 공포도 깨졌다. 이제 문화는 어떻게 일하고 성취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소비하고 즐기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제 중요해진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였다

 

금지된 충돌을 충족시키는 것이 전통적으로 죄의식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즐겁지 못하다는 것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 욕망은 만족 될 수 없었다. 즉 해방은 새로운 구속을 낳은 것이다. 재화의 풍부함이 경쟁, 시기심, 사악함 같은 갈등을 해소할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은 빗나가며 자원문제와 별도로 우리는 결코 결핍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침묵의 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것은 소음의 시대였다.

 

이 책은 자본주의 경제의 명암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그 근본과 질서에 대한 시야를 넓혀줬던 책이다. 1976년에 나온 책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현재의 사회·경제의 문제라 여겨지는 토픽들에 대해서까지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벨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은 편이다. 일부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벨의 사회학적 사유와 치밀한 모순 분석의 묘미, 그리고 그의 사회학적 열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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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억 - 철학자 김진영의 아포리즘
김진영 지음 / 한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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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억>은 제목 그대로 저자 김진영이 사랑했던 기억을 아포리즘의 형식으로 남겼던 글들이 담긴 책이다. 떠나간 아우와 독일 유학 중 만난 C 그리고 일상에서 사랑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어떤 글은 열 글자 남짓으로만 구성되어 단 몇 초 안에 김진영이 사랑했던 감정을 피부에 와 닿게 한다. 그 표현들이 밝아 보일지라도 나는 반대로 어둡게 보였다. 글을 읽으며 김진영이라는 사람을 '사랑을 기억하는 쓸쓸한 사람'이라는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인듯하다. 또 어떤 글은 두 페이지 이상을 차지하여 김진영의 마음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이 좋았다. 열 글자 남짓의 짧은 글로만 책이 구성되었다면, 단조롭다고 느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엔 2018년 세상을 떠난 김진영의 아내 김주영이 남편을 기억하며 쓴 글이 적혀있다. 김진영이 추석에 마당의 붉은 대추를 볼 때마다 그 대추를 따던 동생을 떠올린 것 처럼, 김진영의 아내 역시 김진영이 쓰던 방과 책장을 보고 김진영의 모습을 떠올린다. 김진영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꼈다고 했을 때의 감정을 그의 아내 김주영도 공감한 것이다. 그렇게 출간된 책이 바로 <사랑의 기억>이다.

철학자 김진영의 사랑에 대한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가진 아포리즘을 느끼고 싶다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슬픔을 세련되게 승화하여 표현한 글을 읽고 싶다면 김진영의 <사랑의 기억>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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