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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물욕 ㅣ 먼슬리에세이 1
신예희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5월
평점 :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행복을 살만큼 돈이 없기 때문이래요. 많은 세월을 살아오다보니 인생은 돈으로 귀결되버립니다. 그것이 슬퍼요. 돈 말고도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많을텐데 이야기의 끝엔 언제나 돈이네요. 근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속물처럼 생각합니다. 한국에선 돈 이야기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돈 이야기를 하면 돈자랑처럼 생각하며 속물처럼 재수없어하고, 돈 없는 사람이 한탄하면 그 역시 돈만 아는 사람이라는 둥, 그저 돈 돈 돈얘기 뿐이냐고 돈 밖에 모르냐며 이것도 속물처럼 생각합니다. 많아도 탈, 없어도 탈.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근검 절약이 미덕이라고 배웠습니다. 아껴야 잘 산다고 했습니다. 낭비는 망국의 지름길이고 경계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물건이건 돈이건 허투루 쓰면 엄마의 스매싱이 등짝으로 날라왔다..는 건 거짓말이고 엄마는 때리진 않으셨지만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습관처럼 된 분이라 저도 엄마를 본받아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난 지금은 저의 소비 패턴은 절약과 지지리 궁상의 그 어디메쯤 있는 것 같습니다. 비싼 것이 뭐가 좋아도 좋은 걸 알면서도 비싼 물건을 두고 옆에 있는 싼걸 집어들고, 과도하게 아끼고, 모셔두고, 간직하고.. 작가가 얘기하는 '소비의 죄책감'이란 표현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숱하게 자신을 설득합니다. 비싼거나 싼거나 거기서 거기야. 똑같아. 집에 있는데 뭘 또 사. 비싸기만 하고 그렇게 좋지도 않아서 돈 값도 못하는거야.
이런 사람이라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은 잘 알지 못합니다. 아니, 잘 알지만서도 돈지랄은 어쩐지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려서 못하게 됩니다. 돈지랄이란 말에는 부정적이고 나쁜 이미지가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좋은 돈지랄은 친구가 소고기를 사줄 때 정도 뿐이겠죠. 그 외에 내가 쓰는 모든 돈지랄은 나쁜 것처럼 느껴집니다. 글을 읽어보니 작가도 처음엔 저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궁상의 정도가 저만큼 되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네요. 푼돈에 손을 떨고, 아끼다 똥되고, 대용량의 함정에 빠지고. 그러고 보면 세상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나 다 거기고 거기고 다 똑같이 산다던가요. 차이점은 누군가는 계속 그 상태로 사는거고, 누군가는 그런 생활을 벗어난다는 차이 뿐이겠죠. 물론 그런 생활을 벗어나는게 너무나 대단하고, 훌륭하고 웰컴투돈지랄월드라 외칠 만큼 화려한 인생인 반면, 여전히 싸고, 양많고, 대용량을 사서 쟁여두고 아끼는 생활이 찌질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소비의 가치와 그 주체를 잘 생각해보고 소비의 우선순위를 돈이 아닌 사람이나 시간과 같은 다른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는 느낍니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 정말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즐겁고 동질감도 느낍니다. 나혼자산다 같은 방송을 보며 낯설지 않는 모습에 호감을 느끼고, 가깝게 생각하는 그런 것 같아요. 당연히 모든 것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많을 것 같지만 몇몇 킬링 파트에서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흐뭇하게 웃게 되는 기분입니다. 한마디로 공감입니다. 아까는 자신이 지지리 궁상이란 말을 했지만 사실은 돈지랄을 해보기도 했고, 그 지랄로 후회도 해봤고, 만족스러워하기도 해봤어요. 그래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건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지 잘 알겠네요.
작가는 돈지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소비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과거의 소비 스타일, 살면서 조금씩 바뀐 패턴, 돈에 대한 마인드, 욕망 들을 말이죠. 이야기 끝에 70년대 공익광고같은 덮어놓고 쓰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거나 원없이 돈지랄을 해봤지만 그래도 아끼는 게 낫더라 식의 교훈과 표어가 등장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애초에 그런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구요. 돈과 소비에 관련된 자신의 생각과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지금 현재에 지극히 만족하며 그것으로 족하다는 식입니다. 꼭 돈지랄의 기쁨을 역설하지 않더라도 돈지랄을 하며 만족해하는 썰을 푸는 것만으로 돈지랄의 효용성과 즐거움을 표현한다는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의도 역시 없어 보입니다. 그냥 돈에 대해 솔직해지고 한번 토킹어바웃 해보자는 것 뿐이에요. 덕분에 저도 저 나름대로 돈, 소비, 욕망, 돈지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구요. 사실 요즘 들어 절약과 소비에 대한 내면의 갈등이 많아지고 있는데 거기에 불을 지른 셈입니다.
신예희 작가의 글빨이 너무 좋아서 너무 재미있습니다. 작가의 어투나 개그 코드가 평소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글을 읽는 것이 더욱 신납니다. 이렇게 유쾌하게 글을 쓰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의 평소 일상은 어떨까 궁금해지기 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재미있고 유쾌한 글을 쓴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젠체 하는 글이 아니라 주말 예능의 자막처럼 쉽고, 가볍고, 일상에서 많이 쓰는 평범한 언어만으로 정확하고 명확하게 의견을 전달합니다. 하고픈 말을 어려운 말 속에 숨겨서 복잡하게 말하지 않고, 친구에게 카톡으로 말하듯 편하게 얘기해서 술술 읽힙니다. 문장력도 좋아서 평소 많이 느끼는 감정이고, 항상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인데 막상 말로 표현하자니 구체적으로 잘 말하지 못하는 애매한 감정을 명확한 글로, 심지어 아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막혔던 수능 언어능력 시험의 답을 찾은 듯한 명쾌함이 느껴집니다. 그래 맞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야, 내 말이 이거라고. 같은 느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글입니다. 많은 공감과 즐거움을 주는 돈지랄 이야기였고, 작가의 글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다른 글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