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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신서경 지음, 송비 그림 / 푸른숲 / 2021년 3월
평점 :

지구가 멸망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뭘 먹고 싶냐는 질문을 가끔 받을 때가 있는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나의 대답은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답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엄마가 정성껏 해주는 음식만 못하다고 느끼고 그만큼 엄마가 해주시는 게 세상좋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지구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엄마한테 밥상을 차리게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작가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뭘 할 거냐는 설문을 받고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싶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방점은 맛있는 밥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에 찍히는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을 먹을 것이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고 싶은가 하는 것이 진짜 묻고 싶은게 아닐까?
봉구는 혼자 살며 유튜브로 먹방/쿡방을 하는 BJ이다. 어느날 설레는 마음으로 동창회에 나갔다가 창피만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울며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눈을 떠보니 갑자기 지구가 일주일 후 멸망한다는 황당한 뉴스가 들려온다. 봉구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다. 봉구의 전화 속엔 각종 배달식당의 전화번호만이 들어있을 뿐 마지막 남은 시간을 함께 할 사람도 전화를 걸 사람도 하나 없다. 배도 고프고 사람도 고픈 봉구는 아쉬운대로 식당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돈을 벌겠다고 한가하게 장사를 하고 있을 사람은 없어서 치킨집도 족발집도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봉구는 고민하다가 지구가 멸망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방송을 하기로 결심하고 쿡방을 시작한다.
책은 멸망까지 남은 일주일을 봉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를 하루 단위로 그려간다. 매일 뭘 먹을지 고민하는 먹방 BJ인 봉구가 남은 일주일을 뭘 먹을지 고민하고 메뉴를 선정하는 것을 보는 것이 관전포인트다. 지구 멸망 일주일을 남기고 봉구가 선택하는 메뉴는 과연 무엇인지, 나라면 일주일 동안 어떤 것을 먹을까 생각하면서 봉구의 메뉴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봉구는 나름의 이유로 매일의 메뉴를 결정한다. 처음에는 10일 남은, 지구가 멸망하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오지 않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 칼로리 케이크를 만들고, 다음날엔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이때까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었다. 삼일째는 이웃사람을 위한 시루떡을, 멸망 이틀전엔 첫사랑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고, 최후의 만찬으로는 좋건 나쁘건 자신과 인연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만든다. 자신을 위한 음식에서 출발하여 주위사람으로 눈을 돌리고, 마지막엔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 때는 만찬에 초대한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요리를 준비했다. 마지막을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맞춤형 메뉴를 정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지구 멸망 전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지구 멸망 전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셈이다. 요리, 음식에 대한 이야기지만 마침내 사람으로 귀결되는 질문. 봉구의 메뉴가 자신의 메뉴에서 누군가를 위한 메뉴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가듯 우리는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면 그 마지막을 함께 할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찾게 될 것 같다. 엄마의 음식이 맛있는 건 거기 사랑과 정성이 듬북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 진실한 사랑과 관심을 먹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봉구의 음식은 소통과 사랑이다. 혼자 밥을 먹지만 자신이 밥 먹는 것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나중에는 기묘한 인연으로 얽힌 사람들이 하나 둘 와서 함께 밥을 먹게 된다. 언제나 혼자인 봉구지만 적어도 밥을 먹는 순간 만은 누군가와 함께 있다. 그게 모니터 너머의 사람이건 실제 사람이건 어쨌건 자신과 얘기하고 봉구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봉구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속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전하는 행동이며 음식은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다. 그래서 책은 모두 흑백이지만 음식 그림만 컬러로 되어 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얼굴에 홍조가 생기듯 삭막하고 단조로운 색을 한 세상에 살고 있는 봉구의 음식들만은 세상의 빛을 찾아간다. 특히 컬러로 그려진 음식의 묘사는 디테일하고 색감도 좋아서 굉장히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책은 가볍고 금방 읽히지만 여운은 오래 남고 생각할 것도 많은 책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상황을 가정해서 자신이라면 남은 일주일동안 뭘 먹을지 메뉴를 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니?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정말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뭘 먹건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분노하거나, 극심한 우울함에 빠지거나, 그런 사실을 부정하느라 정작 밥을 먹는 일 따위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반대로 덤덤하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소중히 살아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주어진 시간을 평소와 마찬가지로 살아간다면 식사라는 행위도 하게 될 것이고, 뭘 먹는지가 중요한 화두일 수 밖에 없을테니 나라면 뭘 먹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재미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