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의 지구 여행 - 아이들과 떠나는 최소 비용 세계 여행 프로젝트
곽명숙 지음 / 아라크네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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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테지만,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세계여행'이 들어있다.

언젠가 '부자가 되면'

꼭 세계여행을 할거야.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는

한달동안 현지민처럼 살아야지!"

그렇게 세계여행은 '부자가 된 뒤 그 언젠가'로 미뤄두었다. 세계여행이라니 막막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더더욱 꿈도 꾸지 못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이라니. 아마 비행기도 못 탈텐데.

가까운 해외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지인처럼 골목을 쏘다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남편은 휴양지 풀빌라에서 느긋이 여유를 만끽하는 여행을 원한다. 이렇게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니, 어느날 갑자기 "그래, 가자!"라는 의기투합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맘속에 '그 언젠가의 여행'도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 가는걸로 정해져 있었다.

근데 그랬더니 기약이 없었다. 부자는 언제 될지 모르겠고-_-ㅋ 애엄마가 남편/애들 버리고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건 사치인것 같았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해야했는데, 그럴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막막했고, 걱정이 앞섰다.

애들 아프면 어떡해.

소매치기 당하면 어떡해.

돈도 많이 들거야.

완전 힘들 것 같아.

집 떠나면 고생이지.

...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겨울방학 두 달 동안 네 식구가 함께한 지구 여행. 1894만원으로 13개국 21개 도시라니. 저자는 1년동안 알뜰살뜰 2000만원을 모았고, 정말 꼼꼼하게 여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진짜로 해냈다. 중간중간 힘든 때도 있었지만, 네 식구의 버킷리스트를 모두 완수했고, 아이들은 훌쩍 컸다.

책은 저자가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경비를 모으는 과정부터 차근차근 되짚어간다. 루트를 짜고- 항공권을 검색하고- 숙소를 선택하고- 여행에 필요한 각종 준비를 하는데, 그 과정을 아주 꼼꼼히 기술했다. 읽다보니.. 그동안 잊고있었던 12년전 유럽 여행이 스물스물 떠올라 갑자기 맘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베이징부터 시작. 한겨울에 아이들과 여행, 괜찮을까. 겨울엔 챙겨야할 짐도 많고 부피도 커질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여행을 쭉 따라가본다. 중국 - 그리스 - 터키 - 이탈리아 - 체코 - 스페인 - 모로코 - 프랑스 - 영국 - 미국- 대만 - 그리고 한국.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별 탈없이 잘 따라다녔고, 아빠도 엄마도 훌륭하게 낯선곳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해냈다.

10여년전 내가 유럽여행을 준비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기에 그때와는 여행과정이 아예 달랐다. 종이지도 대신 구글지도가 있었고, 맛집검색, 숙소찾기 모두 앱으로 가능했다. 미리 준비할 필요 없이 여행지에 가서 스르륵 검색하면 되다니- 이거슨 신세계. 나의 여행은 10년전에 멈춰있구나 싶어 급 우울해졌다. ㅎㅎ



그렇게 여행본능을 서서히 깨워가며 이 식구들과 지구여행을 한바퀴 돌고나니, 마치 내가 직접 다녀온 듯 생생하다. 사하라 사막에 가다가 멀미로 네번이나 토했다는 주현이의 이야기에 걱정했고, 파리 에펠탑 앞에서 마카롱을 먹으며 꿈을 키웠다는 서현이의 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엄마인 것처럼 흐뭇했다.

나도 한꼼꼼하는 성격이지만, 저자는 나보다 100배는 꼼꼼한 성격인 것 같다. 저자가 얼마나 철저하게 이 여행을 준비했는지, 나중에 여행갈 때는 이 책만 따라하면 되겠다 싶을 정도로 정보가 만족스러웠다. 'TMI'라는 아이콘을 달고 써 있는 팁들은 정말로 깨알같은 꿀 정보들이었다.

'엄마'로서 식구들을 데리고 여행하다보면 정말 신경쓸 일이 한두개가 아니었을텐데, 그 과정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여행자로서의 감정도 잊지 않은 저자가 참 대단했다. 문장력도 좋아서, 여행과정에서 마주한 저자의 감정들이 나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됐다. 아마 '엄마'이기 전에 '여자', 그리고 꿈이 있는 '개인'이라는 동질감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여행정보가 가득 담겨있는 실용서이자 기행문이다. 각 나라의 일정을 마칠때마다 경비를 얼마나 썼는지 꼼꼼히 기록해 두었는데, 대략적인 비용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어서 참 유용했다. 전반적인 책의 구성도 좋았다. 다만 정보를 가득 담다보니 그랬는지, 상대적으로 사진의 양이 좀 적은게 아쉬웠다. 특히 아이들의 얼굴을 좀더 크게 담아주었으면 좋았을걸. 아무래도 내가 엄마이다보니, 아이들이 이 여행을 어떻게 즐겼는지 좀더 생생하게 엿보고 싶은 마음이 큰가보다.

에필로그에 간단히 정리되어있긴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아쉬운 점이라던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할 때 주의할 점, 다음에 또 여행을 한다면 어떻게 할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담겨있었으면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평범한 우리가족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 저자가 미리 닦아놓은 길이 있으니, 그 길을 타고가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가까운 곳부터 짧게라도 시도해봐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백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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