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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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 육신을 떠난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중간계에 머물면서 49일 동안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심판>에서 주인공 아나톨은 죽음 이후에 재판을 통해 지난 생에 대해 심판을 받고 천국에 머무르거나 혹은 환생이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이 책은 베르베르의 <인간>에 이어 다시 한번 희곡 형식으로 쓰인 작품이다. 하지만 형식과 무관하게 소설처럼 자연스럽게 읽힌다. 주인공이자 피고인인 아나톨 피숑은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아나톨의 수호천사이자 변호인인 카롤린, 검사 베르트랑, 재판장 가브리엘 총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베르베르가 전작에서도 다루었던 주제인 죽음, 전생, 환생과 같은 무거운 상황은 캐릭터들의 황당한 역할 설정으로 헛웃음을 자아낸다. 아나톨은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지식인이지만 하루 세 갑의 담배를 피웠고 그 결과 폐암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멘톨, 이중필터라는 단어를 말하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카롤린과 베르트랑은 전생에 부부였다. 이혼의 앙금으로 천상에서도 말다툼을 하며 서로를 원망한다.


피숑은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고 틀에 박힌 삶을 선택했다는 죄명으로 환생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이 책에서 인간의 생애는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의지 50퍼센트로 결정된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부모, 직업, 강점과 핸디캡, 운명의 인연까지 모두 결정된 상태에서 환생을 한다. 과연 아나톨은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정말로 그는 환생을 하였을까? 마지막에 재미있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아나톨 피숑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제도적인 모순과 사회적인 부조리를 위트있게 묘사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보여주는 피숑의 성숙해지는 모습이 유쾌하다. 베르베르 특유의 언어적 유희와 풍부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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