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현대문학 단편집
연필로 명상하기 옮김 / &(앤드)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황순원의 소나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동리의 무녀도,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이 다섯편의 작품은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하는 현대문학 단편이라고 합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 이 단편들을 읽었는데 황순원의 소나기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정도만 기억하고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기억하고 있는 작품도 내용 전부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줄거리와 특정 대사 한두줄을 기억하는 것 뿐으로 그 대사들은 온라인에서 드립이나 짤로 가끔 볼 수 있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일 뿐이에요. 성인이 되서는 이 책들을 다시 읽지는 않았기 때문에 글로 이 작품들을 다시 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해전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었거든요. 이 애니메이션을 본 것도 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림체가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었고, 한국적인 풍경과 느낌을 잘 그려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영화의 감독님이 안재훈이란 분으로 이 영화 말고도 또 다른 현대문학 단편인 무녀도와 소나기도 애니메이션화했었더라구요. 그 두 작품은 보지 못했는데 스틸샷을 보니 역시나 특유의 감성적이고 정적인 느낌이 잘 묻어나는 애니인 것 같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네요.



이 책 '애니메이션 현대문학 단편집'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꼭 포함되는 청소년 필독 한국 현대문학 단편소설 다섯 작품을 안재훈 감독님의 고품격 애니메이션 원화와 함께 수록한 책입니다. 원작 소설과 함께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이 매페이지마다 펼쳐지는데 사진처럼 섬세하면서 수채화 작품처럼 은은한 멋이 있어서 눈이 호강합니다. 그런데 산과 들, 강의 풍경 묘사는 너무 뛰어나고 마음에 들었는대 봄봄이나 소나기의 캐릭터는 너무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그림체였어요. 어쩌면 그동안 봐왔던 일본식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에 너무 길들여져있는 탓인 것 같네요.  무녀도의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그림체여서 작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고 느꼈습니다. 아마 촌스러운 캐릭터는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 같았습니다.


책 소개글을 보니 봄봄은 20대 남성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고, 운수 좋은 날은 40대 가장의 하루로 경성의 명암을 보고, 메밀꽃 필 무렵은 60대에 돌아보는 삶의 회한이라고 소개하고 있네요.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소나기는 10대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의 풋풋하고 아련한 첫사랑을, 무녀도는 50대 어머니을 중심으로 한 세대간 갈등과 종교적 갈등 및 전통과 외래문물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고 봐도 되겠어요. 즉, 1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별의 한국인의 정서와 감정을 나열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각각의 단편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을 하나씩 대표하고 있어서 5편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희노애락의 콜라주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텍스트로만 된 책으로 글을 읽으려면 조금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멋진 애니메이션 원화와 함께 글을 읽으니 지루하지도 않고, 재미있게 글을 읽을 수가 있네요. 특히 넓게 펼쳐진 자연의 풍경들은 마치 내가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 곳에 함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서 스토리 속에 들어가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봄봄의 코믹한 장면들은 더 크게 웃음을 불러일으키고,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달밤의 메밀꽃밭이 환상처럼 피어올라서 아련함을 느끼게 해줬구요. 그런데 운수 좋은 날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슬픈 감정이 폭발해야 하는데 애니메이션의 묘사 수준으로 감정이 한정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슬픈 장면이라 만약 애니장면이 없었다면 머리 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장면을 떠올리며 감정을 폭발시켰을건데 애니 사진을 보니 딱 거기 묘사된 수준으로만 상상이 한정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특이하게 소설 속의 나오는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에 주석이 달려 있는데 우리말임에도 지금은 사용되지 않아서 그 의미가 모호한 단어가 많아서 단어의 뜻을 해석해놓은 주석이 큰 도움이 되었네요. 만약 그런 주석이 없었다면 그냥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대충 넘어갔을 텐데 덕분에 문장을 꼼꼼하게 읽고 그 뜻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생각보다 의미를 모르는 단어가 굉장히 많아서 놀랬습니다.



애초에 수록된 작품들이 단편이라 하나의 작품을 완독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시간도 짧아서 금새 읽을 수 있는데 애니 원화까지 있다보니 그림을 삽화처럼 보며 글을 읽다보면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게 책장이 넘어갑니다. 책을 읽고나니 아직 보지 못한 무녀도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궁금해집니다. 그림체가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르고, 색감도 굉장히 좋고, 캐릭터들의 개성도 넘치다보니 관심이 가네요. 원작 문학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는 어떻게 옮겨졌는지 궁금하고 한번 찾아서 봐야겠어요. 책은 책대로의 재미가 있고, 애니로 옮긴 작품은 그 나름이 맛이 있는데 이 책 '애니메이션 현대문학 단편집'은 소설의 재미와 애니의 맛이 잘 어울어져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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