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세계여행은 '부자가 된 뒤 그 언젠가'로 미뤄두었다. 세계여행이라니 막막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더더욱 꿈도 꾸지 못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이라니. 아마 비행기도 못 탈텐데.
가까운 해외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지인처럼 골목을 쏘다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남편은 휴양지 풀빌라에서 느긋이 여유를 만끽하는 여행을 원한다. 이렇게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니, 어느날 갑자기 "그래, 가자!"라는 의기투합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맘속에 '그 언젠가의 여행'도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 가는걸로 정해져 있었다.
근데 그랬더니 기약이 없었다. 부자는 언제 될지 모르겠고-_-ㅋ 애엄마가 남편/애들 버리고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건 사치인것 같았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해야했는데, 그럴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막막했고, 걱정이 앞섰다.
애들 아프면 어떡해.
소매치기 당하면 어떡해.
돈도 많이 들거야.
완전 힘들 것 같아.
집 떠나면 고생이지.
...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겨울방학 두 달 동안 네 식구가 함께한 지구 여행. 1894만원으로 13개국 21개 도시라니. 저자는 1년동안 알뜰살뜰 2000만원을 모았고, 정말 꼼꼼하게 여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진짜로 해냈다. 중간중간 힘든 때도 있었지만, 네 식구의 버킷리스트를 모두 완수했고, 아이들은 훌쩍 컸다.
책은 저자가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경비를 모으는 과정부터 차근차근 되짚어간다. 루트를 짜고- 항공권을 검색하고- 숙소를 선택하고- 여행에 필요한 각종 준비를 하는데, 그 과정을 아주 꼼꼼히 기술했다. 읽다보니.. 그동안 잊고있었던 12년전 유럽 여행이 스물스물 떠올라 갑자기 맘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베이징부터 시작. 한겨울에 아이들과 여행, 괜찮을까. 겨울엔 챙겨야할 짐도 많고 부피도 커질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여행을 쭉 따라가본다. 중국 - 그리스 - 터키 - 이탈리아 - 체코 - 스페인 - 모로코 - 프랑스 - 영국 - 미국- 대만 - 그리고 한국.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별 탈없이 잘 따라다녔고, 아빠도 엄마도 훌륭하게 낯선곳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해냈다.
10여년전 내가 유럽여행을 준비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기에 그때와는 여행과정이 아예 달랐다. 종이지도 대신 구글지도가 있었고, 맛집검색, 숙소찾기 모두 앱으로 가능했다. 미리 준비할 필요 없이 여행지에 가서 스르륵 검색하면 되다니- 이거슨 신세계. 나의 여행은 10년전에 멈춰있구나 싶어 급 우울해졌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