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의 일족 1 세미콜론 코믹스
하기오 모토 지음, 정은서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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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오 모토가 들려주는 아름답고도 서늘한 이야기가

소녀 감성을 일깨우다

 

 

전 3권 가운데 이제 겨우 첫 권을 읽었을 뿐인데,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마냥 안타깝고 서글픈 기분이 들어서 책장을 덮은 뒤로도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한참을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저 멍하니 희뿌연 안개와도 같은 여운에 젖어 아련하고 처연한 꿈,

시간의 곁을 스치는 영원의 마차바퀴를 따라 하염없이 되풀이되는 환상 속에 가라앉아

내 마음이, 내 정신이, 내 지각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까지는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포의 일족>은 뱀파네라, 흔히 뱀파이어라 부르는 흡혈 일족의 이야기다.

붉은 피와 피처럼 진한 장미 에센스만을 먹고 살며

영겁의 시간을 살아가는 그들은

숨도 쉬지 않고, 맥도 뛰지 않으며, 거울에 비치지도 않는다.

시간의 영역에서 비껴나 있기에

영생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허상과도 같은 세상을 떠도는 그들을

사람들은 ‘뱀파네라’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포의 일족’이라고 부른다.

허상에 가까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물의 취급을 받지만

결코 허투루 고개 숙이는 법 없는 그들의 자존감과

동시에 그들을 단순한 괴물로 만들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실 <포의 일족>은 그 작명 - 에드거, 앨런, 포 - 에서 알 수 있듯

어딘지 음울하고 제법 괴기스럽지만,

치명적인 매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미국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과 닮아 있다.

고독하고 냉소적이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가

아련하고도 애틋하게 마음을, 오래전에 잊고 있던 소녀 감성을 톡톡

건드린다.

 

이래서 고전은 고전인가 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한참 옛날 스타일 작화와 뜨뜻미지근한 관계가 참 감질날 만도 한데

<포의 일족>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은 정말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 미묘한 어긋남,

간절해서 더욱 아슬아슬한 감정의 선이 더없이 애달프고 섬세해서

더욱더 천천히 여러 번 곱씹으며 음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현실의 관계와 같아서 한층 마음을 헤집었다.

제삼자가 보면 너무나도 선명한 그 마음이,

그 애절한 마음의 소리가,

대체 어째서 그 자신들만 모를까.

 

아직 1권밖에 보지 못해서 작품 전체를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으나,

1권만 보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다.

고전은 고전인 이유가 있다.

 

비록 하나의 플롯으로 진행되지 않고,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에피소드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라

사건과 사건이 유기적으로 엮이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템포, 한 템포, 숨을 고르며

아름답고 서늘한 이야기 속 아스라한 낭만에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혹적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원작 소설이

<포의 일족>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고 지적하는데

확실히 그 부분은 나 역시 동감.

표절은 아니겠지마는 적어도 원작자가 <포의 일족>을 보고

영감을 얻었거나 어느 정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원래 창작의 세계란,

기존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으며 창작 동력을 얻는 것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이처럼 누군가에게 강한 영감을 주고 큰 영향을 미쳐서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원형으로서의 작품이, 심지어 만화가!

일본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 나는 마냥 부럽고 샘날 뿐이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라고 꿈꾸며

 

일단은 <포의 일족> 완간을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세미콜론 출판사에 드리는 말씀.

<포의 일족> 다음 권, 빨리 내 주세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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