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하지 않는 희망
테리 이글턴 지음, 김성균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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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하지 않는 희망 Hope Without Optimism』테리 이글턴 Terry Eagleton”을 읽고


  나는 평소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성향일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아, 나의 그러한 성향은 더 강화된 것 같다. 세상에는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요가 있다. 나 또한 타인에게 별 고민 없이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충고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긍정적이라는 강요가 사람들에게 불만을 표출하지 말고 이 체제에 순종하여 살아가라는 이데올로기와 연결된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다.

 

  긍정적인 사고는 분명 힘든 삶을 견디어내는 데,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꼈는데, 체제에 순종을 강요하는 긍정 이데올로기와는 어떻게 구분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긴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평소 이러한 의문을 품다, 이 책을 만났다.

 

  테리 이글턴은 낙관주의와 희망을 구분한다. 낙관주의는 기질상의 성품으로, 희망은 의지의 문제로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북한과 미국에서 낙관주의는 국가이념과 거의 동일하며, 부정적 태도는 사상 범죄로 분류된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강요되다시피 하는 “내가 하고픈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최면용 문구는 유사-병리적 공포 심리라고 분석한다. 낙관주의자는 절망할 수 없지만 진정한 희망을 알지도 못한다.

 

  욕망과 희망도 다르다. 욕망은 특정한 대상을 바라는 반면, 희망의 목표는 대체로 어떤 상황이다. 희망은 욕망과 예상을 겸비한다.

 

  희망은 현재의 시각에서 봤을 때 허무맹랑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희망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고, 현재의 언어로 미래를 정확하게 구체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가 현재가 되었다 과거가 되었을 때에야,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헤겔은 이를 늦저녁에야 날갯짓을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로 표현했다. 아인슈타인도 처음부터 부조리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고, 테리 이글턴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타르타쿠스] 영화 한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해적은 반란노예 지도자 스파르타쿠스에게 ‘당신의 반란은 아무래도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라고 묻는다. 그의 답변대로라면, 노예들의 항쟁은 노예들의 처지를 개선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유를 대의명분으로 삼는 원칙대로 절조를 지키는 반란이기도 하므로 설령 그들이 몰살할지언정 그들의 반란은 헛되이 수포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들의 반란은 해방투쟁에 무조건 헌신한 그들의 의지를 명백히 표현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논평대로라면, “그들의 반란행위 자체는, 행위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개시되었으므로 성공한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현재의 실패가 어떤 의미에서는 꼭 필요한 실패일 수도 있다.

 

  테리 이글턴은 정치적 좌파이다.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니 70이 넘는 나이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나보다.

 

  긍정 아니면 부정, 낙관 아니면 비관, 희망 아니면 절망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시각이 필요하다. 그것이 테리 이글턴이 말하는 낙관하지 않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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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좋지만, 번역이 친절하지 않아 별 2개를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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