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상투성. 평범성이 아니라.
크고 높고 멀다. 장자의 서두처럼. 거대한 물고기가 거대한 새가 되어 높이 날아 아주 멀리 보며 가려 한다. 아찔한 스케일에 빨려들어간다. 다만 참새가 봉황의 뜻을 모르듯 봉황은 참새의 세계를 모른다. 풀잎 위의 벌레 유충 따위에 대한 실감이 없다. 봉황은 속세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던가?
이 책과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을 동시에 읽었다. 둘 다 현대 중국이 중심에 놓인 책인데 시선이 달라서 흥미롭다. 같은 지점에 서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애초에 아예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비유하자면 높이 날며 멀리 보는 새와 바닥으로 내려와 풀잎 위의 벌레 유충까지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새의 차이. 위화는 후자 쪽이다. 그 결과로 두 사람의 중국은 다른 나라 같다.위화의 중국은 웃기면서 슬픈 부조리극 같은 생물이다. 사유보다 감각에 먼저 달라붙는 끈적함 같은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